마가복음 15.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가복음 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금식의 문제로 부딪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이 날은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는 날이었던 모양입니다.

 

구약 율법 혹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에 한 번 금식하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셨습니다그 날은 속죄일이라고 합니다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열심이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별도로 금식일을 만들었습니다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일을 정하고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자신들끼리 금식을 했습니다그 후로 신앙에 열심 있는 사람들은 그런 전통을 따랐습니다.그들은 금식을 자신들의 경건에 대해 하나님이 관심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경건하고 의로운지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일부러 누더기를 입고 머리에 재를 뿌리고 일부러 뺨을 홀쭉하게 들어가게 하고 심지어 창백하게 보이도록 분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하여 하신 말씀 중에 바리새인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이레는 일주일입니다평생을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런 고행을 하나님께 더 나가기 위한 경건의 훈련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바꾸었습니다그러한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왜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 “왜 당신은 이 전통을 따르지 않느냐?”

 

이런 종류의 질문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왜 당신은 이런 규칙을 따르지 않느냐?” “왜 당신들 그룹은 모든 사람이 하는 이런 기준에 맞춰 살지 않느냐?”

 

이에 대해 예수님은본문에서 보듯이그들에게 길지 않은 내용으로 몇 가지 비유를 통해 알기 쉽게 답해주셨습니다그리고 그 비유들의 결론으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1. 그 첫 번째가 결혼식입니다.

 

너희들은 이런 일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너희들은 지금 장례식에서나 할 행동을 하고 있다그러나 지금은 결혼식이다신랑이 이 세상에 와 있기 때문이다너희들조차 결혼식에는 그날이 금식하는 날일지라도 금식하지 않지 않느냐신랑인 내가 여기 있는 한 신랑의 친구들인 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는다즐기고 웃고 기뻐할 것이다그러나 신랑이 사라질 때가 올 것이다그 때 금식하는 것은 옳다.”

이 말씀에는 예언적인 부분이 있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그 때는 자신의 제자들이 금식하고 슬퍼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그러나 이 말씀을 적용할 때 우리가 고난주간에 금식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오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할 필요는 있지만 고난주간을 보내는 방법으로서 금식이 필수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입니다고난주간에 금식을 할 수도 있지만 바리새인처럼 어떤 규칙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우리가 금식하면 유익한 신앙의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을 규칙으로 정해 놓고 금식을 하지 않는 누군가를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바리새인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제가 젊었을 적어떤 일로 금식하는 중에 이와 똑같은 말씀을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설교를 듣고 그 때 상당히 불쾌한 느낌일명 시험 든다고 말하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신앙경험이 부족했던 때죠그러나 지금은 고난주간에도 잘 먹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슬픈 경험이나 견디기 어려운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그 때에도 우리는 그런 문제를 극복하고 도우심을 얻기 위해 금식할 수도 있겠지요그러나 그것은 법칙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는 우리는 우리 안에 살아계신 주님성령님을 모시고 있습니다언제나 우리는 잔치를 하고 있고 기뻐하고 있습니다가령 어린아이가 자기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는데 마치 부모가 죽은 것처럼 생각하고 슬퍼하는 것과 같습니다부모의 입장에서는 만약 그렇다면아주 당황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게다가 아이가 뭔가 간절히 필요할 때그것이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굳이 금식하면서 부모를 조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하나님께 대한 관점도 그렇습니다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 그 하나님께 떼를 쓰는 한 태도를 가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40일 금식기도가 무슨 훈장은 아닙니다그 행위를 자랑스러워하고 남들에게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거리면 금식한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제가 금식기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원리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저도 며칠씩의 금식기도를 몇 번 해봤고 누군가에게도 그럴 필요가 있는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금식기도를 어떤 기도응답을 경험하는 필수적인 방법으로 아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금식을 반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6:16~18,

[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초대교회에서 금식한 기록으로 사도행전 13장에서 바나바와 사울이 세움을 받을 때 교회에서 금식했습니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 14장에서는 교회 장로들을 세울 때 금식 기도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예수님은 이어서 두 가지 비유를 더 들어 설명하십니다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비유입니다이 두 가지는 낡은 것으로 새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데서 같은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2. 생베의 비유입니다.

 

생베 비유를 쉽게 풀이하면 이런 말입니다. “생베(새 천 조각)을 낡은 천에 덧대어 깁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나머지 낡은 천 조각이 더 해어질 것이다.” 같이 붙어있는 천들이 잡아당기는 힘을 견디는 능력이 다르면 오히려 전체 천이 더 빨리 상합니다.

 

3. 이와 마찬가지로 새 포도주와 새 부대 비유도 새것과 옛 것이 서로 견딜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 발효하는 새 포도주를 낡아서 늘어나지 못하는 낡은 가죽부대에 넣으면 낡은 부대가 터진다고 합니다가죽부대는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물통입니다탄력이 있는 새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발효가 될 때 늘어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낡은 부대는 탄력성을 잃어버려서 늘어나지 못하고 결국 터지고 맙니다.

