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가을 전령  

야화  김 영 배

낮에는 여전히
검은 머리 벗겨내어
거대한 사막을 만들려는 듯
강렬한 햇볕을 쏟아낸다

길이 있는데
어찌 덥다고
길을 가지 않으랴
느티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그늘진 골목길 따라
숨을 껄떡거리며 지나왔다

어느 날 아침 무심코
하늘을 쳐다보았다
낯설었던 하늘
뭉게구름 꽃 활짝 피워놓고
환하게 웃으며 반겨준다
이런 때도 있나?

무심결에 길을 간다
그저 더위만 피하고
그저 가시밭길만 피하고 싶었다
작은 소망 가슴에 남아있는데 
어찌 여기서 길을 멈추랴

가녀린 몸매에
머리도 곱게 단장하고
하늘하늘 살랑거리는 연분홍 치마에 색동저고리
걸음은 사뿐사뿐
얼굴은 천사의 미소

언제 찾아왔는가
더위에 지친 나를 찾아
새벽이슬에 고운 향기 날리며
날 찾아온다 하니

상큼한 가을바람아
어서 앞장서라
나 설레는 마음 안고
버선발로 반기리라

---


야화 시인의 <설레는 가을 전령>은 늦더위의 고단함을 이겨낸 후 마주한 가을의 문턱과, 그로 인해 피어나는 설렘을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시를 읽으며 느껴지는 감상과 주요 특징을 정리해 드립니다.

1~2연: 늦더위의 고단함과 묵묵한 걸음. 강렬한 대비 

낮에는 여전히 대지를 사막으로 만들 것처럼 뜨거운 햇볕이 쏟아집니다. '검은 머리 벗겨내어'라는 표현에서 여름의 막바지 더위가 얼마나 맹렬한지 생생하게 다가옵니다.의연한 의지: 하지만 시인은 "길이 있는데 어찌 덥다고 길을 가지 않으랴"라며 삶의 여정을 묵묵히 이어갑니다. 느티나무 그늘과 골목길을 찾아 숨을 헐떡이며 걷는 모습은 우리네 지친 일상을 닮아 있어 깊은 공감을 자아냅니다.

3~4연: 무심코 마주한 변화의 징후. 반가운 하늘 

그저 더위와 가시밭길을 피하며 고단하게 걷던 어느 날 아침,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변해 있습니다. 뭉게구름 꽃을 피우고 환하게 웃는 가을 하늘은 지친 시인에게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5~6연: 가을 전령과의 설레는 만남. 코스모스의 의인화

가녀린 몸매, 연분홍 치마와 색동저고리, 사뿐사뿐한 걸음과 천사의 미소로 묘사된 존재는 단연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새벽이슬을 머금고 고운 향기를 풍기며 찾아온 가을의 모습을 마치 그리던 정인을 만난 것처럼 아름답게 의인화했습니다.

7연가을을 맞이하는 벅찬 기쁨. 버선발의 환대 

늦더위에 지쳐 있던 시인은 마침내 불어오는 상큼한 가을바람을 향해 "어서 앞장서라"며 재촉합니다. 가을을 너무나도 기다려왔기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기겠다는 마지막 구절에서 벅차오르는 설렘이 그대로 전해집니다.힘겨운 계절을 버텨낸 끝에 찾아오는 가을의 시원함처럼, 이 시는 일상의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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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s Learning, The Exposition of 1 Samuel

The King’s Learning 16 

 

 

사무엘상 17:41~54

[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

 

When your will is God's will, you will have your will.

- Charles Spurgeon (1834~1892), An English Baptist preacher. the Prince of Preachers.

