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 왜냐하면
마가복음이 미완성(未完成)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으로서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글(복음서)로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사명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는 의미의 역설적 표현입니다. 우리는 그 단서를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보신 분들은 16:9 이하의 마지막 결론 부분이 괄호로 묶여있음을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주석을 보신 분들은 더욱 놀랄만한 설명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충격 받은 적도 있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16:9~20,*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
맨 처음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이 직접 기록한 성경을 ‘성경 원문(原文)’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원문을 보고 베낀 것은 ‘사본(寫本)’이라고 부르고, 원문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 것을 ‘번역본(飜譯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감(靈感)으로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최초의 성경 원문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책은 모두 사본과 번역본을 참고로 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한글 성경은 그런 번역본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이라는 문서 자체가 어떤 절대적인 신성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죽은 의문(儀文)이 될 수도 있고 생명의 말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마가복음 16:9~20은 신약 성경에서 ‘사본학적으로’ 가장 논란이 많은 본문에 속합니다. 그 이유는 신약 성경의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사본에 속하는 ‘시내사본’과 ‘바티칸사본’에 마가복음 16:9~20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내사본, 바티칸사본은 ‘카톨릭사본’ 혹은 ‘소수(少數)사본’이라고도 불립니다.
시내사본: S, Codex Sinaiticus. 1859년 티셴도르프가 시내 반도 산타 카타리나(캐더린) 수도원에서 발견했다. 구약의 일부는 빠져 있지만 4세기의 신약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
바티칸 사본: Vaticanus. 1481년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도서관에서 발견된 바티칸의 최고의 보물.
시내사본에는 ‘허니스의 목자’나 ‘바나바의 서신’ 같은 위조문서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내사본에는 많은 단어가 삭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어와 문장이 2번 이상 쓰이기도 했습니다. 시내사본의 신약성경에는 어떤 절이 바로 앞에 있는 절과 같은 단어로 끝나기 때문에 삭제해 버린 큰 실수가 115번 이상 발견됩니다.
바티칸사본은 자체에도 오류가 많아 같은 단어를 두 번씩 연달아 쓴 구절도 발견됩니다. 4복음서에서만 무려 1,491번이나 단어나 전체 절을 삭제했습니다. 10세기경에 카톨릭 서기관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소수사본의 편집 실수는 대부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또 다른 소수사본에는 엉셜사본(4~5세기 제작)이 있습니다만 오류가 심각해서 신뢰성이 없습니다. 이들 소수사본(Minority Text)은 카톨릭이 지지하는 사본입니다. 반대로 다수사본(Majority Text)은 개혁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본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개역성경’에도 이런 소수사본을 참고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틀을 세운 교부(敎父)들 가운데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유세비우스(260~340)나 제롬(347~420)과 같은 사람들은 16:9~16은 원래 마가가 쓴 내용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저스틴(100~165)이나 터툴리안(155~230), 그리고 이레니우스(2C~220)와 같은 교부들은 16:9~20이 원래부터 마가복음의 본문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 사본과 바티칸 사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본(多數사본)과 번역본들에도 16:9~20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사본을 비교하여 성경의 진실성을 규명하는 학문을 ‘본문비평’이라고 합니다. 주로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고 인간의 지성을 중요시하는 자유주의 계통의 학자들이 시도하는 분야입니다.
그런 학문의 결과로 기독교가 많은 오해를 받고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요즈음도 우리나라에서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런 정보를 퍼뜨리면서 기독교가 근본인 성경은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문체를 보아서도 마가의 성격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16:9 이전까지는 kai(and)가 평균 한 절에 한 번 나타났는데 16:9 이후에서는 평균 2개절에 한 번꼴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이 첨가되지 않았다고 반박할만한 좋은 증거가 부족합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이나 목사들도 이 부분이 후대에 첨가되었다는 결론에 동의합니다.
그러면 왜 16:9~16이 마가복음에 첨가되었을까요? 10세기에 쓰인 아르메니안 사본은 16:9~20을 사도 요한의 제자가 첨가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자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마가가 원래부터 16:9~20을 포함한 복음서를 썼지만, 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결론 부분이 손실되거나 없어졌다(또는 삭제되거나 제거되었다).