 

집사람이 오래전에 성찬식에 필요한 포도주를 준비하기 위해 포도를 델몬트 오렌지병 속에 담갔던 적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참이 지났는데 부엌에서 하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그 두꺼운 유리병이 깨지고 포도주가 바닥에 다 쏟아졌습니다포도가 발효되면서 공기의 부피가 늘어나는 것을 병이 감당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새 천조각과 새 포도주는 성령의 기쁨이고 능력입니다우리가 갖고 있는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은 예수님이고 다른 말로는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이나 침묵수행 자체는 좋은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을 해야 경건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분위기가 무겁고 고난스러워야 경건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의식이 원인입니다이것이 모든 인간 속에 있는 바리새적인 기질입니다.

 

오래 전부터 영성운동이 한국 교회에 유행하고 있습니다영성을 찾는 것은 좋습니다그러나 진정한 영성은 금식침묵명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즐거워하는 기쁨 속에 있습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시끄러운 것보다 침묵이 더 좋습니다조용하더라도 그 속에 기쁨이 없는 침묵은 장례식 침묵이라는 말씀입니다.

 

거꾸로 사람들이 교회를 거부하고 신앙을 갖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바로 우리에게 이런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우리 안에 예수님의 실재가 없는데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많은 사람들이 주일에 왜 방 안에 누워 TV를 봅니까왜 골프를 치러 나갑니까즐거움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우리는 그렇다면 그 즐거움을 교회에서 만납니까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그 기쁨이 있습니까우리는 기쁨의 근원인 복음을 받았습니다.

 

기독교는 지금까지 인간들의 율법이나 형식주의에 의해 원형을 잃어버리는 때가 있었습니다사람들의 행위가 있어야 기독교가 더 고상해지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하나님의 은혜에 인간의 장식이 첨가되었을 때 기독교가 더 멋있어 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변질되었습니다.

 

이사야 58:6~7,

[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어느 날 성 프란시스(St. Francis, 1182~1226)가 제자들과 금식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그 때 제자 중 한 사람이 프란시스에게 이번에는 우리의 참된 경건을 위해 죽 그릇을 상에 가져다 놓고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의견을 내 놓았습니다이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모두가 금식을 시작했습니다눈앞에 먹을 것이 있기에 기도하며 금식하기란 더욱 어려웠습니다그러던 중 견디다 못한 한 제자가 몰래 죽을 약간 퍼서 먹었습니다모두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일제히 그 제자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성 프란시스는 갑자기 죽 그릇을 들고 죽을 들이켜 버렸습니다어리둥절한 제자들의 모습에 프란시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로 사랑함이 경건을 위한 금식함보다 낫다서로 사랑하라서로 사랑하라.” 공동체 안에서 나 한 사람의 경건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신앙에 필요한 규칙과 경건이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랑이 사라지고 분쟁과 정죄가 생긴다면 그 규칙과 경건보다 우리가 정말로 지켜야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개인의 높은 경건보다는 피 값으로 사신 교회의 하나님의 자녀들의 서로 사랑함을 더 높이실 것입니다내 안에 내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나는 경험이 여러분의 새 포도주입니다. 이들이야말로 그 옷을 어린 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한 사람들이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요한계시록 7:13~17,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9:7~9,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마가복음 14. 죄인들을 부르심

 

마가복음 2:13~17,

[13]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무리가 다 나아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가르치시니라 [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에도 이와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5:29,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예수님이 세리인 레위에게 나를 좇으라고 명령하셨고레위가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초대했습니다이것은 우리를 예수님이 부르실 때에 우리에게서 나타나야할 모습입니다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에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삶 가운데 모시는 것입니다레위가 했던 것처럼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가 기뻐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잔치를 베풀자 작은 폭풍이 일어났습니다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 장면을 보고 놀랐습니다왜냐하면 세리들과 예수님이 함께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말씀하셨듯이 당시 유대(이스라엘사회에서는 세리는 죄인 취급받는왕따와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세리를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를 설명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당시 로마제국이 유대를 지배하면서 세금 정책으로 도급방식을 사용했습니다말하자면 요즘의 프랜차이즈와 같은 방식입니다로마가 다스리는 각 지역별로 그들이 로마에 바쳐야 할 세금을 정해줍니다그리고 세금사업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그 권리를 팝니다로마제국은 그들이 가져오는 세금만 받으면 됩니다.그리고 그렇게 세금수령 독점사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세리(稅吏)라고 불렸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로마에 바쳐야 할 세금의 총액수가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자연적으로 세리들은 자기들이 모은 세금 이상의 액수를 거둘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의 세금에는 공인세와 비공인세가 있습니다공인세는 또 몇 가지로 나뉘는데인세와 토지세소득세입니다인세란 사람이 몇 명이냐에 따라 무조건 세금이 매겨지고 바쳐야 하는 세입니다숨만 쉬고 있으면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내어야 합니다그래서 당시 인구조사는 중요한 일이었고 몇 년에 한 번씩 인구조사가 시행되어졌습니다.

