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s Learning 15

 

사무엘상 16:14~23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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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not be in the presence of God and be bored at the same time.

Mark Batterson (1969~), An American pastor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 동시에 지루해질 수는 없습니다.

 

Only in the wilderness is man made pure again. Boarding School (2018)

 

It is only when man is pushed naked in the wilderness of nothing to reveal his level and trueness.

인간은 허허벌판 광야에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내몰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수준과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시고 2천년이 지나도록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구원 받을 자를 고르시고 심판 받을 자를 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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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s Learning 15

다윗의 왕의 수업- 다윗의 기름 부음

사무엘상 16:14~23

 

사투리는 잘못된 언어가 아니라 한 지방에서 사용하는 방언(dialect*)입니다. 사투리는 그 지방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성경의 방언’ other tongues

 

"태풍이 옵니다. 유리창에 거미(금이)가 있으니 테이프를 붙이세요."

 

지금 학교가?”라는 말을 서울 사람들(끝에서)과 경상도 사람들(끝에서)이 다르게 받아들이듯이 만일 우리가 성경 속에 깊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본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성경의 언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Five of Them Were Wise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지 않고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면 유대교처럼 성경을 율법과 이야기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 관점은 성경을 하라와 하지 말라는 종교적 규범이나 “~가 잘 믿었으니 그를 본받자는 위인전기로 만듭니다.

 

성경도 이라는 언어의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16). 그러하기에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기록자이신 성령의 감동하심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9~10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인도하실 때 성령을 통해 진리를 조금씩 드러내시고 가르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러므로 자신의 등에 기름을 채워놓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처럼 늘 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1~4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이 마태복음 본문을 볼 때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다른 불쌍한 다섯 명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눠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성경의 모든 비유가 신앙윤리를 위한 목적까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비유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을 교훈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 대한 본문은 주님 오실 때를 대비하여 성령의 은혜를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무엘상 16장 본문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미래의 왕으로 준비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문 속에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나타나는 구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다윗에게 성령이 임하자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왜 이런 간격이 남아 있습니까?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닙니다. 다윗이 처음 기름 부음 받은 후 왕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그 오랜 세월 동안 놔두신 것입니까?

 

게다가 사울이 다윗을 불러 자신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악사 겸 병기 드는 자로 삼습니다. 즉 미친 왕을 위해 멀쩡한 다음 왕이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진실입니다.

 

우리가 늘 부딪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처음부터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자로 사는 것부터 훈련받습니다.

 

사울이 악령에 의해 고통을 받을 때 다윗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사무엘상 16: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여전히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그는 여전히 고독하고, 무명이고, 늘 하던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만들어 나가시는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사건은 사무엘상 16장 외에 두 번이 더 있습니다. 즉 다윗은 모두 세 번 기름 부음을 받고, 그중 왕이 되는 기름 부음은 두 번입니다.

 

첫 번째 왕이 되는 두 번째 기름 부음은 사무엘하 2장에 나옵니다.

 

사무엘하 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두 번째 왕이 되는 세 번째 기름 부음은 사무엘하 5장입니다.

 

사무엘하 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그렇다면 왜 다윗은 세 번 기름 부음을 받고 두 번 왕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인간의 입장에 맞춰 풀이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있는 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영적 세상을 보여주시기 위해 인간들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윗이 여러 번 기름 부음 받고 왕이 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징(signs and symbols)들과 장치(tools)들을 사용하십니다.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후 얼마 안 있어 공식적으로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처음부터 왕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기름 부음 받은 후 10년 이상이 걸립니다. 다윗이 나이 30에 왕위에 오르니까 기름 부음 받은 때가 15살이라고 해도 15년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사람들이 다윗을 대할 때 누구로 대하여야 합니까? 어떤 때는 기타 좀 다루고 노래 잘하는 교회 오빠같은 양치기 소년으로, 몇 년이 지나서는 골리앗을 이긴 소년 용사로, 사울의 부하 장군으로 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만이 다윗을 가장 잘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다른 왕에게 반역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생명을 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로마 황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받았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구경거리가 되어 고문과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 때에도 천주교든 기독교든 야소교는 반유교적이라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일제시대 때도 그러했고 6.25 전쟁 중에도 공산주의는 기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예수가 두 번째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통치하실 때까지는 기독교가 겉으로 아무리 번성하고 선교를 해도 수난과 고통과 오해를 받아야만 하는 종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에는 과연 아무 일 없는 것일까요? 잘 생각하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주인은 물질과 영광과 성공입니다. 예수가 아닙니다.