당신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로 변할 때, 비로소 당신 자신의 의지를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 혼자 골리앗을 쓰러뜨리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믿는 자 모두가 다윗의 용사요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 골리앗이든 골리앗의 동생이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인들과 맞서서 용감하게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다윗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다윗의 기름 부음 받을 때 사무엘이 다윗에게만은 그 의미를 알려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다른 가족들이 다윗에게 보여준 행동들을 보면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일에 그렇게 중요성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다니기 시작하고 어떤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감히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못할 정도의 놀라운 체험을 말입니다. 여러분, 혹시 그런 체험을 한 경우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가 아니면 밝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보화를 숨겨 두고 혼자 기뻐한 어떤 사람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를 조용히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남들에게 말하는 것이 은혜를 나누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대부분 자기 자랑의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때로 그런 일과 같은 영적인 사건들은 너무나 은밀해서 정말 그런가하고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증표도 없습니다. 수료증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택받는 문제는 매우 주관적이고 비밀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다윗 자신에게는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의 인생을 완전히 변하게 만드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거듭났다고 할 때, 말로 잘 설명이 안 되고, 증거를 내놓을 수 없고, 드러낼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사건들이 없더라도 우리의 인생을, 아니 영원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1613절을 보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받았으니 어떤 외적인 증거가 뚜렷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다윗은 전혀 자신의 소명에 대해 내적인 고민이 필요 없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다윗이 성령 받은 어떤 특이한 사건을 체험한 적이 있다고 말합니까? 물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록이 중요하지 않은지, 아니면 우리들의 기대와 다르게 아예 그런 일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다윗의 특이한 성령체험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름 부음 받고 특이한 체험을 한 사람은 다윗이 아니고 버림받은 왕 사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을 받고 노래하고 때로는 거의 벌거벗고 예언까지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가장 뚜렷한 증거는 바로 믿음입니다.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졸아도 좋습니다. 때로 어려워서 못 알아들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설교를 듣고 저게 웬 허무맹랑한 얘기냐?’고만 생각하지 않으면 그 속에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성령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자신의 기름 부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그 위에 성령이 함께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16장의 결론입니다.

 

그러한 시기에 이스라엘에 위기가 닥칩니다. 블레셋 군대가 다시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과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믿음과 용기로 대패했던 그들이 이제 다시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쳐들어온 것입니다.

 

블레셋은 피의 경계선이라는 뜻의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습니다.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곳임을 짐작하게 하는 지명입니다. 사울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는 엘라(상수리나무)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대항하기 위해 엘라 골짜기 쪽으로 접근해 와서 그들도 골짜기 반대편 언덕에 진을 쳤습니다.

 

엘라 골짜기는 좁은 협곡이 아니라 넓은 분지와 같은 형태입니다. 대신 좌우로 언덕과 같은 둔덕이 있어서 그 각각의 둔덕 위에 양쪽 군대가 진을 치고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둔덕 아래로 내려오면 틀림없이 평야 전투에 강한 블레셋에 패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는 둔덕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과거 산악전에서 참패한 경험이 있는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있는 둔덕 위로 섣불리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치 상태에서 블레셋에서 한 장수가 나옵니다. 그 이름은 골리앗입니다.

 

골리앗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무엘상 17:4~7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싸움을 돋우는 자란 히브리어(ish habenayim)의 뜻은 ‘a man of the two middles’,  두 개의 중간에 있는 남자입니다. 두 군대 사이에 있는 남자입니다. 한 번의 전투로 승패를 가리는 용사를 말하고 영어로 champion이라고 합니다. 삼국지에서 한 명씩의 장수가 나와 일기토로 접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골리앗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합니다. 1규빗이 손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로 약 45cm, 한 뼘은 23cm입니다. 계측 방법에 따라 약간씩의 오차가 있습니다만 골리앗의 키는 약 2m 93cm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의 갑옷 무게만 오천 세겔, 60kg입니다.

 

이렇게 골리앗의 무장과 신체 크기를 측정할 수 있었던 자체가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골리앗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진영 가운데 평야 지역에 내려와 소리칩니다. 이 일이 40일 동안 계속됩니다.

 

사무엘상 17:16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40일 동안 골리앗의 위협과 놀림은 날로 더해 갔습니다. 성경에서 40일이란 특별한 숫자입니다.

 

먼저, 노아의 홍수 때 40일이란 숫자가 나옵니다. 40일 동안 하나님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창세기 7: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창세기 8: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 40일 동안 올라가 있는 동안 모세는 십계명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은 유혹에 빠져 금송아지를 만든 때입니다.

 

출애굽기 24: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출애굽기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출애굽할 때 12명의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조사하고 돌아왔는데 10명의 불신앙적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반항하다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됩니다.

 

민수기 13:25

사십 일 동안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민수기 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또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할 때 시험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가복음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누가복음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그러므로 40일이란 날수는 시험혹은 고난을 상징하는 날수입니다. 골리앗이 40일 동안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했습니다. 그 시간이 이스라엘에게 시험과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거인 같은 일들이 있습니다. 인생사 걱정거리, 어떤 못된 사람 등등.

 

그런데 이 거인들은 우리 일생에 한 번만 닥치지 않습니다. 이 문제들은 밤낮으로 엘라 계곡과 같은 여러분의 삶의 계곡에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이때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있는 형들에게 음식을 전달하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다윗의 큰 형 엘리압이 이렇게 다윗을 꾸짖습니다.