 

토지세는 모든 토지에서 나오는 곡물의 10분의 1, 포도와 기름의 5분의 1이 세금이 됩니다소득세는 모든 수입의 1%가 됩니다.*

 

이것이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받아가는 세금이지만 그밖에 비공식적으로 세리들이 사용료라 하는 비공식 세금을 거둘 수 있습니다도로를 사용하는 통행세배가 출입하는 항만세어떤 특정 상품을 수출입하는 사업에 대한 세금이 있습니다심지어 바퀴가 달린 모든 물건마차나 수레까지 세금이 매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여러분이 그 당시 사회에 살면서 수레에 짐 보따리를 싣고 거리를 지난다고 상상해 봅시다길을 가던 도중 세리를 만났습니다그 세리가 여러분을 멈추게 하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 펼쳐보라고 합니다그리고 그 모든 물건이 세금을 물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세금이 매겨지고 끌고 온 수레에 대한 사용료와 지나가는 도로요금까지 매깁니다그렇지만 여러분이 그 많은 세금을 물 돈이 없습니다그러면 그 세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돈을 빌려드리지요.” 세리는 얼마의 돈을 여러분에게 주고 다시 그 돈을 세금으로 받습니다그리고 빌려준 돈의 이자까지 계속해서 받아낼 겁니다.

 

이런 세리들을 유대인들이 볼 때에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대놓고 다니는 날강도입니다그러니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원수처럼 생각했고 가까이 지낼 수 없는 죄인 취급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한 유명한 세리 이야기가 있습니다그는 세리 중에서도 그 지역의 세리조합 대표인 세리장입니다이름은 삭개오입니다.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는 부자였습니다아마 그동안 많은 세금착취를 했을 것입니다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자기 집에 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주변의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고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가겠다고 하는 말씀에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수군거리죠.

 

삭개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자기가 착취한 것의 4배를 갚겠다고 합니다그가 세리장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금착취를 했겠습니까그리고 주변의 유대 동족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욕을 먹었겠습니까?

 

성경과 여러 고고학적인 자료들에 나타나는 당시 세리들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1. 그들은 정직하지 않았습니다어떤 세리의 무덤에 이런 묘비명이 있었습니다. “여기 정직한 세리가 잠들다.” 그만큼 정직한 세리가 드물다는 반증입니다.

 

2. 그들은 매국노입니다그들은 자기나라를 침략한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3. 그들은 부정(不淨)했습니다사회적으로 더럽고 악하다고 취급받았습니다그래서 보통 유대인들은 그런 세리들과 같이 친구하지도집에 가지도세금 내는 일 외에 그들과 같이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쩌면 1장 16절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한 말이 당연한 말인지도 모릅니다어떻게 저런 인간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지같은 종류 아냐그들에게 돈이라도 받았나바리새인들에게는 예수님을 반대할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의 의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건강한 사람은 병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의사가 필요 없습니다건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의사는 누구입니까병든 자를 고치는 사람이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은 의롭다고 생각하니 예수가 필요 없습니다그러나 죄인 취급받는 세리들은 자기들은 죄인이라 생각하니병들었다고 생각하니 예수님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에게 필요합니까누구요바로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 거리를 지나가시는 중이었습니다가버나움은 로마가 지정한 다메섹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주요 산업도로 가운데 있는 어업이 활발한 도시입니다레위는 그 도시의 세리였고 그는 그 날도 자기의 업무로 세금을 받기 위해 톨게이트에 앉아있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앉아있었다고 합니다아마 높은 위치에 앉아 있었을 겁니다당시에는 비록 멸시받는 직업이지만 세금을 받을 때는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와서 나를 좇으라는 한 마디에 그대로 즉시 따랐다고 합니다그러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신앙보다도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그는 윤리보다도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자기 민족 보다 돈을 더 사랑했습니다그런 그가 그 모든 것을 버려두고 한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나를 좇으라는 말씀은 명령입니다. ‘단 한번 따라 오너라가 아닙니다. ‘너의 평생에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 오라는 명령입니다. “나의 동반자 되어라,” “나와 함께 하자,” “내가 가는 길에 같이 가자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은 이 상황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5:27~28,

[27]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28]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자신의 모든 소유와 권리를 버렸습니다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인생의 푯대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이름이 바뀌어 집니다마태로마태는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그리고 한 책을 남깁니다그것이 마태복음입니다마태복음은 누구를 위해 쓰인 책입니까바로 유대민족을 위해 기록되었습니다전에는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매국노요 악당으로 취급당했습니다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따라간 이후 제자가 되어 그 유대인들을 위한 위대한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바리새인이란 의미는 구별된다(detached one)는 뜻입니다그들은 율법을 따르는 데는 열심이었습니다.그들의 행위가 자기들을 구원한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행위가 남들보다 더 의롭다는 착각을 했습니다그래서 죄인들을 더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오셨습니다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예수님이 예화로 든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는 유명합니다.

