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9. 선한 이는 없다

 

마가복은 10:17~31,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어느 날 예수님께 한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마가는 마태(19:20)와 같이 그를 청년이라고 했습니다. 누가(18:18)는 그를 관원이라고 했습니다. 즉 그는 젊고 권세를 가진 자였습니다. 어느 것 하나 꺼릴 것 없는 사람이 바리새인들이 거부하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그를 예수님이 귀하게 생각하신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21,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그가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렸습니다. 예수님께 이런 태도로 가르침을 청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 자신의 자식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병이 아니고 영적인 일에 대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 제자들조차 이렇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는 매우 기이한 사건입니다.

 

그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는 예수님이 선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영생에 대한 열심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떤 사람이, “...에 대하여 광신개독들은 설명을 하라고 하는 게시판글이 있었습니다. 그 아래 몇 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기독교인들의 글은 없고 기독교를 비아냥거리는 짧은 글들만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예수님이 자신도 선하지 않다고 했는데 무슨 별 볼일 있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제외하고 일반 책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수준 같습니다.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이 선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청년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고 선한 선생님이라고 했으면 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보고 다만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잘못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다 죄인이어서 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5:24, 아버지로부터 멀리 떠났던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아버지인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곧 죽음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이 영적인 죽음은 육체의 죽음과 영원한 죽음까지 초래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것이나 의로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3:10~12,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이런 사망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12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였고,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합니다. 즉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죄로 오염되고,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이미 원죄로 죽은 인간들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선할 수가 없습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주여, 주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깨끗한 사람이 없습니다. 비록 태어난 지 반 날 밖에 안 되는 갓난아이도 주님 앞에서는 깨끗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여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선하다는 생각은 구원 받는데 가장 큰 첫 번째 걸림돌이 됩니다.

 

전도로 유명한 미국의 H.A. Ironside(1876~1951)목사님이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백 개의 종교가 있습니다. 각 종교의 신자들은 오로지 자기들만이 올바르고 참된 진리의 종교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진짜 진리인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이언사이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수백 개의 종교라고요? 거참 이상하군요. 나는 이 세상에 종교라고는 단지 2개 밖에 없는 걸로 아는데요.”

 

거짓말 마십시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만 해도 벌써 3개나 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기독교 외에 모든 종교들은 동일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종교의 형태는 2개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무엇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종교이며, 다른 하나 즉 기독교는 무엇인가 행하여진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즉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행하여진 대속을 구원의 근거로 믿으며, 결코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구원이 이루어진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영적으로 죽은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행하는 어떤 종교적인 행위나 선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한테 일어나라고 한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은 결코 아무 힘도 없고, 문자 그대로 완전히 부패하고 썩어 버려서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셔야만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구원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 지키는 문제를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뜻은 그 청년이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율법에 대한 원칙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율법 혹은 양심의 법, 혹은 사람의 기본 양심에 새겨진 선한 마음은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 본 사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 잘 알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구원자인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율법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양심으로 부딪쳐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 다음에 예수님을 따르게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10계명의 제 2부인 여섯 가지 중 다섯 가지를 그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인 탐하지 말라는 계명은 그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가 이미 그 계명을 지키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10계명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지니라 [14] 간음하지 말지니라 [15] 도적질하지말지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마가복음 10:19,

6계명. 살인하지 말라,

7계명. 간음하지 말라,

8계명. 도적질하지 말라,

9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Thou knowest the commandments, Do not commit adultery, Do not kill, Do not steal, Do not bear false witness, Defraud not, Honour thy father and mother. (KJV, 10:19)

 

마태복음 19:18,19에서는 속여 취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략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덧붙여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이기 때문에 사람에 관한 두 번째 십계명 돌판의 내용을 다시 정리한 내용이 마지막에 추가되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누가복음 18:20에서는 약간의 순서만 다를 뿐 마태복음과 거의 비슷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10번째 계명인 탐하지 말라는 계명을 속여 취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살짝 내용을 바꾸어 말씀하십니다. 그가 비록 거짓 증거를 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어떤 모종의 일에 있어서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던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인 21절에서 그 계명에 대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말씀에 청년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그렇습니다. 그는 슬퍼하며 돌아갔습니다.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청년이 그 말씀을 듣고 슬픈 기색을 띠었다는 말은 낙심하고 절망한 얼굴의 표정입니다. 여기 마가복음에만 나타나는 독특한 상황묘사입니다.

 

이 청년은 10계명의 둘째 서판 즉, 사람을 상대로 지켜야 하는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탐심에 대한 계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가 비록 사람들을 속이고 이익을 취하지는 않았을지라도(19), 물질에 대한 탐심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약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물질에 대한 탐심을 해결하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예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기까지 하며 배움의 열정을 가졌던 청년은 자신이 얻어 갖는문제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진 것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그에게 부족한 점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을 따르기에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이나 십계명의 조항에서 부족한 점을 생각하자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기에 부족한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가 탐심과 같은 세상에서의 소유와 승리에 집착해 있다면 그 청년과 똑같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골로새서에서는 땅의 것 즉, 세상의 것을 향한 마음을 탐심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 사랑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면 그것이 하나님 노릇을 하는 우상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리가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서 신자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구원과 관계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전에는 신앙을 반대하고 오히려 적대적이었다가 죽기 직전에 믿음을 고백하고 구원 얻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 더 큰 구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른 자들이 얻는 하늘의 상급입니다.

 

예수님께 달려온 청년에게 탐심의 문제가 있어서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하듯, 우리에게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의 죄인 됨을 알고 자신을 향한 애착을 버리고 십자가를 향해 가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제자만이 가는 길, 제자도입니다. 그 청년에게는 소유를 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처분하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본들에는 그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이 앞에 붙어있습니다.

 

주님을 따라 그 십자가를 지고 제자의 길을 가시겠습니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