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King’s Learning 15
사무엘상 16:14~23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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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not be in the presence of God and be bored at the same time.
Mark Batterson (1969~), An American pastor
하나님 앞에 있으면서 동시에 지루해질 수는 없습니다.
Only in the wilderness is man made pure again. – Boarding School (2018)
It is only when man is pushed naked in the wilderness of nothing to reveal his level and trueness.
인간은 허허벌판 광야에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내몰릴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수준과 진면목을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시고 2천년이 지나도록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구원 받을 자를 고르시고 심판 받을 자를 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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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g’s Learning 15
다윗의 왕의 수업- 다윗의 기름 부음
사무엘상 16:14~23
사투리는 잘못된 언어가 아니라 한 지방에서 사용하는 방언(dialect*)입니다. 사투리는 그 지방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성경의 ‘방언’ other tongues
"태풍이 옵니다. 유리창에 거미(금이)가 있으니 테이프를 붙이세요."
“지금 학교가?”라는 말을 서울 사람들(끝에서↗)과 경상도 사람들(끝에서↘)이 다르게 받아들이듯이 만일 우리가 성경 속에 깊이 들어가 있지 않다면 본래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성경의 언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Five of Them Were Wise
우리가 구약 성경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 바라보지 않고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면 유대교처럼 성경을 율법과 이야기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 관점은 성경을 “하라와 하지 말라”는 종교적 규범이나 “~가 잘 믿었으니 그를 본받자”는 위인전기로 만듭니다.
성경도 ‘글’이라는 언어의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16). 그러하기에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기록자이신 성령의 감동하심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2:9~10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인도하실 때 성령을 통해 진리를 조금씩 드러내시고 가르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러므로 자신의 등에 기름을 채워놓은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처럼 늘 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1~4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이 마태복음 본문을 볼 때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다른 불쌍한 다섯 명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눠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성경의 모든 비유가 신앙윤리를 위한 목적까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비유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을 교훈하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 대한 본문은 “주님 오실 때를 대비하여 성령의 은혜를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사무엘상 16장 본문은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미래의 왕으로 준비되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문 속에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나타나는 구원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다윗에게 성령이 임하자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왜 이런 간격이 남아 있습니까?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닙니다. 다윗이 처음 기름 부음 받은 후 왕이 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그 오랜 세월 동안 놔두신 것입니까?
게다가 사울이 다윗을 불러 자신의 정신병을 치료하는 악사 겸 병기 드는 자로 삼습니다. 즉 미친 왕을 위해 멀쩡한 다음 왕이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진실입니다.
우리가 늘 부딪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처음부터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자로 사는 것부터 훈련받습니다.
사울이 악령에 의해 고통을 받을 때 다윗을 부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사무엘상 16: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 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여전히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그는 여전히 고독하고, 무명이고, 늘 하던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았는데도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종을 만들어 나가시는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사건은 사무엘상 16장 외에 두 번이 더 있습니다. 즉 다윗은 모두 세 번 기름 부음을 받고, 그중 왕이 되는 기름 부음은 두 번입니다.
첫 번째 왕이 되는 두 번째 기름 부음은 사무엘하 2장에 나옵니다.
사무엘하 2: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두 번째 왕이 되는 세 번째 기름 부음은 사무엘하 5장입니다.
사무엘하 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그렇다면 왜 다윗은 세 번 기름 부음을 받고 두 번 왕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인간의 입장에 맞춰 풀이한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있는 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라는 영적 세상을 보여주시기 위해 인간들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윗이 여러 번 기름 부음 받고 왕이 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징(signs and symbols)들과 장치(tools)들을 사용하십니다.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후 얼마 안 있어 공식적으로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처음부터 왕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으로 세워지기까지 기름 부음 받은 후 10년 이상이 걸립니다. 다윗이 나이 30에 왕위에 오르니까 기름 부음 받은 때가 15살이라고 해도 15년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사람들이 다윗을 대할 때 누구로 대하여야 합니까? 어떤 때는 기타 좀 다루고 노래 잘하는 ‘교회 오빠’ 같은 양치기 소년으로, 몇 년이 지나서는 골리앗을 이긴 소년 용사로, 사울의 부하 장군으로 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를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만이 다윗을 가장 잘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다른 왕에게 반역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생명을 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로마 황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받았습니다. 수많은 신자들이 구경거리가 되어 고문과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초기 선교시대 때에도 천주교든 기독교든 야소교는 반유교적이라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일제시대 때도 그러했고 6.25 전쟁 중에도 공산주의는 기독교인들을 죽였습니다.