 

누가복음 18:10~14,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5장에는 유명한 잃어버린 것 세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1. 잃은 양 찾는 비유, 2. 잃은 동전 찾는 비유, 3. 잃은 아들 찾는 비유입니다.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9]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예수님은 잃어버린 죄인을 찾으십니다예수님을 발견하는 죄인이란 자신이 죄인인줄 알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돌아온 죄인들을 가장 기뻐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앞의 세 가지 비유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이 그 죄인들이 돌아오도록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기 때문입니다자신의 죄를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주여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하시고 구원 받기에 합당하도록 주님께 나아오게 하여 주옵소서우리는 죄인입니다.

 

 

* During the time of Jesus in first century Israel, there were publicans and tax collectors who could walk up to a man and tax him for what he was carrying, and much more. These tax collectors were hated and despised because they were usually fellow Jews who worked for Rome. There were many taxes needed from the provinces to administrate the Roman Empire. These taxes paid for a good system of roads, law and order, security, religious freedom, a certain amount of self government and other benefits.

The Publican

 

The publican is from the Latin word "publicanus", and from the Greek word "telones" which mean a tax gatherer. The publican is mentioned quite often throughout the life of Christ. Since Israel was under Roman rule, and part of a province of the Roman Empire, customs duties were farmed out to chief tax collectors (publicani). These chief tax collector's what also farm these duties over to the regular tax collectors.

 

In the eyes of Rome the provinces were to carry the heavy weight of administering the Empire. Judea was in the province of Syria and every man was to pay 1% of his annual income for income tax. But that was not all, there were also import! and export taxes, crop taxes (1/10 of grain crop and 1/5 of wine, fruit, and olive oil), sales tax, property tax, emergency tax, and on and on. It was actually a Roman official (censor) who was ultimately responsible to Rome for collecting the revenue of the province, but he sold the rights to extort tax to the highest bidders.

 

Most of the time when the Bible mentions a publican, or a tax collector it is referring to a regular tax collector (publicanus) rather than a chief tax collector. The tax collectors were usually Jewish and therefore they were hated by their own people. When they collected their taxes for Rome they would turn over the required amount of money, and whatever they could add on for themselves is what they kept. They were known to be extortioners of large sums of money. Because tax collectors were in relationship with Rome, who were Gentiles in the eyes of the Jews, and hated for their domination, they were treated similar to the worst kinds of sinners and prostitutes.

 

Jesus showed much kindness to the publicans, and he was even mentioned as having had dinner with them, which in Israel was a sign of fellowship. (Luke 18 and 19). In fact one of his apostles named Matthew (Levi) was a tax collector, and became an author of one of the accounts of the life of Christ known as the book of Matthew.

 

http://www.bible-history.com/sketches/ancient/tax-collector.html

 

마가복음 13. 중풍병자와 마비된 한국 교회

 


마가복음 
2:1~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예수님에 대한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문까지 사람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였습니다그 집안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2: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어떤 사람들은 신기한 이벤트를 원하고 이적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길 원하고 병 고침을 받기를 원했겠지만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가장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진실한 고통과 문제는 돈이 아니고 가족직장이나 사업이 아닙니다생명이요그 생명을 생명 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모스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까?

 

제가 오늘의 본문에 대한 설교를 과거에 들었던 기억에 의하면중풍병자를 네 명의 친구들이 협력해서 도왔으니 전도하자로 결론을 맺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그것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핵심은 빠뜨리고 단지 전도라는 주제를 위해 본문의 상황만을 이용한 해석입니다.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까지 데리고 온 사람들은 환자의 침상을 들고 온 네 사람을 포함해서 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예수님의 이목을 끈 사람들은 네 사람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로 예수님께 왔다는 것은 그 중풍병자가 스스로는 올 수 없는 완전한 무능력의 상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그런 그 병자에게그리고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 와야 한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있었습니다예수님은 그것을 그들의 믿음으로 보셨습니다예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시는 선언을 통해 인간의 질병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죄의 문제와 구원을 연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병자를 죄 사함이라는 선언으로 구원하시고 치유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여전히 몰라보는 종교지도자들이 바로 영적인 병자들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와의 만남을 통해 죄의 문제를 인간이 해결할 수 없다그 사실을 절망적일만큼 아느냐?그리고 그 구원자는 자신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죄인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예수께 오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근원적인 치유의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던 서기관들은 하나님만이 사람의 죄를 사하는 말을 할 수 있는데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참람되다 즉 불경스럽다고 서로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까지 보시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9~11,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9절에서 더 쉽다는 헬라어 단어(ευκοπωτερον)에는 더 좋다”(better)는 뜻이 또 있습니다즉 9절 말씀은 말로 하기에 어떤 표현이 더 편하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절망적인 사람에게 어떤 말로 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더 좋겠느냐는 뜻입니다.