 

사무엘상 17: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이 말은 다윗이 집안에서 평소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 바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마 다윗이 얼굴이 잘생기고 악기를 잘 다루었기 때문에 동네에서는 교회 오빠 같은 인기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다윗도 잘 '노는' 축에 낄 수도 있습니다. 평소에 형들의 눈에는 다윗이 못마땅하게 생각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게으른 성격은 전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새가 다윗에게 전쟁터에 보내는 중요한 심부름을 시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개 보수적인 장남들은 일밖에 모르고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엘리압의 눈에는 다윗이 들에서 베짱이처럼 띵까띵까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엘리압 유형의 보수적인 성격의 사람은 남들이 게으르거나 법을 지키지 않거나 하면 성격상 용납이 안 됩니다. 매사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상황 판단을 하기에 비상식적인 행동이나 튀는 사고를 용납하지 않기도 합니다.

 

엘리압 같은 사람의 눈에는 골리앗이 너무 크고 무서운 적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눈에는 할례받지 못한,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거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사무엘상 17장의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 믿음을 갖고 용감하게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믿음을 본받자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여기에 우리의 실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까지는 좋은데 다윗을 본받자로 끝나는 것입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신앙의 인물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름 높은 신앙의 사람들의 행적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본받자라고 합니다.

 

물론 바울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하지만 그 말씀도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행동, 인격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다윗에게 두지 말고 다윗이 바라 본 하나님께 향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눈은 거인 골리앗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은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하였다.” 이것이 다윗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비결입니다.

 

역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사울은 보이는 블레셋의 세력을 두려워했습니다. 그의 판단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이성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는 겁먹었고 믿음이 없었습니다.

 

신명기 20:1~4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패배하는 때는 그들의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약해졌을 때입니다. 사울이 13장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겁을 먹고 도망친 사실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무엘상 13:5~7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믿음이 없는 사울이 나라를 다스렸을 때는 이스라엘이 그 대표의 믿음에 의해 똑같이 믿음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의 믿음도 달라졌습니다. 사무엘하 21:18~22, 사무엘하 23:8~37(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역대상 20:4~8에는 다윗의 용사 37명의 무용담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싸웠고 골리앗 같은 거인들과도 싸워서 이겼습니다.

 

즉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은 다윗의 믿음에 영향을 받아 같이 용감해졌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믿음은 전체에 영향을 끼칩니다. 전염성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 반대자들은 사무엘하 2119절에서 엘하난이 골리앗의 아우를 죽였다는 기록을 보고 성경을 잘못 번역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원래의 성경 원문에는 아우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엘하난이 다윗의 다른 이름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검증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사무엘하 21:19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Elhanan the son of Jaareoregim, a Bethlehemite, slew the brother of Goliath the Gittite ... [KJV]

 

Elhanan son of Jaare-Oregim the Bethlehemite killed Goliath the Gittite ... [NIV]

 

정확한 번역은 NIV가 맞습니다. KJV은 약간의 의역을 했고 한글은 좀 더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의역에는 충분히 근거가 있습니다. 한글 번역판에서 아우 라흐미가 나온 근거는 역대상 20:5입니다.

 

역대상 20:5 (사무엘상 21:19 보다 구체적, 사실적인 표현)

다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할 때에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And there was war again with the Philistines; and Elhanan the son of Jair slew Lahmi the brother of Goliath ...[KJV]

 

In another battle with the Philistines, Elhanan son of Jair killed Lahmi the brother of Goliath the Gittite, ...[NIV]

 

그러니까 사무엘하 21:19에서 죽은 골리앗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가 맞습니다. 과거에 사무엘서를 사본으로 받아 적을 때 실수로 아우라는 단어를 빠뜨렸거나 아니면 라흐미가 형의 복수를 위해 골리앗이라는 형의 이름을 일시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복잡한 신학책에나 나올만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성경이 골리앗과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 그리고 다른 거인들을 죽이는 용사들의 이야기를 일부러 기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윗의 치세 하에서의 백성에 대한 영향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요? 바로 여러분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초대교회인 갈라디아교회에서는 유대인이 주류가 아닙니다. 이방인의 교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이스라엘이라고 당연하게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 혼자 골리앗을 쓰러뜨리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믿는 자 모두가 다윗의 용사요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 골리앗이든 골리앗의 동생이든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인들과 맞서서 용감하게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조금 전 다윗의 승리의 비결이, 전쟁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일에도 함께하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맞서고 있는 전쟁은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1:30~33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이사야 52: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역대하 32:7~8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마지막으로 다윗의 전투 도구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다윗이 무엇으로 골리앗을 쓰러드렸습니까?