 

다윗 시대 때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아비가일입니다. 아비가일은 부자 나발의 부인입니다. 나발은 지방의 호족이고 재벌입니다.

 

사무엘상 25:1~3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נָבָל [nabal] origin from נָבֵל [nabel] foolish, 어리석은

אֲבִיגַיִל [Abigayil] my father is joy, 나의 아버지는 기쁨, 내 아버지가 기뻐하신다

 

사무엘상 25장에 나타난 다윗은 여전히 사울로부터 도망 다니는 부랑자 같은 처지였습니다. 단지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버림 받은 무리들과 그 가족들뿐이었습니다.

 

나발은 갈멜 지방의 부호입니다. 마침 양털을 깎는 시기에 다윗이 부근에 있어 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양털을 깎는 시기란 목축업에 있어서 추수이고 잔치하는 때입니다.

 

이에 대한 나발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사무엘상 25:10~11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break away)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다윗이 누구냐고 했을 때 다윗이 누구인지 나발이 전혀 모른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이미 다윗이 이새의 아들이란 것도 알았고, 사울로부터 도망 다니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나발의 말처럼 다윗이 사울을 배반하고 억지로 떠난, 즉  불법적으로 도망한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위협 때문에 도망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발이 다윗을 왜곡해서 평가하는 이유는 그를 깔보고 무시했기에 다윗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놀라운 고백을 보면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미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받아 사울 다음의 왕으로 내정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무엘상 25:28~31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오랫동안 쫓아다닐 때에 오히려 이스라엘 가운데 고통 받는 자들이 다윗에게 희망을 걸고 모여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다윗의 가족들이 함께 했고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사실이 가족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삼상 22:2).

 

사무엘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쫓겨 다니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소문이 퍼지고 퍼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왕은 사울이었습니다.

 

나발 자신이 가진 자이기 때문에 가진 자의 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현실과 세상에 바싹 붙은 자였습니다.

 

누가복음 12:16~21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나발은 하나님과 영원한 일에 대해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패배자인 다윗의 도움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신앙심 깊고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다윗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이 보는 다윗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이것이 나발과 아비가일의 차이이고, 또한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매일의 시험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의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왕으로서의 한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지만 사탄은 여전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탄의 종말의 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두 번째 오시는 그 날에 온전히 끝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다윗이 기름 부음 받자마자 즉시 왕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다윗에 대한 반응으로 어느 세력에 속한 백성들인지 갈라졌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양과 염소가 갈릴 날이 옵니다. 나발과 아비가일로 갈릴 날이 옵니다. 양털 깎는 날에 나발이 죽었듯이, 하나님의 추수의 때에 현 세상에서 힘없이 도망만 다니는 패배자로만 보이는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거부한 자들의 종말의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시고 2천년이 지나도록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구원 받을 자를 고르시고 심판 받을 자를 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Two Kings 여러분의 왕은 누구입니까?