 

사람의 병이 죄 때문이라고 일반적으로 믿는 유대인들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절망적인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죄를 늘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의 근원은 물질이나 질병이 아니고 죄에 있음을 가르쳐 주시고 당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가르쳐 주시려고 죄 사하는 선언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제대로 알고 듣는 자는 모든 인생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 고통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 고통들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과 천국 시민이 되는 소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병 고침을 받을 수 있지만 사람은 그 후에도 죽습니다요한복음의 나사로는 예수님의 이적으로 다시 살아났지만 언젠가 다시 죽어야만 했습니다문제는 그 다음입니다사후의 결과에 대해, 어떤 사람의 구원에 대해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대단한 은사를 받은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죄 사함을 받았다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비가 된 자들은 그 환자가 아니라 그 집 안에 앉아있던 서기관들이었습니다그들은 앉아 있었고 예수님이 어떤 잘못을 하지 않나 지켜보고 있었습니다긍정적인 관심도 없고 단지 적대적인 의심과 불신으로 앉아 있었습니다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몇 가지 질병들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문둥병(한센병나병)은 사람의 신체 전체에 한센균이 감염되어 모든 지체가 하나씩 죽어가는 병입니다신경조직,눈까지 감염합니다머리카락이 빠지거나 손가락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기도 합니다감각기관들이 기능을 상실합니다이런 원인과 증상 때문에 성경에서는 문둥병을 죄로 인한 일반적인 인간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중풍은 신체에 감염된 세균이 원인이 아니고 뇌의 문제입니다뇌혈관이 막히거나(경색터져서(출혈뇌신경이 죽으면 죽은 뇌신경에 연결된 신체부위들이 아무리 건강했어도 당연히 움직일 수 없습니다.머리가 죽으면 지체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그러므로 성경은 중풍을 종교 지도자들의 죄와 타락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가버나움 마을의 한 중풍병자는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어리석음과 불신을 대표한 경우입니다바로 그 자리에 그 지역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와 있었거나 또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에 대한 감시를 목적으로 파견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과거 80년대 후반까지 후진을 모르는 전진 성장만 해 왔습니다. ‘교회 성장이 실제 목표인 교회들이 대부분입니다사람들이 성경에서 교회 성장 이론을 꺼내오기는 하지만 정말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성장한 교회의 결과를 보면 압니다결국 목사든 신자들이든 인간의 영광이 목표입니다.

 

한국 교회의 머리들이지도자들의 영적인 혈관이 욕심과 세상 정욕에 막혀서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정신이 사라졌습니다그래서 몸이교회가 마비되어갑니다.

 

더 크고 성공한 목사가 되기 위해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는 조건학력시스템건물(건축등으로 교회를 채워 넣고 있습니다설교가 죄를 지적하는 설교가 아니라 교양미를 내세우고 위로의 내용만 채워져 있습니다이런 비정상적인 영적 마비 현상을 개탄하는 제 은사(합신)이신 어느 목사님의 글을 잠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마비되어 가고 있다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

 

첫째한국 교회는 지금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에 마비되어 있다한국 교회의 예배는 어느덧 감정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에 사로잡혀 있다이러한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음악 및 율동적인 소양을 지닌 젊은이들이다저들은 음악 및 율동을 하면서 감동적인 언어와 모습을 나타내 보인다감동적인 음악과 율동 또는 통성 기도가 반복되다가 예배로 이어진다언제부터 예배가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음악과 율동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그러나 영성보다 감성에 치우치면 매우 위험하다그래서 중세교회는 물론 일부 개혁교회들은 감정을 흥분시키는 음악과 악기를 자제하기도 했다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더 많이 자극하고 더 많이 흥분시키기 위해서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중이다감정적인 흥분을 성령충만으로 착각하게 되었다서글프고 불행한 일이다.

 

둘째한국 교회는 유명한 목회자의 유명 카리스마에 마비되어 있다목회자의 진실한 삶보다는 목회자가 각종 두드러진 유명 카리스마를 지니면 그것으로 족하게 되었다그것이 설교의 카리스마이든지 방언의 카리스마이든지 치유의 카리스마이든지 뒤집어짐의 카리스마이든지 코미디의 카리스마이든지 정치력의 카리스마이든지 경제력의 카리스마이든지 반공의 카리스마이든지 상관이 없다수천수만 명의 청중들을 사로잡기만 하면 된다카리스마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은 모여든다.