 

하나님은 목동의 방어무기인 물매돌이라는 평범한 도구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의 갑옷이나 무기는 다윗에게 맞지도 않고 숙달된 것들이 아닙니다. 다윗은 목동 그대로의 차림새가 전투에 더 편했고, 무기도 자신이 쓰던 양을 몰던 막대기와 물매가 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도구들을 사용하십니다.

 

골리앗과 비교해 제대로 된 무기가 없이 이룬 다윗의 승리는 그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승리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뭔가 대단하리라고 착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애굽의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방법을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지진도, 때로는 천둥번개도 사용하셨습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어떤 일도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사람을 사용하실 때는 그 사람이 가장 익숙한 것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지겨운 일일지라도 만약 그 일에 능숙하고 성실하게 행했다면 다윗의 물매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실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다윗은 오랫동안 심지어 기름 부음 받은 후에도 양 떼를 돌보면서 물매를 연습했고 실전에 쓰기도 했습니다.

시편 144:1

[다윗의 시]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에 눌려 사는 인간들에게, 아무 자랑할 것이 없어 보이는 작은 목자처럼 오셔서 사탄을 그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하심으로 쓰러뜨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을 죄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히브리서 2:9~18

[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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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이 보게 하셨으니

본문: 창세기 48:1~22

[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

[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

 

.................................

 

한국의 출산율이 2024년부터는 아주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0.8) 여전히 비관적인 수치입니다.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양육비 등 경제적 부담이 제일 크고, 자녀에 대한 책임감보다 개인적인 자유를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배경이 강했던 나라들에서는 국민의 종교관이 세속화된 이유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체로, 보수적인 교회는 결혼과 출산을 신자의 소명으로 가르치는 데 반해, 자유주의적인 교회는 결혼과 출산을 개인의 선택이라고 하며 삶의 질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식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요 선물이라고 합니다.

 

시편 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heritage, 상속, 재산)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reward, 보상)이로다

 

잠언 23:24~25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성경은 믿음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생명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이 자식에게 하나님의 언약 계승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에게 그런 축복을 했고, 요셉 이야기에서는 야곱이 요셉과 그 아들들에게 이어갑니다.

 

믿음을 자식에게 전하는 것이 복입니다.

 

신명기 6:6~7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디모데후서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위대한 믿음의 전승은 인간의 기대와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에 달려있음이 창세기를 통해 나타납니다.

 

이삭은 장자인 에서를 더 사랑하고 기대했지만,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 쌍둥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창세기 28:1~4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27장에서 야곱의 속임수와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에서인줄 알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신 것을 깨닫고 28장에서는 야곱을 불러야곱에게 다시 장자의 축복을 합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한 축복과 기원의 중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할 것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것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임을 의식적으로 재확인하고 승인한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했던 야곱 당사자가 이제 자신의 축복을 요셉의 아들들에게 이어지게 합니다.

 

창세기 48:1

이 일 후에(אַחַר, afterwards)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후에라는 단어는 부사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에서 시간의 변화와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세기 40: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이 단어가 사용된 48장의 이전인 47장 마지막 부분은 이렇습니다.

 

창세기 47:28~31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야곱은 요셉과 함께 애굽에서 17년을 거주하면서 나이가 147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이 왔음을 짐작합니다.

 

그래서 요셉을 불러 자신을 고향 가나안 땅에 장사 지내도록 명령합니다.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은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또한 야곱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요셉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죽음과 언약 계승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를 바라봅니다.

 

요즘 진돗개가 미국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진돗개의 주인을 향한 충성심 때문입니다. 진돗개를 분양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반려동물을 주셨을까요? 반려동물을 진정 사랑하며 함께 해 온 사람은 그 동물이 마치 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아니, 어쩌면 배신하는 사람보다 더 충성스럽고 주인에게 복종합니다.

 

그런데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평균적으로 주인인 사람보다 일찍 죽습니다. 가족을 일찍 떠나보내는 일은 인생에서 고작 몇 번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그런 거지하고 부모의 죽음을 당연히 여깁니다. 그러나 반려동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의 죽음을 보기 전에, 혹은 그 죽음을 잊을만하면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반려동물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배움을 얻습니다. 내 인생도 어쩌면 저렇게 짧을지도 몰라.”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우리가 얻는 것은 그들과의 교감과 행복만이 아니라, 그들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더 큰 가르침을 주고 갑니다.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겸손과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해 줍니다.