예수가 두 번째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통치하실 때까지는 기독교가 겉으로 아무리 번성하고 선교를 해도 수난과 고통과 오해를 받아야만 하는 종교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에는 과연 아무 일 없는 것일까요? 잘 생각하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주인은 물질과 영광과 성공입니다. 예수가 아닙니다.
다윗 시대 때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아비가일입니다. 아비가일은 부자 나발의 부인입니다. 나발은 지방의 호족이고 재벌입니다.
사무엘상 25:1~3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3]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נָבָל [nabal] origin from נָבֵל [nabel] foolish, 어리석은
אֲבִיגַיִל [Abigayil] my father is joy, 나의 아버지는 기쁨, 내 아버지가 기뻐하신다
사무엘상 25장에 나타난 다윗은 여전히 사울로부터 도망 다니는 부랑자 같은 처지였습니다. 단지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버림 받은 무리들과 그 가족들뿐이었습니다.
나발은 갈멜 지방의 부호입니다. 마침 양털을 깎는 시기에 다윗이 부근에 있어 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양털을 깎는 시기란 목축업에 있어서 추수이고 잔치하는 때입니다.
이에 대한 나발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사무엘상 25:10~11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break away)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다윗이 누구냐”고 했을 때 다윗이 누구인지 나발이 전혀 모른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이미 다윗이 이새의 아들이란 것도 알았고, 사울로부터 도망 다니는 것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나발의 말처럼 다윗이 사울을 배반하고 억지로 떠난, 즉 불법적으로 도망한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위협 때문에 도망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발이 다윗을 왜곡해서 평가하는 이유는 그를 깔보고 무시했기에 다윗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다윗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놀라운 고백을 보면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미 다윗이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 받아 사울 다음의 왕으로 내정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을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무엘상 25:28~31
[28]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9]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30]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31]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오랫동안 쫓아다닐 때에 오히려 이스라엘 가운데 고통 받는 자들이 다윗에게 희망을 걸고 모여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다윗의 가족들이 함께 했고 다윗이 기름 부음 받은 사실이 가족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삼상 22:2).
사무엘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다윗이 쫓겨 다니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소문이 퍼지고 퍼져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왕은 사울이었습니다.
나발 자신이 ‘가진 자’이기 때문에 ‘가진 자’의 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현실과 세상에 바싹 붙은 자였습니다.
누가복음 12:16~21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나발은 하나님과 영원한 일에 대해 무지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패배자인 다윗의 도움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신앙심 깊고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또한 다윗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이 보는 다윗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이것이 나발과 아비가일의 차이이고, 또한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매일의 시험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의 왕입니다. 그러나 그의 왕으로서의 한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하지만 사탄은 여전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직 사탄의 종말의 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두 번째 오시는 그 날에 온전히 끝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다윗이 기름 부음 받자마자 즉시 왕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다윗에 대한 반응으로 어느 세력에 속한 백성들인지 갈라졌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양과 염소가 갈릴 날이 옵니다. 나발과 아비가일로 갈릴 날이 옵니다. 양털 깎는 날에 나발이 죽었듯이, 하나님의 추수의 때에 ‘현 세상에서 힘없이 도망만 다니는 패배자로만 보이는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거부한 자들의 종말의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시고 2천년이 지나도록 아직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시간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구원 받을 자를 고르시고 심판 받을 자를 솎아내기 위해서입니다.
Two Kings – 여러분의 왕은 누구입니까?

사무엘조차도 처음에는 이새의 아들들을 볼 때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진정한 자신의 왕, 그리스도를 알아보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렵다기 보다 아예 본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속한 것은 사람들이 원하는 잘난 것, 멋진 것, 성공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이 얼굴이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가 장애를 가졌거나 추남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더욱 하나님의 선택기준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어떠하든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선택받았을 때의 기준이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했다는 의미가 거룩하고 성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따를 만한 성품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성결한 사람을 뽑으려 하신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잠언 20:9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이 사람의 외모로, 가진 것으로, 능력으로, 거룩함으로 사람을 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만이 오직 죄에서 자유로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믿는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죄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왕의 수업’은 이것입니다. 이 분만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어떤 고난과 시련이 와도 “그리스도께서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그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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