 

지금 일부 한국 교회는 바른 삶보다는 흥분과 기현상을 나타내 보이고 그것들을 추구하게 만들므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진실한 삶보다는 약간 무당적이고 약간 귀신적이고 약간 이단적인 요소들을 나타내 보여야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 같다.”

 

문선명 집단이나 김기동 집단에만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유명 카리스마가 강하면 강할수록 약간 무당적이고 약간 귀신적이고 약간 이단적일수록 사람들은 몰려온다지금 한국 교회는 유명한 목회자의 유명 카리스마에 사로잡혀 있다최근에 수많은 젊은 목회자들이 설교 세미나와 능력전도 세미나에 몰려드는 것은 유명한 목회자성공한 목회자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목회자가 되려는 야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셋째한국 교회는 지금 아부성 발언과 몸짓에 마비되어 있다목회자들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죄와 허물을 지적하는 책망보다는 모든 것을 눈감아주는 아부성 발언과 몸짓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사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이미 오래 전에 로버트 슐러가 했다로버트 슐러는 죄를 지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었다결국 오늘의 한국 교회는 그 조언에 따라 죄에 대한 설교는 가능하면 하지 않게 되었다위로와 축복만 강조하게 되었다.

 

어느 유명한 목회자는 이런 말까지 했다. “교회의 신자들이 줄어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중진들이 주일을 범하고 주일에 다른 곳에 가서 딴 짓을 해도 모른 척하여야 합니다.”

 

결국 한국 교회는 신자들이 회개와 헌신의 기본 신앙을 지니지 못해도 출석만 잘하고 헌금만 잘하면 신앙이 있는 것처럼 치켜 세워주게 되었다결국 목회자는 속이고 신자는 스스로 속아 넘어가게 되었다그렇게 하는 것이 은혜로운’ 목회라고 피차 착각을 하게 되었다.

 

머리가 마비되면 전신이 마비됩니다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참된 영성을 회복해야 마비된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납니다.

 

종교 제도와 조직과 건물과 부흥과 승진과 개인의 성공지향의 인생관이 우리의 영적 혈관을 막고 있을 수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치유자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이것을 먼저 깨닫고 그 은혜로 살아가는 저와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가복음 12. 예수께 나아가자

 

마가복음 1: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찬송가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Blessed assurance, Jesus is mine.) 히 10:22 주제작사자 F. 크로스비생후 6주에 시력을 잃고95년 생애 동안 8천편의 찬송시를 작사함.

 

마가복음의 서론 부분인 1:1의 말씀을 기억하시죠?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이 첫 구절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록된 책이 마가복음서이고바로 그 복음 자체이며 복음을 전하실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문둥병자를 고치신 이적에 대한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내용의 짧은 한 절 말씀입니다.

 

사람은 자신들이 진정 필요한 것을 구별하고 찾아내는 놀라운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갓난아기라도 본능적으로 코로 모유를 찾고 입을 대고 빨 줄 압니다.

 

얼마 전(2008신문에 어떤 미국인이 포도주를 코로 구별해내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그 사람은 냄새로 잔에 담긴 포도주가 어느 나라 산이고 어느 해에 재배된 포도이고 어떤 맛이 있는지를 가려낸다고 합니다그래서 그의 코는 보험에 가입했는데 그의 코에 문제가 생겨서 일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받는 보험금이 백만 달러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밥 냄새만 맡고 그 쌀이 어느 나라 쌀인지 한국 어느 지방 쌀인지몇 년도에 생산된 쌀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까그런 정도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현대 한국 교회는 완전히 뒤죽박죽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장로교만 교단이 몇인지 세는 것을 포기했습니다그중에는 건전한 교회만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교회도 이루 말할 수 없고심지어 이단이 가장 다양하고 치밀하게 활동하는 때가 요즘입니다.

 

게다가 기독교를 반대하는 수많은 반기독교운동들과 반기독교문화 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복음의 증거와 확신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이오늘날 이 자리의 저와 여러분이 당면한 과제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복음 흉내를 내는 잘못된 복음과 복음을 가리기 위한 수많은 거짓 복음들도 있습니다복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습니다.’ 그러나 발견하기 아주 어렵게 있습니다.’

 

이 복음을 발견하기 위해서는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는 대단한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고 교회에 나간다는 것은 우리가 우연히 결정한 것 같고 쉬워보였어도실은 길도 모르는 바닷길을 지나는 작은 배가 너무 운 좋게 수많은 위험한 암초를 피하면서 살길을 찾은 것과 같습니다.

 

그 배를 탄 여러분의 영혼 속에는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나침반이 있었습니다때로는 이것이 아니다그래 이것이다라고 결정하게 한 신비한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께 나아가가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그 결정은 포도주를 감별하고 쌀맛을 찾아내는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그런 것들 보다 더 고상하고 존귀한 감별력이 우리 안에 있었습니다실은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죠.

