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의 문제는 단지 '초대교회 때의 구약율법과 에수님을 믿고 변화한 새로운 사람으로의 변화'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시대를 넘어서 '인간 속의 죄악의 본성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구원'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말씀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특히 한국의 교회 강단에서는 여전히 율법적이고 '목사를 위한' 말씀이 판을 칩니다. 안식일이 무슨 요일이냐, 주일은 어떻게 지키냐가 여전히 우선적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들입니다.
마가복음 35. 사람의 계명, 하나님의 계명
마가복음 7:1~23,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고 비난합니다. 그들의 비난의 이유는 ‘장로들의 유전’(3절)때문입니다. 장로들의 유전이란 바리새인 중에 학식 있고 경건한 사람들이(힐렐 혹은 샴마이라고도 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따르면서 만들어낸 성경 외의 율법조항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구전법’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문제가 된 구전법은 유대인의 정결의식에 대한 법입니다. 물론 이 정결의식의 조항들도 원래는 구약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0: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이 구절은 본래 제사장들에게 요구되던 율법조항들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일반적인 유대인들에게도 요구되었습니다. 대개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팔꿈치까지(=‘부지런히’) 씻고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는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비난에 대해 예수님은 같은 구약의 말씀으로 대응하십니다.
마가복음 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이사야 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예수님이 사용하신 ‘외식(外飾)’(hypocrisy, hypo=under, 즉 ‘가면 아래’)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연극배우가 연기를 할 때 가면을 쓰고 하는 모습’과 관계가 있는 단어입니다. 아무리 연기를 실감나게 해도 연기는 흉내일 뿐 실제가 아닙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실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나 철학, 인간의 윤리 제도는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는 시도입니다. 그 시도가 동기가 선할지라도 그것을 시도하려할 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렇게 하니 이 일을 하지 않는 저 사람보다 내가 더 낫다”는 비교입니다. 바로 이런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고 그 결과 때문에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가진 인간의 제도와 종교조차 아니 기독교 안의 모든 외적인 율법조차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만든 율법조항들을 예를 들면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서, 안식일에는 거울을 못 보게 합니다. 왜냐하면 거울을 보다가 흰머리를 보고 그것을 뽑을까봐 보지 못하게 합니다. 머리카락을 뽑는 것을 노동이라고 해석한 겁니다. 또 안식일에는 땅에 침도 못 뱉습니다. 땅에 침을 뱉으면 땅에 물을 준 것이 되어 노동을 한 것이므로 침도 뱉어서는 안 됩니다.
유명한 랍비였던 엘리아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전법(전승)에 위반이 되게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내세에 가질 것이 없다.”
탈무드의 전승집인 미슈나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성경을 위반하는 것보다 랍비들의 구전을 위반하는 가르침이 더 큰 위반이다.”
랍비들의 전승은 유대교 것이니까 랍비들의 전승까지 가지 말고, 우리가 믿는 성경인 구약성경을 봅시다. 돼지고기 먹어보셨죠? 토끼탕 먹어보셨죠? 새우튀김 먹어보셨죠? 오징어 먹어보셨죠? 그런데 이런 음식들은 성경에서 먹지 말라는 음식입니다. 먹었으면 우리는 성경을 지키지 못하는 겁니다. 큰일입니다. 우리는 천국 못 갈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이단인 안식교는 레위기 11장에 “부정하고 가증하다”고 언급된 식물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안식교인들은 분문에 명한대로 짐승 중에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소, 양, 염소 등의 짐승 외에 돼지, 토끼 같은 짐승들은 부정한 것이라 하여 금하고, 물고기 중에도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는 붕어, 조기 등의 물고기 외에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오징어, 조개류, 장어 등의 물고기는 금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 시대처럼 부정(不淨)하고 정(淨)한 것을 구별하는 정결의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식교의 주장을 율법주의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가르침이나 구전을 가장 크게 제도화시킨 유대교 외에 기독교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주교입니다. 천주교는 성경에서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들과 변형시킨 것들을 신앙으로 삼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는 문제가 없을까요?
