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 제자 바디매오 (어린이주일)
마가복음 10:46~52,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1923년 방정환 선생님을 중심으로 민족 운동가들이 어린이들의 지위향상과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교육하기 위해 시작한 날입니다. 외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기념일입니다.
요즘은 미래 사회의 주역인 어린이들이 티 없이 맑고 바르며, 슬기롭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어린이 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이 날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신 일들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15~16,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그래서 지금도 교회에서는 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바로 어린이 여러분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5월 첫 주일을 어린이주일로 만들었습니다.
(사진 전시)
1. 송경화(여, 0), 1991.3.18. 서울역
2. 유채빈(여, 2), 2003.11.22. 충남 공주시
3. 정승연(남, 3), 2006.10.24.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부근
4. 우정선(여, 5), 2004.9.19. 경기도 광주시 경안동
5. 허지환(남, 12), 2009.3.14. 서울 광진구 중곡동
6. 김희영(여, 13), 2006. 8.21. 대구 수성구 파동 집근처
7. 박수진(여, 16), 2004.10.9. 충남 천안시 성황동
이 아이들 어때요? 참 예쁘고 잘 생겼죠? 0세부터 13세까지의 어린이들입니다.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는 어렸을 때의 저희 아이들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신 이 어린이들은 실종 어린이들입니다. 미아(迷兒)라고도 하지요. 물론 여기 7명뿐만이 아닙니다. 수천 명의 어린이가 지금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어떤 어린이는 자기 집 앞에서 놀다가, 혹은 학교에서 집으로 오다가, 혹은 어느 복잡한 곳에서 사라진 후 지금까지 몇 년이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을 못 가는 어린이들도 괴롭지만 정말 괴로운 사람은 그 부모입니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자식을 잃어버리면 부모는 거의 미치게 됩니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남극의 펭귄들이 새끼들을 헌신적으로 키우는데 갈매기들이 새끼들을 채가서 잡아먹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일을 당한 부모 펭귄들은 거의 미칩니다. 그래서 남의 새끼들을 훔쳐서라도 새끼를 키우려는 이상한 행동들을 하기도 합니다. 짐승들도 그러는데 사람은 더욱 괴로워합니다.
일 년 전(2008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실종아동에 대한 어느 인터넷 기사입니다.
[노컷TV] 오늘 어린이 날이지만 아이들 잃어버린 부모들의 마음은 속이 타들어 갑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의 심정은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금방이라도 아이가 찾아올 것 같은 마음에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갑니다. 아이를 찾느라 전단지도 만들고 온 곳을 찾아다니면서 제대로 된 가정생활을 할 수 없고 결국 모든 것을 탕진하게 됩니다.
더구나 아이 실종을 두고 가정 내 갈등이 심각해져 가정이 해체되기도 합니다. 실종아동 인권찾기협회 박혜숙 대표도 5년 전 두 살짜리 아들을 잃어버린 뒤 큰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2008.5.6.)
TV나 인터넷 동영상으로 실종 어린이들의 부모들을 보게 되면 내가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아니지만 그 장면을 보고 듣기만 해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러나 만약 그 부모들이 잃어버린 자식을 찾게 되면 그 기쁨이 어떨까요? 그 기쁨과 감격은 말로 할 수 없겠지요? 세상의 어느 부자도 부럽지 않겠지요?
지금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상태입니다.
때로 말썽 피우고, 공부도 못하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좀 모자라더라도, 다른 자식과 바꾸시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여러분이 제일 행복합니다.
잠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를 위해 십자가의 사랑으로 저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또한 저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들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부모가 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배워가고 자녀가 있기에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갑니다.
저희에게 천국과 같은 가정을 주셨습니다. 때로 세상에서 힘들고 가족의 문제로 힘이 들지만 그 속에서 천국을 맛보고 훈련을 하도록 주셨음을 알고 저희에게 허락하신 가족과 가정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읽은 마가복음 10장의 내용은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 나옵니다.
장소는 여리고입니다. (지도)
여리고(Jericho)
예루살렘 북동쪽 36km, 요르단강과 사해(死海)가 합류하는 북서쪽 15km 지점에 있으며, 지중해 해면보다 250m나 낮습니다. 각종 과실수(특히 종려나무)가 우거진 오아시스로, 예로부터 방향(芳香)의 성읍, 또는 종려나무성이라 불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길인데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고, 온갖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도 고치시고, 다섯 개의 떡덩이로 수천 명을 먹이시고, 교만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 가의 한 걸인 소경이 그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바디매오입니다. ‘바’란 아들이란 뜻이니까 디매오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선학동에 저희 교회가 있을 때에 걸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몇 번 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교회에 주일마다 늘 찾아와서 주급 받듯이 얼마씩 받아가는 걸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일에 그 교회 목사님이 길에서 그 걸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걸인은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있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제는 성공해서 잘 사는가 보다’고 반가운 마음에서 그 사람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 걸인도 목사님을 알아보고 냅다 도망가더랍니다. 목사님 옆에 있던 집사님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저 사람이 우리 앞 집 이층집 집주인입니다. 저 사람이 일부러 남루한 옷을 입고 교회마다 찾아가면서 구걸하는데 그런 교회만 천 교회가 넘는다고 합니다.”