 

이 분을 만나면 내가 살겠다이 말씀을 따르면 내가 천국 가겠다는 것이 위험을 대비해서 보험 들고 아플 때 약 사먹는 것과 결코 똑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귀한 결정이었고 인생 자체를 바꾸는 위대한 발걸음이었습니다포도주를 감별하는 뛰어난 후각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백만 달러짜리 이상의 영적감각입니다이것은 성령의 은사랄 수는 없고 정상적인 신자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부분입니다신자들 가운데 어떤 이는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거나 반대로 좀 부족하거나 하는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처음 예수님을 믿기 위해 나아왔을 때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1. 예수는 놀라우신 분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이 성경의 선언입니다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리는 아직 예수님 앞에 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자기가 죄에 빠져있고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사실을 아는 것이 복음에의 첫걸음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왔던 사람들은 자기의 형편이 어떠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분이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심을 알았습니다그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든지 가리지 않고 찾았습니다들판에서도 바닷가에서도 한적한 곳에서도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습니다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게 되는 때가 구원의 때입니다.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5:9~10,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그러나 예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에베소서 2:1~3,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에베소서 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이제 그분께 나오는 것이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베드로전서 2:4~5,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예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입니다죄값은 반드시 피 흘림으로 용서함을 받습니다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그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히브리서 10: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브리서 7:24~25,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께 나아온 자들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그들은 1:27, “그리고 다 가르치심과 능력에 놀랐다고 합니다.

 

교회의 복음은 이런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입니다이런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일을 교회에서 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여러분께 선언합니다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은 이 예수님을 만나십시오그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놀라게 합니다.

 

마가복음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람마다 놀라는 장면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가복음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마가복음 2: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마가복음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마가복음 6: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마가복음 6:51,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마가복음 7: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2.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분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렀을 때 사람들이 예수를 따랐습니다(17,19).

 

마가복음 1:17,19,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그를 따르고 있나요?

 

사람들은 왜 교회에 옵니까?

요즘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이 어떠한 일들이 있는지 알기위해 아무도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죽은 사람을 살려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자신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분을 따라 살려고 옵니다바로 그것을 위해 오십시오그리고 그렇게 사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을 변화시킨 놀라우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었습니까?

 

3. 예수는 우리를 받아주시는 분입니다.

 

간절히 주님을 찾는 자들을 찾아오십니다.

 

요한복음 6:26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많이 몰려오자,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주님만을 간절히 구하는 자들이 적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6:65~69,

[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일심으로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73:25~26,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저는 이러한 여러분의 처음 발걸음의 방향이 계속 유지될 뿐만 아니라 더 견고해지고 흔들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자기가 좋은 때에자기가 편한 때에만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자기가 필요한 때에만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그러한 행동은 처음 교회에 나올 때로 끝났습니다.

 

어디에서 왔다고 합니까사방입니다모든 곳입니다.

여러분의 위치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무엇을 하고 지내셨습니까아무 조건이 없습니다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던 그것이 주님께 나아오는 걸림돌이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새터민(탈북자)들을 부르기 위해 복음이 들어갈 수 없는 북한 땅에서부터 부르시기도 합니다.

 

시편 61,

[1] [다윗의 시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내 기도에 유의하소서 [2] 내 마음이 눌릴 때에 땅 끝에서부터 주께 부르짖으오리니 나보다 높은 바위에 나를 인도하소서 [3]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4] 내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며 내가 주의 날개 밑에 피하리이다(셀라)

 

여러분은 이렇게 부름 받았습니다.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요 16:15)고 하시며 하나님은 당신의 소유권을 선언하시고 찾아 부르시고 있습니다사방에서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마가복음 11. 종의 만지심

 

마가복음 1:40~45,

[40]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42]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 엄히 경계하사 곧 보내시며 [44] 가라사대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45]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찬송가 509(21세기 456)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특히 사람들과 접촉하시는 장면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실 때입니다.

 

마가복음 1: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2. 문둥병자

 

마가복음 1: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께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3.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께 손을 댔습니다.

 

마가복음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4. 야이로의 딸

 

마가복음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5. 병인들

 

마가복음 6: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마가복음 6:56,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6. 귀먹고 어눌한 자

 

마가복음 7: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7. 소경

 

마가복음 8:23,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7. 귀신들린 아이

 

마가복음 9: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8. 어린아이 하나를 안으시고 설교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9. 어린 아이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예수님은 이른 아침 일찍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고 낮부터 늦게까지 병자들과 어린아이들을 만지고 안아주셨습니다그들의 병을 고치고 축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직접 만지시지 않고도 사람들을 구원하고 병을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일부러 접촉하셨다는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예수님의 행동에는 전혀 우연한 사건이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예수님이 문둥병자를 고치신 일이 나옵니다신약시대에는 문둥병보다 더 끔찍한 질병이 없었습니다요즘의 에이즈와 같은 천형으로 여겨지던 병입니다.