 

죽음을 앞둔 야곱에게 요셉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형제를 데리고 찾아갔습니다. 이때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19세에서 25세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축복은 할아버지가 아기 손자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아니라 장자권과 언약 계승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축복입니다.

 

이때 야곱도 자기 아버지 이삭처럼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요셉은 아버지의 오른손이 장자인 므낫세를 향할 수 있도록 므낫세를 자신의 왼손으로, 둘째 에브라임은 아버지의 왼손이 향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오른손으로 아버지에게 인도했습니다.

 

요셉은 전통적으로 오른손의 축복이 장자에 대한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양손을 엇갈려서 자신의 오른손이 왼쪽으로 온 에브라임에게, 왼손이 오른쪽으로 온 므낫세의 머리로 올렸습니다.

창세기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등장하는 요셉은 어렸을 때 치기 어린 자랑 외에 믿음에서는 거의 잘못한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요셉의 유일한 부정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창세기 48:17~18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יָרַע, to tremble)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요셉이 기뻐하지 아니했다는 단어는 יָרַע [yara] (to tremble, quiver)라는 단어입니다. 너무 두렵고 괴로워서 마음과 몸이 사정없이 떨리는 공황(panic), 공포, 비탄, 극도의 심리적 고통의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4817절이 요셉이 인격이나 신앙적으로 잘못했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여 반응한 유일한 기록입니다.

 

다른 구절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יָרַע , grieved)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한나의 마음이 아들을 낳지 못해서 극도로 낙심한상태입니다.

 

사무엘상 18: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יָרַע, displeased)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사울왕이 분노와 시기심으로 마음이 부들부들 떠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사야 15:4

헤스본과 엘르알레는 부르짖으며 그들의 소리는 야하스까지 들리니 그러므로 모압의 군사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그들의 혼이 속에서 떠는도다(יָרַע, faint)

 

극도의 공포를 말합니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가장 자신있었던 것들. 재산, 지식, 건강, 아무런 쓸모없습니다.

 

누구든지 죽음 같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불안과 공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순간적이나마 요셉도 그러했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마가복음 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하나님이 알려주셨든지, 아버지로서의 경험과 현명함이었든지 야곱은 요셉의 오른손에 누가 있을지 이미 알았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이 흐려지기 시작하면, 그 눈에 더 이상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분이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마태복음 26:6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출애굽기 15: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시편 48: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시편 110: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야곱은 요셉의 오른손에 이끌려 오는 손자를 통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을 선택받은 민족을 바라보았습니다.

 

창세기 48:12~14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에브라임 지파가 영국이고, 므낫세 지파가 미국이라는 '유사 신학'이 있습니다. 부록으로, 단 지파가 한국이라는 헛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야곱의 육신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의 눈으로 요셉의 오른손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챈 것처럼, 우리의 인생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욥기 12:10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에 있느니라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음을 요셉과 손자들에게 가르칩니다. 그것이 야곱의 축복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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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6:14~23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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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not be in the presence of God and be bored at the same time.

Mark Batterson (1969~), An American pastor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 동시에 지루해질 수는 없습니다.

 

Only in the wilderness is man made pure again. Boarding School (2018)

 

It is only when man is pushed naked in the wilderness of nothing to reveal his level and trueness.

인간은 허허벌판 광야에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내몰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수준과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시고 2천년이 지나도록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구원 받을 자를 고르시고 심판 받을 자를 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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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s Learning 15

다윗의 왕의 수업- 다윗의 기름 부음

사무엘상 16:14~23

 

사투리는 잘못된 언어가 아니라 한 지방에서 사용하는 방언(dialect*)입니다. 사투리는 그 지방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성경의 방언’ other tongues

 

"태풍이 옵니다. 유리창에 거미(금이)가 있으니 테이프를 붙이세요."

 

지금 학교가?”라는 말을 서울 사람들(끝에서)과 경상도 사람들(끝에서)이 다르게 받아들이듯이 만일 우리가 성경 속에 깊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본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성경의 언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Five of Them Were Wise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지 않고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면 유대교처럼 성경을 율법과 이야기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 관점은 성경을 하라와 하지 말라는 종교적 규범이나 “~가 잘 믿었으니 그를 본받자는 위인전기로 만듭니다.