사무엘조차도 처음에는 이새의 아들들을 볼 때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진정한 자신의 왕,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기 보다 아예 본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잘난 것, 멋진 것, 성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이 얼굴이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장애를 가졌거나 추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더욱 하나님의 선택기준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어떠하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선택받았을 때의 기준이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다는 의미가 거룩하고 성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따를 만한 성품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성결한 사람을 뽑으려 하신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잠언 20: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이 사람의 외모로, 가진 것으로, 능력으로, 거룩함으로 사람을 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만이 오직 죄에서 자유로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죄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왕의 수업은 이것입니다. 이 분만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그리스도께서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그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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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그네 길

본문: 창세기 47:1~31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

[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

[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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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시기는 기원전 약 19세기(BC 1876)입니다. 이주 초기에는 애굽이 피난처가 되었으나 그 후 요셉의 공적을 기억하지 않는 애굽왕조가 나타나는 정치적인 변화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점점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애굽은 신앙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습니다.

 

애굽은 히브리어로 미츠라임(מִצרַיִם)입니다.

 

이집트는 그리스어 아이깁토스’(Aigyptos - Heqpt/Aiqpt)에서 유래했으며 멤피스의 주신 프타의 영혼’(Hwt geb ptah)의 줄임말입니다.

 

미츠라임은 셈족어(히브리어) 표현이며 이집트어로 성채또는 요새화된을 의미하는 Msr/mdr에서 유래했습니다. 미츠라접미사 yim’은 이중성(복수)을 나타냅니다. 고대 이집트가 상하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풍요로운 곳으로 성경에 묘사됩니다.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창세기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피난처로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경우:

 

창세기 41:56~57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마태복음 2:13~15

[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창세기에서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간 절망의 장소였던 애굽이 흉년에서 가족을 구원하는 구원의 장소 변합니다.

 

애굽은 첫 사람 아담의 시작을 마지막 등장인물인 요셉을 통해 창세기를 완성하는 장소가 됩니다.

 

반대로 애굽은 부정적인 의미로서 우리의 육신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표현이 됩니다. 가장 많이 사용된 곳은 출애굽기입니다.

 

출애굽기 1:6~10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이사야서는 애굽에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영적 애굽의 멸망을 통해 구원을 얻을 것을 말합니다.

 

이사야 11: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이사야 19:18~22

[18]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

[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46장 마지막 절에 애굽 사람은 목축을 가증히 여긴다는 요셉의 말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46: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every shepherd is an abomination unto the Egyptians)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가증스러운 것’(a disgusting thing, abomination)의 뜻은 종교, 물건, 윤리, 풍속을 대상으로 혐오하거나 증오한다는 말입니다.

 

애굽 사람이 목자의 삶을 가증스럽게 여긴 일차적 이유로서는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자신들의 정착 농경 질서를 해치는 집단으로 느껴졌고, 동물을 잡아먹는 유목민들이 동물을 신성시하는 애굽 종교관과 배치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인 이유는, 안전하기를 원하는 육신의 본능 때문입니다. 도시를 이루어서 외부와 자연재해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현대의 광고는 무엇(what)을 사라고 하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제품을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why)에 대해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제품을 입거나 사용하는 것은 그 제품의 가치를 지지하면서도 소비자 스스로가 그런 가치를 갖고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특별함을 보여주는 나이키, 크리에티브함을 보여주는 애플, 안전함이 떠오르는 볼보.’

 

광고의 이미지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만들어냅니다.

 

인류 최초의 광고는 창세기에 있습니다.

 

창세기 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탑 광고는 인간의 육신은 항상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도시와 서로 모이게 할 수 있는 지표를 형상화한 탑의 이미지를 같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이 땅에서의 삶은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도 세상 끝날에는 같이 모이고 완전한 나라를 이룹니다. 이 세상에서는 흩어지고 나그네로 사는 것이 그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모이고 세력을 형성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 대형 교회 만드는 일은 바벨의 방법입니다.

 

부흥이란 많이 모여 대형 교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부흥은 영적 각성으로 회개하며 말씀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장막의 삶, 디아스포라의 삶이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베드로전서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the strangers scattered)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who have been chosen)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히브리서 11:9~10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야곱은 죽기 전 요셉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자신을 장사하도록 명령한 것은 야곱의 그러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7:28~31

[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앞 이야기로 돌아가서) 요셉은 형제들이 바로와 만난 후,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소개합니다.

