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 종의 기도
마가복음 1:35~39,
[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依支)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신자의 의지(意志)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행하셨기에 그런 당신의 놀라운 사역을 기도 없이는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요 5:19).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모든 신자의 삶의 전형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역과 섬김의 행동의 최우선으로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는 모든 신자의 최우선입니다.
*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 장면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14:35~36,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1. 기도의 시간: 은밀한 시간에.
이사야 50:4,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2. 기도의 장소: 은밀한 장소에서.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보통 기도에 대한 설교를 하면, 그 설교의 결론은 ‘새벽기도 잘 나오라’는 다그침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새벽, 철야를 하셨으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논리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지 실제 예수님이 그렇게 했다고는 성경에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장면들을 오늘날의 한국 교회 기도집회의 근거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새벽기도를 예수님이 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철야 혹은 심야기도도 늘 하신 것이 아닙니다. 많이 혹은 여러 번 하셨습니다.
새벽기도가 옳지 않다거나 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새벽기도는 한국 교회의 하나의 좋은 전통입니다. 기도를 해야 하지만, 그 근거가 정확하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기도를 언제, 어디에서 해야 하고 등이 정해져야 안심이 되는 분들은 스스로 혼자 찾아서는 못합니다.
기도는 제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다그쳐서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계급장이 아닙니다. 누가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하면 무슨 영적 권세가 붙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내가 새벽기도 안하는 사람들을 좀 잘못된 것으로 본다면 새벽기도 하여 좀 더 잘 믿는 것처럼 보이는 대신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신만의 영적 비밀을 구하지 않고 껍데기에서 신앙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열심 있는 기도 행위를 무슨 자랑처럼 남들에게 말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무저갱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남 보이려는 기도를 안 하고 자랑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솔직히 목사들이 설교 중에 대부분 기도를 다그치는 이유는 ‘집회’가 목적이고 ‘출석’이 목적이지 성도들의 내밀한 영적 성장이 일차 목적은 아닙니다. 물론 말은 그리 하지요.
부흥하면, 교인만 많으면, 힘이 세면 모든 것이 다 완성된 것으로 치부하는 오늘날의 성장제일 위주의 잘못된 가치관이 참된 영성의 본질을 흐려 놓았습니다. 목사 혼자라도 새벽기도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참된 기쁨을 발견하고 있다면 남들에게 애써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영성은 자신에게서 넘쳐서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 호소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샘이 깊은 물은 그 물이 저절로 큰 강에까지 이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왜 예수님이 기도하셨느냐, 무엇 때문에 기도해야 했느냐를 놓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일 때문에 소홀히 하기 쉬운 것, 그 모든 일들보다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 그것을 잡으려는 예수님의 노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 개인적으로도 이런 요구는 치열했고, 그렇게 실제 기도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귀신들린 자를 치료하신 후, 그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거나 구경을 하기 위해 시몬 베드로의 집에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귀신들린 자, 각색 병이 들린 자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의 바쁜 하루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공생애 일정을 거의 쉬는 시간도 없이 지내셨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일생을 모두 다 이 세상을 위해 헌신하신 것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은 바쁜 시간 중에서도 기도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봤듯이 마가가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베드로의 기억과 신앙을 이어받아 예수님의 생애를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기억에 잊지 못할 어떤 작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찾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마을을 돌아다녔다는 기억입니다. 물론 별 중요한 사건도 없었고 큰 중요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경험한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인상 중 하나가 예수님이 종종 혼자 있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베드로에게는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을 찾아다녀야하는 귀찮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아침이 되자마자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었고 네 명의 제자들은 재촉하는 사람들의 성화에 갑자기 사라진 예수님을 찾아다녀야 했던 것입니다.