 

성경도 이라는 언어의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16). 그러하기에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기록자이신 성령의 감동하심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9~10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인도하실 때 성령을 통해 진리를 조금씩 드러내시고 가르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러므로 자신의 등에 기름을 채워놓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처럼 늘 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1~4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이 마태복음 본문을 볼 때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다른 불쌍한 다섯 명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눠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성경의 모든 비유가 신앙윤리를 위한 목적까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비유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을 교훈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 대한 본문은 주님 오실 때를 대비하여 성령의 은혜를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무엘상 16장 본문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미래의 왕으로 준비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문 속에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나타나는 구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다윗에게 성령이 임하자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왜 이런 간격이 남아 있습니까?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닙니다. 다윗이 처음 기름 부음 받은 후 왕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그 오랜 세월 동안 놔두신 것입니까?

 

게다가 사울이 다윗을 불러 자신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악사 겸 병기 드는 자로 삼습니다. 즉 미친 왕을 위해 멀쩡한 다음 왕이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진실입니다.

 

우리가 늘 부딪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처음부터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자로 사는 것부터 훈련받습니다.

 

사울이 악령에 의해 고통을 받을 때 다윗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사무엘상 16: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여전히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그는 여전히 고독하고, 무명이고, 늘 하던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만들어 나가시는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사건은 사무엘상 16장 외에 두 번이 더 있습니다. 즉 다윗은 모두 세 번 기름 부음을 받고, 그중 왕이 되는 기름 부음은 두 번입니다.

 

첫 번째 왕이 되는 두 번째 기름 부음은 사무엘하 2장에 나옵니다.

 

사무엘하 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두 번째 왕이 되는 세 번째 기름 부음은 사무엘하 5장입니다.

 

사무엘하 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그렇다면 왜 다윗은 세 번 기름 부음을 받고 두 번 왕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인간의 입장에 맞춰 풀이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있는 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영적 세상을 보여주시기 위해 인간들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윗이 여러 번 기름 부음 받고 왕이 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징(signs and symbols)들과 장치(tools)들을 사용하십니다.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후 얼마 안 있어 공식적으로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처음부터 왕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기름 부음 받은 후 10년 이상이 걸립니다. 다윗이 나이 30에 왕위에 오르니까 기름 부음 받은 때가 15살이라고 해도 15년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사람들이 다윗을 대할 때 누구로 대하여야 합니까? 어떤 때는 기타 좀 다루고 노래 잘하는 교회 오빠같은 양치기 소년으로, 몇 년이 지나서는 골리앗을 이긴 소년 용사로, 사울의 부하 장군으로 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만이 다윗을 가장 잘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다른 왕에게 반역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생명을 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로마 황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받았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구경거리가 되어 고문과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 때에도 천주교든 기독교든 야소교는 반유교적이라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일제시대 때도 그러했고 6.25 전쟁 중에도 공산주의는 기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예수가 두 번째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통치하실 때까지는 기독교가 겉으로 아무리 번성하고 선교를 해도 수난과 고통과 오해를 받아야만 하는 종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에는 과연 아무 일 없는 것일까요? 잘 생각하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주인은 물질과 영광과 성공입니다. 예수가 아닙니다.

 

다윗 시대 때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아비가일입니다. 아비가일은 부자 나발의 부인입니다. 나발은 지방의 호족이고 재벌입니다.

 

사무엘상 25:1~3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נָבָל [nabal] origin from נָבֵל [nabel] foolish, 어리석은

אֲבִיגַיִל [Abigayil] my father is joy, 나의 아버지는 기쁨, 내 아버지가 기뻐하신다

 

사무엘상 25장에 나타난 다윗은 여전히 사울로부터 도망 다니는 부랑자 같은 처지였습니다. 단지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버림 받은 무리들과 그 가족들뿐이었습니다.

 

나발은 갈멜 지방의 부호입니다. 마침 양털을 깎는 시기에 다윗이 부근에 있어 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양털을 깎는 시기란 목축업에 있어서 추수이고 잔치하는 때입니다.

 

이에 대한 나발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사무엘상 25:10~11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break away)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다윗이 누구냐고 했을 때 다윗이 누구인지 나발이 전혀 모른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이미 다윗이 이새의 아들이란 것도 알았고, 사울로부터 도망 다니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나발의 말처럼 다윗이 사울을 배반하고 억지로 떠난, 즉  불법적으로 도망한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위협 때문에 도망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발이 다윗을 왜곡해서 평가하는 이유는 그를 깔보고 무시했기에 다윗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놀라운 고백을 보면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미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받아 사울 다음의 왕으로 내정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무엘상 25:28~31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오랫동안 쫓아다닐 때에 오히려 이스라엘 가운데 고통 받는 자들이 다윗에게 희망을 걸고 모여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다윗의 가족들이 함께 했고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사실이 가족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삼상 22:2).

