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03. 종의 세례

 

마가복음 1:9~11,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3~17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행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장면이 있는데 마가복음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13~17,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14]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한의 거절은 요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한 하나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다른 사람(죄인)의 세례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1. 하나님의 종이 죄인과 동일시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에게서는 이 세상이 좋아할 만한 아름다움도 흠모할만한 것도 영광스러운 것도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키도 보통 키였을 것입니다. 이단들이 조작하기도 하는 후광도 없으십니다. 죄 있는 육체의 모습으로 오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심지어 요한복음 1장에서 경건한 유대인의 전형이랄 수 있는 나다나엘이 예수님에 대해 하는 말이 나사렛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는 말이었을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나사렛 출신이라 하면, 한국에서도 15세기 조선시대 때에 서북지역 출신들이 차별대우 받았던 것처럼 중앙에서 소외된 변방 사람들을 말합니다.

 

게다가 그냥 나사렛이라고 하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마가복음 1:9에서는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세부지칭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렇게 죄인과 같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온전히 죽으시기 위함입니다. 요한이 그의 설교와 세례로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은 죄인과 똑같이 세례 받음으로 순종하심으로써 자신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이 구절의 받을 세례란 십자가 죽음입니다.

 

이사야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세례를 통해 보여주시는 십자가로 죽음을 당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죄인인 우리와 동일시하신 것은 가장 큰 희생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에스겔 1: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포로 된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요단강가에 나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과 같이 요한의 설교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2. 주님의 사역을 위해 드려진다는 헌신입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 4:16)고 한 것은 자신이 할 일에 목숨을 내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루터도 종교재판의 현장에서 내가 여기 섰노라. 나는 아무것도 다른 것을 할 수 없노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정신이 세례의 정신입니다.

 

히브리서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순종을 배우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 우리 자신을 드렸습니까?

 

10절에 보면 즉시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지금 우리의 사역은 어떻습니까?

 

3. 하나님 아버지의 인준(認准)이 있었습니.

 

마가복음 1:11,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3: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선언은 시편 2:7과 이사야 42:1의 두 말씀이 인용된 말씀입니다.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사야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아들 예수님의 순종에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시며 하늘의 영광을 주십니다.

 

사무엘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겠고...

(영화 불의 전차의 주인공 에릭 리들에게 시합 전에 전달되어진 쪽지의 내용).

 

하나님은 순종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들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세례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술 배경은 박해시대의 로마교회입니다. 그들은 마가복음을 읽고 극심한 고난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아들 예수님이 삼위일체입니다. 창세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우리의 형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구약에서 우리가 창조한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세례 받으실 때 우리가 구원한다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 비둘기 같은 성령 + 강가의 예수님

 

예수님도 성령의 오심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분이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셨다기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셔야 온전해지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죄인과 동일하게 되셨으며, 자신을 헌신하셨으며,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인준과 삼위 하나님의 등장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룰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10절에, “하늘이 갈라졌다고 합니다. 인간의 죄로 닫혔던 하늘이 예수님의 순종의 세례로 다시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 인간이 구원받았고, 갈라진 하늘을 통해 천국을 허락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여러분은 이제 그 순종과 어리석음의 십자가의 도를 사는 분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은 남들과 비교해 더 높고, 더 많고, 더 좋아야 똑똑한 자고 승리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미련해 보입니다. 남들보다 손해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남들보다 적게 갖고 낮추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십자가를 부인(否認)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가 매면 매이고 풀면 풀리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세례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이 우리들의 삶에서도 역사하게 하시고, 그 삶을 십자가로 따라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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