 

나병(문둥병)에 대한 사전적 정의:

나균(Mycobacterium leprae)에 의해 감염되는 만성 전염성 질환한센병(Hansen’s disease)이라고도 한다. 1871년 노르웨이의 의사 A.G.H.한센이 나환자의 나결절의 조직에서 결핵균 비슷한 세균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하여, 74년 Bacillus leprae 라 명명함으로써 유래하였다말초신경과 피부에 주로 침범하고경우에 따라서는 기타 부위의 조직에 침범하기도 한다일찍이 한의학에서는 가라(痂癩풍병(風病대풍라(大風癩)라 하였고치료가 불가능했던 시대에는 문둥병 또는 천형병(天刑病)이라 하였다현대의 학술적 분야에서는 나병으로 하되 사회적 분야에서는 한센병이라고 통칭한다.

 

나병은 피부과 영역의 질병이면서도 특별하게 취급하는 이유가 다음과 같다① 나균은 만성적으로 세대증식을 하며수년의 잠복기와 장기간의 경과를 가진다② 시험관 내 인공배양이 어려워 나병 퇴치의 의학적 발전이 저조하다③ 나균은 신경을 특이하게 침범함으로써 신경손상에 따른 불구를 유발한다④ 사람에게 특이하게 감염되는 질환으로서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옮기며이론적으로 다양한 매체에 의하여 균을 옮길 수 있다⑤ 전염경로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여 역학적 관리로서 임상적인 환자 추적에만 국한된다병의 경과나 증세치료 등은 인간의 면역과 나균의 상관관계에 따라 좌우되는데자연치유되는 경우에서부터 몸의 일부에 국한되는 경우전신에 퍼지는 경우 등 다양하다⑦ 나병은 질병 자체 외에 사회학적·정신과적 질환으로서 사회공동생활의 융화문제를 안고 있다.

 

현대의학에서도 나병은 인간 사회를 파괴하는 질병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그래서 구약시대에는 문둥병을 특별히 취급했습니다레위기 13,14장에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레위기 13:44~49,

[44] 이는 문둥 환자라 부정하니 제사장은 그를 부정하다 확실히 진단할 것은 그 환처가 그 머리에 있음이니라 [45]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 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 살지니라 [47] 만일 의복에 문둥병 색점이 발하여 털옷에나 베옷에나 [48] 베나 털의 날에나 씨에나 혹 가죽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있되 [49] 그 의복에나 가죽에나 그 날에나 씨에나 무릇 가죽으로 만든 것에 병색이 푸르거나 붉으면 이는 문둥병의 색점이라 제사장에게 보일 것이요

 

문둥병자가 접촉한 집은 불결한 것으로 선언되었고 문둥병자는 사람들과 접촉도 할 수 없고 사림들과 수 백여 미터를 떨어져 다녀야 했습니다.

 

문둥병이 구약에서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신체적 질병이지만 신약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죄를 상징하는 영적인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타난 문둥병자는 이런 의미에서 죄에 빠진 모든 인간을 대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가 예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문둥병자는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를 알았습니다어떤 것으로도 자신이 구원받을 수 없는 처지를 알았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오직 그분만이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음을 알고 그분께 간구합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이 문둥병자보다도 더 끔찍한 상태에 있습니다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도움을 구하는 자만이 구원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민망(憫惘)히 여기셨다”(41)는 말은 그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셨다는 뜻입니다주님은 그를 향하여 손길을 펴셨습니다주님의 가엾고 안타까운 마음이그리고 능력의 손길이 그에게 접촉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그가 치료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주님의 은혜와 능력의 손길로 치료받고 구원받은 문둥병자 같은 죄인들입니다내일 수능시험 본다는 학생이 밤새도록 게임하고 놀러 다니면 제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시험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죄인들이 벤틀리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고 강남 도곡동의 타워팰리스에 살 수 있습니까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은혜로 구원받은 죄악 덩어리라는 것을 감각하지 못하는 문둥병자입니다.

 

예수님을 찾은 문둥병자는 자신의 구원이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음을 고백합니다자신의 파탄된 인생과 몸을 구원할 분을 제대로 찾은 것입니다이와 같이 우리가 거친 세상에서 실패했을 때인생의 낭떠러지 계곡 깊은 곳에서 우리를 구원할 분은 오직 예수인 것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일들이 우리를 내리누를 때마다 우리의 구원의 능력이신 주님의 손길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주님은 가장 낮추어진 자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분명히 들으시고 일으키십니다그분이 여러분의 영혼과 삶을 은혜롭고 능력 있는 손으로 만져주실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