 

사무엘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쫓겨 다니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소문이 퍼지고 퍼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왕은 사울이었습니다.

 

나발 자신이 가진 자이기 때문에 가진 자의 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현실과 세상에 바싹 붙은 자였습니다.

 

누가복음 12:16~21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나발은 하나님과 영원한 일에 대해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패배자인 다윗의 도움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신앙심 깊고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다윗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이 보는 다윗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이것이 나발과 아비가일의 차이이고, 또한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매일의 시험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의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왕으로서의 한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지만 사탄은 여전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탄의 종말의 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두 번째 오시는 그 날에 온전히 끝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다윗이 기름 부음 받자마자 즉시 왕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다윗에 대한 반응으로 어느 세력에 속한 백성들인지 갈라졌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양과 염소가 갈릴 날이 옵니다. 나발과 아비가일로 갈릴 날이 옵니다. 양털 깎는 날에 나발이 죽었듯이, 하나님의 추수의 때에 현 세상에서 힘없이 도망만 다니는 패배자로만 보이는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거부한 자들의 종말의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시고 2천년이 지나도록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구원 받을 자를 고르시고 심판 받을 자를 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Two Kings 여러분의 왕은 누구입니까?

사무엘조차도 처음에는 이새의 아들들을 볼 때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진정한 자신의 왕,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기 보다 아예 본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잘난 것, 멋진 것, 성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이 얼굴이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장애를 가졌거나 추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더욱 하나님의 선택기준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어떠하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선택받았을 때의 기준이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다는 의미가 거룩하고 성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따를 만한 성품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성결한 사람을 뽑으려 하신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잠언 20: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이 사람의 외모로, 가진 것으로, 능력으로, 거룩함으로 사람을 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만이 오직 죄에서 자유로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죄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왕의 수업은 이것입니다. 이 분만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그리스도께서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그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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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그네 길

본문: 창세기 47:1~31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

 

.................................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시기는 기원전 약 19세기(BC 1876)입니다. 이주 초기에는 애굽이 피난처가 되었으나 그 후 요셉의 공적을 기억하지 않는 애굽왕조가 나타나는 정치적인 변화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점점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애굽은 신앙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애굽은 히브리어로 미츠라임(מִצרַיִם)입니다.

 

이집트는 그리스어 아이깁토스’(Aigyptos - Heqpt/Aiqpt)에서 유래했으며 멤피스의 주신 프타의 영혼’(Hwt geb ptah)의 줄임말입니다.

 

미츠라임은 셈족어(히브리어) 표현이며 이집트어로 성채또는 요새화된을 의미하는 Msr/mdr에서 유래했습니다. 미츠라접미사 yim’은 이중성(복수)을 나타냅니다. 고대 이집트가 상하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풍요로운 곳으로 성경에 묘사됩니다.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세기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피난처로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

 

창세기 41:56~57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마태복음 2:13~15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창세기에서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간 절망의 장소였던 애굽이 흉년에서 가족을 구원하는 구원의 장소 변합니다.

 

애굽은 첫 사람 아담의 시작을 마지막 등장인물인 요셉을 통해 창세기를 완성하는 장소가 됩니다.

 

반대로 애굽은 부정적인 의미로서 우리의 육신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표현이 됩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기 1:6~10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이사야서는 애굽에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영적 애굽의 멸망을 통해 구원을 얻을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11: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이사야 19:18~22

[18]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46장 마지막 절에 애굽 사람은 목축을 가증히 여긴다는 요셉의 말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46: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every shepherd is an abomination unto the Egyptians)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가증스러운 것’(a disgusting thing, abomination)의 뜻은 종교, 물건, 윤리, 풍속을 대상으로 혐오하거나 증오한다는 말입니다.

 

애굽 사람이 목자의 삶을 가증스럽게 여긴 일차적 이유로서는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자신들의 정착 농경 질서를 해치는 집단으로 느껴졌고, 동물을 잡아먹는 유목민들이 동물을 신성시하는 애굽 종교관과 배치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이유는, 안전하기를 원하는 육신의 본능 때문입니다. 도시를 이루어서 외부와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현대의 광고는 무엇(what)을 사라고 하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제품을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why)에 대해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입거나 사용하는 것은 그 제품의 가치를 지지하면서도 소비자 스스로가 그런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특별함을 보여주는 나이키, 크리에티브함을 보여주는 애플, 안전함이 떠오르는 볼보.’