예를 든다면 이런 겁니다. 만약 내가 십일조를 해서, 주일을 잘 지켜서, 그 행위가 남을 정죄하는 원인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오히려 그런 것들을 못하는 사람들보다 더 악하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을 오해 없이 잘 들으셔야 합니다.
마지못해 하는 것도 사람이 보기에는 감사와 사랑으로 계명 지킨 일과 구별이 안 되지만, 하나님은 충분히 구별하시고 그런 것들은 아무 쓸데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 왜 나오셨습니까? 목사님 눈치 때문에요? 부모님들이 나가라고 하니까요? 글쎄요, 억지로라도 나오다 보면, 어찌어찌해서 믿음도 생기고 은혜도 받는 일도 생길 수는 있겠지요.
오늘도 교회에 못 나오신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온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별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자칫 보수적이라는 기독교인들이 조심해야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세계와 한국에 자유주의자 혹은 무교회주의자들이 나타난 원인이 되었고, 최근에는 무관심교인들, 혹은 낙심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종종 보수적인 분들이 인용하는 구절이 이것입니다. 이 구절을 인용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고, 해석을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8~20,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면 예수님의 말을 따라 바리새인들보다 더 잘 지키려면 적어도 바리새인들이 지켰던 이런 것들도 다 지켜야하는데 정말 이런 것들도 행해야 합니까? 정말 그런 식이라면 난감하겠지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는 조항 준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바리새인이나 율법주의자들이 하는 외형적인 준수보다 훨씬 더 뜨겁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경건의 내적 아름다움은 없고 외형적인 준수를 강조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기는 있습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율법조항들을 다 지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유독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뭔지는 잘 아시지요?
“작은 것 하나도 못 지키면 죽음이다. 그러니 우리는 교회에서 지키라는 것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하며, 그 다음에 성경을 인용하며 ‘뭐해라, 뭐 해라’를 당연하게 말합니다.
물론 자신들도 잘 지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결과를 누립니다. 명예를 얻습니다. 자신은 성경말씀대로 사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자타의 인정을 받습니다. 또 권세를 얻습니다. 그렇게 성경말씀으로 포장된 자신들의 요구를 따르도록 하고, 그렇게 따르는 세력들을 자신의 권력화에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물질을 찾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물질적으로 풍요한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런 것들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정확히 구별한다는 것은 때로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칫 부적절하게 적용하면 사람들을 정죄하는 잘못도 생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것 한 가지를 잘 보시면 분명합니다. 대개 율법주의자들은 작은 것에 치밀합니다. 그러나 정말 큰 것,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 진리, 거룩과 같은 커다란 것에는 장님입니다. 남을 세우거나 섬기거나 높이는데 어둡고 자신이 대접받는 일과 명예에 밝은 사람은 율법주의자입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소위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을 빌미로 이것저것 하라고 요구하면서, 결국 그 결과는 자신들의 배를 살찌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 이단입니다. 이단의 목적은 하나같습니다. 그 꼭대기에 있는 교주나 최고 고위층만 잘 사는 겁니다. 북한 집권자들이 딱 그 모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훈계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예로 듭니다. 그것은 십계명 중 제5계명입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대로 부모를 섬겨야 하는데, 부모의 물질적인 필요를 자녀가 공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자녀가 “이것은 성전에 바칠 겁니다.” 즉 “고르반입니다”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에 부모에게 드리지 않아도 되게 됩니다. 그러나 언제 바치라고 명시하지 않았으니 나중에 바쳐도 됩니다. 그래서 그 재물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르반 이야기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러한 모든 ‘정결 규례’가 폐지되었습니다. 베드로도 나중에야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고넬료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 10:1~23,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시면서,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이 구원 못 받을 부정한 민족으로만 생각되어진 구약식 고정관념을 바꾸어 주십니다.