 

인류의 수명은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감소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성인 기준 생존자의 수명은 50~60세이고 드물게 70~80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마지막 장수의 혜택을 누리고 있던 야곱의 130살 수명은 애굽인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받게 했을 것입니다.

 

야곱의 나이가 많아 보여 흥미를 갖고 질문하는 바로에게 야곱은 나그네의 삶을 당당하고 겸손하게 소개합니다.

 

창세기 47:7~10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רַע, evil)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애굽인의 눈에 비추어 장수한 것으로 보이는 자신의 나이는 아무것도 아니며, 이 세상의 삶이 잠시 잠깐이요 아무리 장수하고 잘 살더라도 악(evil)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 인생임을 말합니다.

 

전도서 1: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רַע, evil)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전도서 9:3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일반이라 이것은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 중의 악한

(רַע)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삶을 일시적인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지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을 겸손하게 하시고 인간의 참된 생명은 하나님께 있음을 조금씩 알게 하십니다.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습니다. 장수한 자가 축복하는 것은 고대의 풍습입니다.

 

창세기 47:7, 10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요셉은 바로의 허락으로 가족들이 고센 땅에 머물게 하면서 또한 애굽과 다른 주변국들의 굶주린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창세기 47: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기근이 심하다는 기록이 요셉 이야기에서 네 번째로 등장합니다.

41:31, 43:1, 47:4, 47:13, (12:10 참조).

 

창세기 41:31 [바로의 꿈]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כָּבֵד , heavy)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창세기 43: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כָּבֵד)

 

창세기 47:4

그들이(요셉의 형들)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כָּבֵד)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창세기 47:13

기근이 더욱 심하여(כָּבֵד)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아브라함이 기근 때문에 애굽에 내려갔던 때에도 기근이 심하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כָּבֵד)

 

기근이 심하다는 말은 영적으로 진리의 말씀이 가려졌다는 의미입니다.

 

아모스 8:11~13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요셉이 애굽과 가나안의 주민을 구제하는 내용은 우리의 구원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47:13~26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그러나 성경은 백성들이 오히려 요셉의 대처를 감사하게 여겼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흉년 첫해에 애굽 사람들의 돈, 즉 은을 받고 곡식을 팔았습니다.

 

우리가 숨긴 영혼의 은 불순물이 가득하고 이 불순물은 불 같은 과정을 거쳐 제거됩니다.

 

여호수아 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에스겔 22:17~22

[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20]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21]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불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되

[22] 은이 풀무 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잠언 25:4~5

[4]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5]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마태복음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리고 다시 굶주린 백성들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가축 대신 곡식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부패한 영혼은 짐승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도서 3: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우리 안의 자아, 옛사람의 정체는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15~18

[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옛사람을 의미하는 굶주린 애굽 사람들이 양식(진리)를 구하여 얻었을 때 자신 안에서 짐승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다음 해, 애굽 사람들은 이미 모든 소유를 요셉과 바로에게 바쳤기 때문에 자신의 육신과 땅만 남았습니다.

 

이것은 육신과 땅이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땅, 약속의 땅을 받기 위해서는 육신의 땅을 팔아야 합니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your bodies)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린도전서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창세기 47:22~23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제사장들은 바로에게 식량을 공급받아 살고 있기에 그들의 토지만 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이 실제적으로는 이방 신의 제사장이지만, 47장에서는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또한 백성들에게 종자를 주고 씨앗을 뿌리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고 결실시키는 노동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행동입니다.

 

고린도전서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데살로니가전서 4: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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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6:1~13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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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예수님이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하는 것처럼 설교하셨다면, 그는 결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을 것이다.

레오나드 레이븐힐, An English Christian evang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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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라운 기적이지만, 한 사람의 영적인 문제(issue)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 경우는 의외로 많습니다. 이것이 거듭났다고도 할 수 있는 사울의 문제(problem)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대부분 그것이 문제인지 모릅니다.”

