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5. 제자도① - 이혼에 대한 교회의 태도
마가복음 10:1~52
(마가복음 10장의 구조와 내용을 정리하면서 같이 성경을 읽기 바랍니다.)
1. 이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
[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가로되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묻자온대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2. 어린 아이들을 축복하시다
[13]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3. 재물 많은 자가 돌아감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4.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는 자이다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5. 십자가에 대한 예언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6. 제자의 받을 상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7. 섬김에 대한 가르침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8. 소경을 고치심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마가복음 10장에서는, - 물론 성경의 장절 구분이 성경이 처음에 기록될 때부터 같이 붙어 나온 것도 아니고, 그 순서도 사복음서가 다 같지는 않습니다만 - 몇 가지 일련의 사건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앞의 8장과 9장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십자가와 고난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10장에서도 역시 십자가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10장의 전체 내용이 8장부터 계속 이어지는 ‘십자가’와 관련이 있는 내용이라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란, 예수님에게는 당신이 곧 당하실 십자가형이지만,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십자가는 제자들이 복음을 위해 살면서 겪을 고난을 말합니다.
먼저 1~12절에는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해 질문했을 때 예수님이 대답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예수님이 이혼이라는 대화 주제를 먼저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먼저 다가온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신봉하지만, 대부분 그 진정한 율법의 정신을 망각하고 율법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악함을 전제로 한 모세의 이혼 허락에 대한 가르침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결혼의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혼은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가는 모든 인간 사회제도의 가장 기본 제도인 가정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욕망과 죄악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이미 50%라고 합니다.
현대사회의 이혼문제는 교회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혼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혼은 교회 안에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의 표준인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먼저, 성경의 이혼 혹은 결혼에 대한 대표적인 말씀을 보겠습니다.
성경의 이혼(결혼)에 대한 구절들: (마가복음 외)
신명기 24:1~4,
[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2]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3] 그 후부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내었거나 혹시 그를 아내로 취한 후부가 죽었다 하자 [4]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으로 너는 범죄케 하지 말지니라
마태복음 5:27~32,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태복음 19:3~9,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고린도전서 7장,
[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허락)요 명령은 아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11]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34]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 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모세의 이혼에 관한 율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왜 그들이 예수님을 왜 이혼 문제로 시험을 한 것입니까? 그들이 어떻게 할 줄을 정말 몰라서가 아니고 예수님을 말 그대로 시험한 것입니다. 당시 이혼에 대한 대표적인 율법해석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 둘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대답을 하면 반대 학파의 의견으로 반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과 똑같습니다.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면 무조건 반대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기독교인이 절반입니다. 성경을 보고 바리새인에게 한 수 배우는 모양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적인 논쟁으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신명기 24: 1~4에 대한 유대의 두 학파간의 논쟁은 매우 유명합니다. BC 1세기의 대표적 학파인 샴마이파와 힐렐파가 있었습니다.
신명기 24:1,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
샴마이파는 이혼에 대해 보수적이었는데, 이혼의 근거로 “수치 되는 일”을 강조하여 간음이나 성적 범죄에 대해 제한했습니다. 하지만 힐렐파는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이라는 말을 강조하여 아주 사소한 이유라도 이혼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힐렐파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여인이 얼굴을 가리고 다니다가 길에서 자신의 친오빠를 만나 장시간 이야기하는 것도 이혼 사유가 가능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아시는 예수님은 본문의 말씀처럼 이혼에 대한 모든 학설이나 변명을 정리하셨습니다. 모세의 이혼 허락도 본래의 의도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답변의 의도는 이혼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취지와 아울러 결혼의 올바른 의미를 제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혼에 대한 성경적인 판단은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듯 음행하였다고 반드시 이혼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경우, 용서와 화해를 하는 것이 성경적인 답입니다.