2. 마가가 갑작스러운 일로 인해 복음서 저작을 완성하기 전에 죽고 말았다.
3. 마가는 원래부터 16:8에서 그의 복음서를 끝냈다.
그러나 1번 가설은 가능성이 적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두루마리를 말아서 보관했기 때문에, 오히려 끝 부분보다 첫 부분이 더 손실되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2번의 가설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증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가장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고 있는 견해는 3번의 주장입니다.
3번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원래 마가가 쓴 복음서는 16:8에서 끝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마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후에 익명의 한 저자가 16:9~20을 첨가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익명의 저자는 역사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내용을 신약 정경에 포함시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16:9~20이 처음에는 제거되었지만, 1세기말에 사도 요한이 그 내용의 진실성을 승인한 후에, 그의 제자가 다시 삽입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설명이 옳은지 우리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16:9~20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 내용이 모두 다른 복음서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9~20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다른 성경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
막 16:9~11 = 요 20:11~18
2. 두 명의 여행자에게 나타나심
막 16:12~13 = 눅 24:13~32
3. 11제자에게 나타나심
막 16:14~18 = 마 28:16~20, 눅 24:36~49, 요 20:19~23
4. 승천 및 사도 선교의 시작
막 16:19~20 = 눅 24:50~51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마지막 부분이 마가가 직접 기록한 내용은 아닐 수 있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은 다른 보조자에 의해 첨가되었고 그 전체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별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가 직접 쓴 마지막 8절에 이상한 부분이 또 있습니다. 8절에서 끝날 때 헬라어 단어 gar로 끝납니다. gar는 영어로 치면for에 해당합니다. 우리말로는 ‘왜냐하면’ 혹은 ‘그러므로’라는 뜻입니다. 이런 단어를 문법적으로 접속사(接續詞, conjunction)라고 합니다. 두 개의 문장을 이어주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8절을 보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그들은 무서웠다. 왜냐하면(그러므로).”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가복음 16:8,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한글개역)
And they went out quickly, and fled from the sepulchre; for they trembled and were amazed: neither said they any thing to any [man]; for they were afraid. (KJV)
영어성경(KJV, NIV)에서는 for를 앞에 두었습니다. gar를 번역하여 넣으려다 보니 영어성경으로는 ‘그들이 무서워했기 때문에’라는 말이 되고 말았지만 원래는 그냥 ‘그들이 두려워했다. 왜냐하면...’입니다.
원칙적으로 접속사란 영어나 우리말처럼 문장 앞에 두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접속사가 뒤에 붙어 있습니다. 즉 원래 저자인 마가는 하고자 하는 말을 그만 두고 말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성경 원문으로는 8절이 ‘미완성 문장’의 형태로 끝났고, 9절부터 어울리지 않는 연결부분이 첨가되어 결국 9절 이하는 첨가된 부분이라는 점이 명확해 집니다.
요즘 어떤 영화는, 원래 내용과 결론이 다른 버전을 별도로 만들어서 다른 결말의 내용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일부러 결론을 우리에게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왜냐하면”이라는 말로 자신의 글을 마치면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만난 사람들의 생애에 어떤 이유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가는 우리에게 ‘그 어떤 이유’를 묻고 있습니다. 아니면 “그러므로”라고 마치면서 여러분이 이어나갈 다음의 행동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마가는 무슨 이유를 묻습니까? 그리고 어떤 행동을 기대합니까? 이것이 여러분이 마가복음을 보시면서 같이 생각해 보아야 할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6:8은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로 마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답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마가에게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마가의 스승이며 마가복음의 제공자인 사도 베드로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쓴 베드로전서에서 이 의문에 대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따라 사는 신앙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베드로나 마가와 같은 ‘십자가 신앙’과 ‘부활의 소망’을 따라 주님의 제자로 살기 바라며 마가복음을 시작하려 합니다.
베드로전서 1:1~4,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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