“Believing in Jesus and being born again is a wonderful miracle, but it is surprising that a person’s spiritual issue don't rule over his/her whole life. This is Saul's problem even if he is born again. And maybe the problem is for most of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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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s Learning 14

왕의 선택 3rd. - 다윗의 기름 부음

사무엘상 16:1~13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 부을 때는 누구를 선택할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왕이 될 자를 하나님이 직접 사무엘에게 보내셨습니다(삼상 9:15~17).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이 진실로 원하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원한 왕이었고 백성들의 기준에서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울은 자신의 몇 가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사무엘은 다시 다음 왕이 될 자를 찾아 기름을 부어 세워야 했습니다. 새 왕은 사람들이 원하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사도행전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그런데 사무엘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단지 그 사람이 베들레헴 마을의 이새의 아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의 뜻은 ‘떡집’입니다. 이곳에서 약 천년 후 예수님이 태어나십니다. 예수님의 부모님들이 살던 마을은 갈릴리 나사렛이지만 하나님이 그들이 먼 조상의 고향으로 오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해 몸이 찢기고 부서져야 했습니다.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한복음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이 마을에 이새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의 아들 중 한 사람을 왕으로 미리 정하셨다고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처음에 장남 엘리압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장남으로서 또 용모로 보아서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기준은 사울이 선택되었을 때와 같습니다.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the heart)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 즉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사무엘상 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another heart)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사울의 마음도 변화한 마음입니다. 그는 새 마음(another heart)을 가졌습니다.

 

구원받아 거듭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라운 기적이지만 한 사람의 영적인 문제(issue)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지 않는 경우는 의외로 많습니다. 이것이 거듭났다고도 할 수 있는 사울의 문제(problem)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 대부분 그것이 문제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회개의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사울이 집권한 지 약 10년 후에 다윗이 태어납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때가 10대 중반이라면, 하나님은 사울이 범죄한 이후, 사무엘이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겠다고 떠난 이후에도 몇 년 동안 회개의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회들도 끝날 때가 있습니다.

 

사울은 ‘믿음에서 실패한 거듭난 신자의 전형’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를 세우시려고 합니다. 그가 다윗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다루시고 왕으로 만들어 나가시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택한 백성’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A Man After God’s Own Heart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의 중심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뽑을 때는 많은 외형적인 조건들을 봅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사람을 세울 때도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어떤 직분을 줄 때 그 사람의 ‘헌금 능력’을 고려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목사를 뽑을 때도 ‘말 잘 듣고 자신들의 자부심을 세워줄 사람’에게 눈이 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하나님이 원하신 결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에 사울만 가득하고 다윗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의 사람들을 세울 때의 기준이 이러하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6~29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것으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성공자(winner)가 아니고 선택받은 루저(chosen loser)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무것도 아닌 자’를 통해 역사하시겠다고 합니다.

 

역대하 16:9a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입니다. 이 표현은 다른 말로 ‘하나님께 감춰진 것이 없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Kingdom Seekers(마 6:33)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찾습니다.

 

룻기 4장에서 다윗의 조상이 되는 보아스와 룻의 아들 이름이 오벳(עוֹבֵד)이라고 합니다(룻 4:17). 그 뜻은 ‘종’(servant)입니다. 왜 하필 좋은 이름 놔두고, 심지어,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부모가 자기 자식 이름을 ‘종놈’으로 지었는지요?

 

‘종’이라는 뜻을 가진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세상에서 떠받드는 ‘대단한 주의 종’이 아니라 정말 진실한 한 명의 종입니다.

 

종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인을 섬기는 자입니다. 자신의 주권이 없습니다. 주인에 의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종의 마음을 가진 자를 찾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왔을 때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그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시편 78:70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시편 89:20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하나님이 당신의 종에게 주신 첫 사명이 사울왕의 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후 사울의 궁에 불려 가서 사울의 종노릇을 합니다. 실제로 다윗의 연주로 사울의 정신병을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무기 드는 자가 되었습니다. 먼저 사람의 종이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훈련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훈련하신 과정을 보겠습니다.