 

광고의 이미지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만들어냅니다.

 

인류 최초의 광고는 창세기에 있습니다.

 

창세기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탑 광고는 인간의 육신은 항상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도시와 서로 모이게 할 수 있는 지표를 형상화한 탑의 이미지를 같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이 땅에서의 삶은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도 세상 끝날에는 같이 모이고 완전한 나라를 이룹니다. 이 세상에서는 흩어지고 나그네로 사는 것이 그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모이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대형 교회 만드는 일은 바벨의 방법입니다.

 

부흥이란 많이 모여 대형 교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영적 각성으로 회개하며 말씀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장막의 삶, 디아스포라의 삶이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the strangers scattered)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who have been chosen)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히브리서 11:9~10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야곱은 죽기 전 요셉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자신을 장사하도록 명령한 것은 야곱의 그러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7:28~31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앞 이야기로 돌아가서) 요셉은 형제들이 바로와 만난 후,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소개합니다.

 

인류의 수명은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감소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성인 기준 생존자의 수명은 50~60세이고 드물게 70~80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마지막 장수의 혜택을 누리고 있던 야곱의 130살 수명은 애굽인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받게 했을 것입니다.

 

야곱의 나이가 많아 보여 흥미를 갖고 질문하는 바로에게 야곱은 나그네의 삶을 당당하고 겸손하게 소개합니다.

 

창세기 47:7~10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רַע, evil)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애굽인의 눈에 비추어 장수한 것으로 보이는 자신의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이 세상의 삶이 잠시 잠깐이요 아무리 장수하고 잘 살더라도 악(evil)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 인생임을 말합니다.

 

전도서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רַע, evil)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서 9: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רַע)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삶을 일시적인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지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을 겸손하게 하시고 인간의 참된 생명은 하나님께 있음을 조금씩 알게 하십니다.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장수한 자가 축복하는 것은 고대의 풍습입니다.

 

창세기 47:7, 10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요셉은 바로의 허락으로 가족들이 고센 땅에 머물게 하면서 또한 애굽과 다른 주변국들의 굶주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창세기 47: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기근이 심하다는 기록이 요셉 이야기에서 네 번째로 등장합니다.

41:31, 43:1, 47:4, 47:13, (12:10 참조).

 

창세기 41:31 [바로의 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כָּבֵד , heavy)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창세기 43: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כָּבֵד)

 

창세기 47:4

그들이(요셉의 형들)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כָּבֵד)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창세기 47:13

기근이 더욱 심하여(כָּבֵד)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던 때에도 기근이 심하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כָּבֵד)

 

기근이 심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진리의 말씀이 가려졌다는 의미입니다.

 

아모스 8:11~13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요셉이 애굽과 가나안의 주민을 구제하는 내용은 우리의 구원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7:13~26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그러나 성경은 백성들이 오히려 요셉의 대처를 감사하게 여겼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흉년 첫해에 애굽 사람들의 돈, 즉 은을 받고 곡식을 팔았습니다.

 

우리가 숨긴 영혼의 은 불순물이 가득하고 이 불순물은 불 같은 과정을 거쳐 제거됩니다.

 

여호수아 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에스겔 22:17~22

[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21]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불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되

[22] 은이 풀무 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잠언 25:4~5

[4]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5]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마태복음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리고 다시 굶주린 백성들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가축 대신 곡식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부패한 영혼은 짐승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도서 3: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우리 안의 자아, 옛사람의 정체는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15~18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옛사람을 의미하는 굶주린 애굽 사람들이 양식(진리)를 구하여 얻었을 때 자신 안에서 짐승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다음 해, 애굽 사람들은 이미 모든 소유를 요셉과 바로에게 바쳤기 때문에 자신의 육신과 땅만 남았습니다.

 

이것은 육신과 땅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땅, 약속의 땅을 받기 위해서는 육신의 땅을 팔아야 합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your bodies)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창세기 47:22~23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제사장들은 바로에게 식량을 공급받아 살고 있기에 그들의 토지만 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실제적으로는 이방 신의 제사장이지만, 47장에서는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또한 백성들에게 종자를 주고 씨앗을 뿌리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고 결실시키는 노동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행동입니다.

 

고린도전서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데살로니가전서 4: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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