하물며 이스라엘은 신랑인 하나님의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신을 따름으로 행음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혼증서까지 써주고 내어 쫓기까지 했으나 다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1~25,
[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은 패역한 유다보다 오히려 의로움이 나타났나니 [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고 네 길로 달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이방 신에게 절하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15]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1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완악)한 대로 행치 아니할 것이며 [18]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19]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 중에 아름다운 산업인 이 낙토를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20]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 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 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23]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24] 부끄러운 그것이 우리의 어렸을 때로부터 우리 열조의 산업인 양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을 삼켰사온즉 [25]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는 수욕에 덮이울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열조가 어렸을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무엇보다도 호세아서 전체가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을 잘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신부 이스라엘을 대하신 것처럼 사람 부부 사이에도 같은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당사자가 철저히 회개하고 뉘우친다면 기독교인은 그것을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영적인 책임은 전적으로 그 상황을 처음부터 선택한 신자에게 있습니다. 만일 신자가 고린도전서 7: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을 근거로 별거에 응한다 하더라도 결혼 관계 자체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별거한 신자는 재혼할 수 없습니다. 재혼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은 부부 중 어느 한 쪽이 죽었을 때뿐입니다.
고린도전서 7: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21세기의 세상의 현실에서 이혼을 생각하게 하는 원인으로 가족 간의 학대, 시부모 학대, 며느리 학대 등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가 아니고 우리의 현실입니다.
또 배우자가 불치병 환자인 경우, 혹은 정신병자의 경우도 있습니다. 결혼하고 나중에야 알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도박중독도 정신병입니다.
성경에서는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신자의 이혼이나 재혼은 금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매우 심각한 지경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교회들은 이혼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이혼에 대한 태도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혼은 절대금지라고 합니다. 청교도적인 보수적인 교회가 이런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방임합니다. 현실적으로 신자 중에 이혼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강단에서 이혼에 대해 금하는 설교를 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대개 그렇습니다.
세 번째는 법적인 태도입니다. 카톨릭은 결혼도 7성례에 포함시킵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그들 법으로는 파문입니다.
넷째로 이혼을 현실적으로 대하는 태도입니다. 신자에게 이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 사이에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카톨릭에도 이혼율이 증가합니다.
교회는 이혼 문제를 현실로 알아야 합니다. 이혼한 신자들을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치료하고 상담해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문제들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태도일까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0.29. ~ 1920. 11.8.)라는 네덜란드의 칼빈주의 개혁파 신학의 대표적인 학자는 그가 네덜란드의 수상(1901~5)이었을 때 공창(公娼)지역을 만들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워낙 성적으로 문란하니 법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하면 오히려 음지에서 활동하니까 법적 대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에야 어쩌다 가끔 그렇게 하자는 말이 나옵니다. 아직은 보수적 유교 사고 때문에 시도하지는 못합니다만, 실제로 성적으로 문란한 것을 따지자면 한국은 더 하면 더할 겁니다. 대도시 주변의 국도를 따라 운전해 보면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다 그런 영업장소들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어떤 교회는 담배를 못 끊은 신자들을 위해 흡연실을 아예 만들었다고 합니다. 좀 심하지 않느냐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좋은 방법입니다. 그곳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은 때로 금연교육도 받으면서 아마 하다못해 생각만으로도 금연을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의 이혼에 대한 태도
교회에서는 이혼을 권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미 엎질러진 일은 어찌합니까? 그들을 우리의 ‘연약한 그릇’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은 이상, 배우자의 간음이나 폭력을 용서하는 성인 같은 신자가 될 수 없고, 그 피해자가 여러분의 사랑하는 자녀라면 성경에서 배운 것과는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이혼한 사람들, 별거한 사람들을 교회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디에서 그들이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겉으로 이혼을 안 해서 의인이 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못됩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수 없이 간음한 죄인들이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마가복음 10장이 ‘주님의 십자가’와 관계있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10장의 후반부에 “섬김”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10장은 제자들의 십자가로서 “섬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이듯, 우리 주변의 불행을 당한 많은 영혼들을 받아들이고 위로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현대와 같은 세상에서 세상과 신자들을 섬기는 제자로서의 모습을 행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불행한 처지의 이들을 섬기는 일들이 제자와 교회의 십자가입니다.
이런 일은 저보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매우 잘하시는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보수적으로 비성경적인 일에 대해 완강히 금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어려운 처지의 신자들을 잘 도와주십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제자된 신자들이 감당하여야 할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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