 

1. 다윗을 고독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에 하나님은 다윗이 혼자 있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혼자서 견딘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보고 있을 때 다윗은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새나 그 형들은, 어린 막내아들은 당연히 사무엘이 관심을 두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정에서조차 중대사에서 밀려난 인물입니다. 양 치는 일이란 아이들이나 별 능력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천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소는 누가 키웠나요?

 

그러나 다윗이 양 치던 들판과 자연은 다윗을 종으로 훈련하는 학교였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학교입니다. 그는 그 속에서 혼자 있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비인격적인 대접과 환경을 미리 공부했습니다.

 

한여름의 땡볕과 바람과 폭풍우 속에서 홀로 양 떼를 지켜야 하는 고독이 다윗이 훗날 왕이 되는 수업이 되게 했습니다.

 

요한복음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2. 다윗은 이름 없는 자로 자랐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다고 가족들이 그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의 방문이 사람들의 관심 밖에 살던 다윗을 변화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처음에는 이런 고독과 미천함에 처하는 법을 배웁니다. 무명과 미천함 속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하나님이 허락하는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3. 다윗은 단조로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일상생활은 단조로운 일입니다. 평범한 일들입니다. 뚜렷한 변화가 없습니다. 늘 계속합니다. 끝없는 반복입니다. 다윗은 이런 일들을 몇 년을 했습니다.

 

아무도 주변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이것이 왕의 수업입니다.

 

4.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신의 삶의 진실을 발견했습니다.

 

고독과 무명함과 단조로운 인생을 경험하는 것은 다른 성자나 종교 지도자들이 정신 수행하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가지 더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자각(自覺, self-awareness)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겠다고 하자 사울에게 불려갑니다.

 

사무엘상 17:33~37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사울은 다윗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대답합니다. 자신이 양을 치면서 사자와 곰과 싸워 이겼는데 블레셋 사람도 그 짐승들처럼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까? 바로 들에서 양을 칠 때였습니다. 고독과 무관심과 단조로움 속에서도 그는 종종 양을 노리고 습격한 맹수들과 싸워 이겼고 그 모든 결과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싸워야 했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그는 고독한 속에서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골리앗과 싸워도 자신은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사울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거룩한 성자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신자로 살아가는 것이 없던 능력이 생기고 세상과 떨어진 별종의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지금까지 하던 양치기 일을 하며, 고독 속에서, 무명함 속에서, 단조로움 속에서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이 변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하고 사는 모든 일상사를 변하게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반응하는 나 자신이 변했기 때문에 세상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이 변하면 자동차 접촉 사고를 당해도 세상이 달리 보여야 합니다. 때로 팔다리 없는 사람들이, 앞 못 보고 듣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가 눈이 떠지고 정상이 되지는 않지만, 세상을 바꾸잖아요. 여러분이 변하면 아기들 똥 기저귀 갈아주는 것 같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는 중에도 파리 잡듯 맹수와 거인을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사자나 곰 같은 어려운 일이 달려들어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독사와 입을 맞추면 안 됩니다(Cf. 막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미국 켄터키주의 오순절교회의 제이미 쿠츠(Jamie Coots) 목사는 2014년 2월 16일 저녁 집회에서 독사를 잡고 설교하다가 물려 죽은 일도 있습니다. 그 아들 코디 쿠츠(Cody Coots)도 목사가 되어 똑같이 시험하다가 2018년 8월 18일에 독사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https://meaww.com/son-pastor-killed-venomous-snake-sermon-rattlesnake-life-inside)

 

마태복음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하나님이 허락하는 환경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옳음을 드러내고 증명하기 위한 시도는 그것이 겉으로 신앙의 형태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사람으로, 종으로 정하시고 사용하시려는 데 있어서 절대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구원받아 신자가 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마 평생이 그 훈련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실 다윗이 그렇게 평생을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 가운데 살았던 것을 이미 잘 아시지 않습니까?