그때에는 베드로에게는 잠시 성가신 일이었지만 나중에 몇 년이 지나 예수님을 회고하면서 그 귀중한 그 경험이 자신의 사역과 신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바쁘고 많은 일과 속에서도 그런 일들의 근원은 그 모든 문젯거리들을 가져 온 사람들이나 이 세상도 아니고,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자인 예수님 자신도 아니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신의 모든 사역을 준비할 때에 기도로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기도는 단지 좁은 의미로서 기도 행위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리라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구입니다. 기도는 수시로 나타나는 우리의 교만과 게으름을 물리치고 깨어있기를 위해 힘쓰는 훈련입니다. 그래서 마가의 스승인 베드로도 자신의 서신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의지의 표현으로 요한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삼위일체이시기에 하나님이시면서 아들이신 예수님은 기도가 필요 없으신 분입니다. 다른 외부의 능력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혼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이 온전히 하나로 일치하시면서도 아들로서 그리고 종으로서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을 하셨습니다. 순종이란 뜻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그 뜻을 존중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외에서도 중대한 일을 앞에 두시고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3: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12제자를 선택하기 전에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12~13,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변화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예수께서 5천명을 떡 다섯과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시고, 제자들을 앞서서 바다로 보내실 때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4:22~23, (막 6:46)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의 본으로서도 우리에게 기도의 가르침을 주십니다. 주님은 혼자 무리와 따로 떨어져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기도는 다음 사역의 준비이기도 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세 번 예수님이 기도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물론 일생 세 번만 기도했다는 것도 아니고 베드로가 발견한 장면 중에 특히 남기고 싶은 기도 장면이 세 번 마가복음에 기록이 된 것입니다.
마가에게 전하여 준 베드로의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면은, 예수님의 일생에서도 중요시점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
1.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첫 번째 사역을 하신 ‘안식일 다음날’ 새벽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우리가 알고 있는 ‘안식일 다음 날’은 예수님께 어떤 날입니까?
마가복음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2.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무리를 떠나 기도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세례 요한이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하는 사건 바로 다음에 이어집니다. 세례 요한의 때가 사라지고 예수님의 때가 되어 엄청난 이적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와 환호와 놀람과 인기에 빠지지 아니하시고 온전히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역과 기도에만 집중하셨습니다.
마가복음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3.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35~36,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렇게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일생 사역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와 기도로 계속 이어나가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기도는 가장 중요한 최우선이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 세 장면을 통해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시간’입니다.
기도는 제자도의 중요한 한 가지 입니다. 그래서 희생이 따릅니다. 기도는 기도할 시간을 필요로 하고 우리는 그 시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주었고 그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별도의 시간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4복음서의 기록을 보았듯이 예수님은 남들이 찾아오지 않을 때 혹은 기회를 찾아서 기도하셨습니다. 이른 아침의 기도는 이미 구약에서도 예언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고난의 종의 노래’라고 일컬어지는 이사야서 50장은,
이사야 50:4~5,
[4]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열으셨으므로 내가 거역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예수님은 아침마다 혹은 자주 하나님과의 조용한 교제와 기도를 통해 지혜를 얻으셨고 순종의 삶을 행하셨습니다.
2. 두 번째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는 마가복음 1:35의 ‘한적한 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인적이나 소음이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께 누가 기도처를 제공하거나 헌물한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스스로 장소를 조달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신 곳들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대로 은밀한 곳입니다.
마태복음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산 위에서, 그리고 동산에서 자신만의 골방을 만드셨습니다. 그곳은 또한 ‘우리의 골방’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힘써 만들어야 합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의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말씀하시고 그 아이를 고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들렸을 때 즉시 기도하면 낫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병 고치는 놀라운 이적의 힘이 ‘하나님께서 치료하실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이고 그 능력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유’는 ‘이런 종류’입니다. 어떤 종류의 문제가 있습니까? 마귀의 문제입니까? 질병의 문제입니까? 가정의 부부문제입니까? 자녀의 문제입니까? ‘이런 모든 종류의 문제들’을 주님께 맡겨드리십시오.
기도는 말로만 “믿습니다”는 마술사의 주문 같은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설혹 우리의 소원을 따라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더라도 순종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살겠다는 의지입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먼저 앞에 둘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심과 소원이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뜻이 나의 기도가 되어 주옵소서”라는 고백을 드려보십시오.
37절에서 39절까지 보시면,
마가복음 1:36~39,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시몬을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찾았다’는 표현은 ‘수색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주가가 막 치솟는데 이때 팔아야지요. 여기 혼자 앉아서 뭐하십니까? 빨리 나가셔서 사람들을 좀 더 치료해 주시고 능력을 보여주세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依支)하는 의지(意志)입니다. 머리로 이해가 되는 것 같아도 실제 우리 삶 속에서 훈련이 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시끄럽게 따라오는 무리를 떼어 두고 홀로 산으로 올라가시어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행동하며 살겠다는 신앙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여러분 속의 모든 욕망과 방법을 버리고 예수만 의지하겠다고 홀로 설 수 있습니까?
‘우리의 시끄러운 상황과 해결해야 할 복잡한 문제들 보다 더 중요하고, 아니 그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거룩한 뜻을 세우시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만물의 마지막 때와 같은 이 세상을 살겠다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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