만약 걸인에게 100원짜리 동전을 주면 화를 냅니다. ‘나를 어떻게 보고.’ 직업적인 걸인들은 사실 걸인이 아닙니다.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그 수입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산적인 노동 없이 남의 동정을 얻는 행위를 하나의 ‘일’로 보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쩌다가 혹은 잠시 구걸하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일이 평생 직업이 되고, 더 효과를 얻기 위해 남을 속이면서 구걸을 전문으로 하는 것은 오히려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요즘의 대한민국은 장애인들이 기초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보장을 해주는 시대입니다. 한국의 상황이 기본적으로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구걸을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인천) 구월동 터미널 사거리의 뉴코아 아울렛 앞에서 호떡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는데 그 장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청각장애인입니다.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주문을 받고 팝니다. 열심히 살고 있고 장사가 아주 잘됩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여리고의 바디매오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라에서 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던 시절입니다. 특히 소경이고 가족이 없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살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가짜 소경도 아니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대하여 늘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에게 구원의 희망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등장입니다. 여리고는 이미 세리 삭개오에 대한 사건으로 예수님에 대한 가난한 사람들의 기대가 가득한 곳이 된 도시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근처를 지나가시자 계실만한 방향을 향하여 힘껏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그러자 주변의 사람들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감히 소경 거지 주제에 시끄럽게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바디매오를 꾸짖었습니다.
그래도 바디매오는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더욱 심히’라는 표현은 얼마나 그가 큰 소리로 질러댔는지를 말합니다.
바디매오는 최후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바디매오는 자신이 부르짖지 못하게 하는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제자들과 군중들이 시끄럽다고 꾸짖는 장면은, 사람이 처음으로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에 방해하는 사람이나 일들이 생긴다는 것을 은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돌아보시기를 바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이 그의 기도였습니다. 환난과 어려운 일을 만날 때에 더욱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 어려움이 오히려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시편 123:3,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잠언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여러분 인생의 해결책을 어디에서 구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구원을 무엇으로 찾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또한 제대로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라면, 그 자식을 찾을 때에 안방에서 가만히 앉아서 찾겠습니까? 모든 경찰, 모든 방송매체, 전단지를 만들어서라도 길거리를 다니며 자식을 찾아 헤맬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니던 직장을 버리고, 병에 걸리면서까지 자식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처지를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자신이 소경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소경이어서 눈을 떠야겠다는 그 간절함이 있다면 예수님을 향해 어떻게 부르짖겠습니까? “예수님, 저를 구원해 주세요!”
여러분에게 이 애통해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구원을 받아야겠다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중얼중얼 부채도사 주문 외우듯이 주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절규하듯이 예수님을 바디매오가 부르자 예수님께서 그를 찾으십니다. 그러자 바디매오가 어떻게 행동합니까? 겉옷을 벗어 던지고 달려갔습니다.
50절,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가 거지 일을 하기 위해 걸치고 있던 누더기 겉옷입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거지가 깡통을 차버린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겉옷을 미련 없이 던져버립니다. “다른 거지나 가져라! 나는 예수님께 간다.” 그에게는 새로운 역사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소경이 달리면 얼마나 잘 달릴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그는 최선을 다해서 달립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해 달립니까? 구원을 얻었다는 사람이 여전히 세상 향락과 육신적인 일을 하는 것은 여전히 거지의 겉옷을 걸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0장에서 특별히 제자도를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디매오를 고치시는 사건은 제자도가 무엇인지 가르치시는 교훈의 절정입니다.
그런데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10장 17절에서 예수님께 달려온 또 한 사람을 이미 보았습니다.
17절,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런데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1, 22절,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께 달려와 무릎 꿇고 가르침을 구한 젊은 관원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고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 같이 생각했으나 다만 한 가지 부족한 것 때문에 주님을 따르지 못했고, 천국의 백성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지 못했다는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입니까?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제자가 되어 따르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주님을 믿기만 하고 따르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신자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소경 바디매오가 주님의 능력을 믿고 부르짖어 결국 눈을 뜨게 된 성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눈을 뜨고 주님을 길에서 좇으며 따랐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모두가 소경이요 거지입니다. 아니 그 이상의 악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까?
바디매오처럼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구원할 분이 예수님뿐인 줄 알고 그분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제 여러분이 구원을 받았다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어서 예수님이 가시는 길,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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