골로새서 2:14~19,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성경은 분명히 식물(食物)에 관한 문제도 함께 폐지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씀하기를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 14:20)라고 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롬 14:14)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주를 드셨는데 우리는 왜 못 먹게 합니까? 성경에는 담배피지 말라는 말이 없는데 담배를 왜 피우지 못하게 합니까? 예수님 시대 때에는 포도주가 술과 음료수로서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담배는 당연히 그 시대에 없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맥주를 술로 인정하는 나라가 있는 반면에 어떤 나라는 맥주를 음료수처럼 생각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맥주가 주류(酒類)로 법제화되어 있으니 당연히 술이라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술 담배 문제는 비록 성경에 없지만 신앙이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공통되는 기준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만 믿고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술 담배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을 거룩한 하나님의 전으로 드려 그렇게 살고자 할 때에 술 담배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초월하셔야 합니다. 자연히 그런 것들과 관계가 없어집니다. 그것이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는 술 담배도 전혀 안하는데 저 교인은, 저 집사는 왜 저래.” 그러면 그것은 그의 경건의 모습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술 담배를 하는 것과 아무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로마 교황청과 그 제도와 평생을 싸웠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교황과 그의 모든 추기경들보다 더 내 속을 더 두려워한다.”
유명한 설교자였던 찰스 스펄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선하다는 사람의 속에도 하나님이 그 불을 꺼지게 하시지 않으면 지옥의 밑바닥까지도 불태워버릴 화약더미가 있다. 가장 거룩한 사람의 속일지라도 만약 하나님이 주권적인 은혜가 막아주지 않으면 그의 연혼을 영원까지 멸망시킬 수 있는 부패와 사악함이 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우리의 내적인 동기, 숨어있는 속에서부터의 변화를 말씀합니다. “무엇을 해라”가 아닙니다.
율법이나 의에 대한 성경의 모든 지적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선언입니다. 성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부패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로마서 3:10~18,
[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은 이런 영적인 변화를 경험하십니까? 우리는 완전히 흑암에 있고, 혼돈한 가운데서 참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음을 고백합니까?
로마서 8:1~4,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우리 속의 것이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세상의 어느 만물보다, 누구보다 더 악한 자신을 깨닫지 못하면 모든 문제가 남들에게, 세상에 있고, 그것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 내가 누구인지, 어떤 죄인인지 알면 오히려 받은 은혜에 감사하게 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New Heart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거듭났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안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도 성령의 은혜로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나기 전에 본 환상(행 10장)을 통해 깨닫게 된 진리를 우리도 성경을 통해 볼(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거듭나, 은혜를 따라 살며, 커다란 신앙성숙을 향해 자라야 합니다.
참고.
구약의 정(淨)한 음식과 부정(不淨)한 음식의 규례
종류 |
정한 동물 |
부정한 동물 |
관련 구절 |
포유류 |
굽이 갈라진 것 새김질 하는 것 |
정한 동물 조건에 하나의 결격사유라도 있는 것 |
레 11:3~7 신 14:6~8 |
조류 |
부정한 것 이외의 것 |
썩은 고기 취식 맹금류 더러운 주거지 |
레 11:13~29 신 14:11~20 |
파충류 및 기는 것 |
전무(全無) |
전무 |
레 11:29~30 |
어류 |
지느러미 있는 것 비늘 있는 것 |
정결한 것에 하나의 결격 사유라도 있는 것 |
레 11:9~12 신 14:9~10 |
곤충류 |
날개가 있는 것 네 발로 기어 다닐지라도 뛰는 다리가 있는 것 |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닐지라도 뛰는 다리가 없는 것 |
레 11:20~23 |
'Heav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가복음 37.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시고 (0) | 2012.07.05 |
---|---|
마가복음 36. 한 여인의 믿음 (0) | 2012.07.01 |
마가복음 34.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2) (0) | 2012.06.17 |
마가복음 33.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1) (0) | 2012.06.10 |
마가복음 32. 오천 명을 먹이신 종 (0) | 2012.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