 

19세기 후반, 미국의 사무엘 로건 브렝글(Samuel Logan Brengle, 1860~1936, 구세군 부장)이라는 20대 청년이 영국의 구세군의 열정에 감동하여 구세군 사관이 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당시 영국 구세군의 창시자요 대표인 윌리암 부스 대장(General William Booth, 1829~1912)처럼 유명한 설교가로 훈련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막상 구세군사관학교에 들어가자, 부스 대장은 그에게 작은 구석방에서 다른 사관들의 구두를 닦도록 명령했습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여기까지 건너와서 남의 구두나 닦으려고 왔는가? 나는 바보인가?” 브렝글의 자존심은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는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닦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의 마음속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훗날 브렝글은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구두를 닦는 일은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최고의 훈련이었습니다. 나는 겸손을 훈련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때 그 후 4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하나의 열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http://metroyouthnetwork.com/2005/09/23/meet-samuel-logan-brengle-1860-1936/

 

 

우리는 이미 왕으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으로 우리의 ‘왕의 수업’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고린도전서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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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센으로”

본문: 창세기 46:1~34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

[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8]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

[9] 르우벤의 아들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요

[10] 시므온의 아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스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요 /

[11] 레위의 아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요

[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

[13] 잇사갈의 아들은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14] 스불론의 아들은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

[15] 이들은 레아가 밧단아람에서 야곱에게 난 자손들이라 그 딸 디나를 합하여 남자와 여자가 삼십삼 명이며

[16] 갓의 아들은 시뵨과 학기와 수니와 에스본과 에리와 아로디와 아렐리요 /

[17] 아셀의 아들은 임나와 이스와와 이스위와 브리아와 그들의 누이 세라며 또 브리아의 아들은 헤벨과 말기엘이니

[18]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레아에게 준 실바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육 명이라 /

[19]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20] 애굽 땅에서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요셉에게 낳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이요 /

[21]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과 훕빔과 아릇이니

[22]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십사 명이요 /

[23] 단의 아들 후심이요

[24] 납달리의 아들 곧 야스엘과 구니와 예셀과 실렘이라 /

[25] 이들은 라반이 그의 딸 라헬에게 준 빌하가 야곱에게 낳은 자손들이니 모두 칠 명이라

[26]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

[27]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

 

.................................

 

45장에서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살아있고 애굽의 총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창세기 45:25~28

[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26] 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28] 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그런데 갑자기 28절에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이야기는 32장에 얍복강의 씨름에서 시작합니다.

 

창세기 32:24~28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יַעֲקֹב, ‘heel holder’ or ‘supplanter’ 뒤꿈치를 잡은 자, 속이는 자)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יִשְׂרָאֵל, ‘El rules’ or ‘he who struggles with El’)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45장 이전까지 야곱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믿지도 않았기에 ‘야곱’이었습니다. 이제 요셉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고 온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가기로 결심하자 성경은 그를 ‘이스라엘’이라고 칭합니다(그 후 야곱과 이스라엘을 병행 사용).

 

야곱이 바뀐 이름, 민족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창세기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백성을 다루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46장에서도 다시 한번 그 변화를 강조합니다.

 

창세기 46:1~6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그 후로도 야곱이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되기는 하되 45장 마지막과 46장부터는 민족의 공식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이 사용됩니다.

 

46장 시작 부분에서 야곱은 특별한 확인 과정을 행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때에 애굽으로 내려가려던 일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 일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10~13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블레셋으로 간 이삭:

 

창세기 26:1~2, 9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애굽에 내려가지 않았지만, 블레셋에 거하는 중에 블레셋 아비멜렉의 경고를 듣게 됩니다.

 

그들의 자손인 야곱은 그 모든 사실을 잘 알았고, 자신과 가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삭이 제단을 쌓은 곳이고 아비멜렉과 계약을 한 곳입니다.

 

창세기 26:23~25, 33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33]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the well of the oath)더라

 

창세기 46:2~3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in the visions)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이 브엘세바에서 야곱의 이름을 두 번 부르십니다.

 

이것은 출애굽기의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생각하게 합니다.

 

출애굽기 3: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브엘세바에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모세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약속의 성취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나라로 이루어집니다.

 

그 약속과 성취를 보여주기 위해 성경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야곱과 그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면은 단순한 한 가족이 아닌 ‘민족’(나라)의 이동으로 취급됩니다.

 

그래서 그 자손들의 이름과 숫자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46:8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 가족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야곱과 그의 아들들 곧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이 명단에는 레아를 제외한 야곱의 부인들 이름들이 빠져있습니다(라헬은 베냐민을 낳고 사망). 애굽에 있는 요셉과 가족들의 숫자까지 포함했고 심지어 태어나지도 않은 베냐민의 아들들까지 포함되었습니다.

 

창세기 46:26~27

[26] 야곱과 함께 애굽에 들어간 자는 야곱의 며느리들 외에 육십육 명이니 이는 다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이며

[27] 애굽에서 요셉이 낳은 아들은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애굽으로 내려간 70명의 가족의 수는 수학적인 계산으로 된 숫자가 아닙니다.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7은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하고 10은 완전함을 상징합니다.

7X10=70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을 때 암양 일곱 마리를 아비멜렉에게 따로 주면서 증거를 삼습니다.

 

창세기 21:27~31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냐

[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 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70명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 즉 택함 받은 자들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사도행전은 75명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7:14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이 숫자는 창세기 마지막 상황의 기준에서 요셉의 아들들과 후손들의 세대 수를 합한 숫자입니다(에브라임 포함 2대, 므낫세 포함 3대, 합 5대).

 

창세기 50: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2대: ① 에브라임 – ② 에브라임의 아들(요셉의 손자)

 

3대: ① 므낫세 - ② 므낫세의 아들 마길 – ③ 마길의 아들(요셉의 증손자)

 

창세기의 야곱 가족의 숫자는 민족을 말하기에는 적은 수이지만, 하나님이 앞으로 민족을 이루실 것임을 보여줍니다.

 

출애굽기 1:5~7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신명기 10:22

애굽에 내려간 네 조상들이 겨우 칠십 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 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처음,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모습은 창세기 처음 부분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창세기 1:27~28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세상을 정복한다는 의미는 최후의 날 너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창세기 천지창조의 완성입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 민족은 영적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로마서 2:28~29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裏面的, inwardly)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갈라디아서 6:15~16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참고로, ‘14만 4천 명’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전체 숫자가 아닌 ‘요셉의 환난’을 거치는 ‘몇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κ, among, from)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12 X 12,000 = 144,000

= 선택받은 자들의 상징 수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κ, [some] of)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계 2:10)

 

κ (ek, before consonants) and ξ (ex, before vowels): from, out of, by, away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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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듦

野花今愛 김영배


꽃은 얼마나
낯 뜨거운 태양을 품어야
지지 않는 향취일까

열매는 얼마나
낮과 밤의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교태를 받아내야
단맛을 지닐 수 있을까

나무는 얼마나
비바람 눈보라 온몸으로 비벼대야
천년을 살아낼 수 있을까

바위는 얼마나
태풍과 더위에 시치미를 떼야
사람들의 마음에
머물 수 있을까

냇물은 얼마나 흐르고 흘러야
세월의 샘터에
마르지 않는 생수로 솟아날 수 있을까

바닷가 모래알은
얼마나 거친 파도에 멍들어야
금쪽같이 빛날 수 있을까

사람은 얼마나 세월의 무게가
스치고 흔적을 채워야
아침 이슬같이 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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