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Be Anointed

 

좋은 설교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좋은 설교는 노력의 결과인가?

 

운동선수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 그리고 승리를 위해 하루에도 수많은 시간을 연습과 훈련에 투자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하루에 7~8 시간을 연습한다. 그만큼 연습해도 최고가 되지 못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기도와 성경 읽는 시간이 그들의 설교 연습에 해당이 될까? 약간은 그렇다. 좋은 설교를 하기 위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이나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조건이 되어서 좋은 설교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들은 단지 필요하지만 때로는 전혀 소용이 없기도 한다.

 

아니면 운빨(fluke)인가?

 

설교자가 설교를 위한 특별한 준비나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설교의 현장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설교자는 자신이 졸면서(사역에 너무 힘들어서) 설교했는데도 설교를 마친 후 회심의 시간에 진지하게 앞으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설교의 성패는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노력에 비해 잘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노력하면 더 잘되는 경우도 있고 노력하지 않으면 또 그만큼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답이라면, 설교자의 간절함영적 민감성에 설교의 성패가 아주 약간 비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좋은 설교를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제로 대단하다는 설교자라도 열에 한 번 홈런 치기가 쉽지 않다. 일류의 야구 타자의 안타 타율이 3할만 넘어도 대단한데 청중이 설교자에게 매번 안타를 요구하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다. 설교의 홈런과 삼진 아웃을 어떻게 아냐고? 설교자는 그냥 안다.

 

설교자의 간절함영적 민감성이란 설교자의 입장에서 표현할 수 있는, 그 자신이 갖게 된 태도일 뿐이다. 그것들을 설교자가 얻도록 한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고 감동케 하시는 성령이시다. 설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름부음(anointed)이다. 성령의 감동하심이다.

 

세상에 눈이 가고 자신의 현재에 배부른 설교자들은 마음이 간절하고 영적으로 민감한 태도를 결코 가질 수 없다. 그가 과거에 어떤 성령의 은사를 맛보고 영적인 체험을 했었을 지라도 아니 지금도 신령한 이적을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일 수도 있다.

 

설교자가 겉으로 성공적인 설교를 하고 어떤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7:23).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전달한 사람의 뼈에 불이 붙게 하신다(20:9). 화염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십자가의 전달자들이다(6:6,7).



02. Be Reformed

 

자신의 설교를 모니터링해 주는 제 삼의 청자를 인정할 수 있는 거듭난 설교자(reformed preachers)를 찾아볼 수 있을까?

 

두려울 수도 있다. 자신이 설교자인데도 설교에 재능이 부족하다는 것은 자신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것을 대놓고 밝히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찌하랴? 설교자에게서 설교 빼면 뭐가 남나?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누가 감히 나를 비평해? 외국에서 설교학을 전공하고 학위까지 딴 몸인데.” 학위가 설교를 잘하게 해주지 않는다. 정말 설교 잘하는 사람은 그런 학위 따려고 목매지 않았다. 자기가 잘한다면 왜 필요해?

 

필요성을 못 느낀다. 자신이 설교를 잘한다고 착각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말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듣는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목소리도 좋고, 말을 구수하게 하고, 재치 있게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천부적인 사람들이 있다. 앵커맨이나 이야기꾼은 될 수 있어도 설교자는 아니다.

 

이상하게도 설교를 잘하는 사람들이 좋은 설교에 대해 더욱 목말라한다. 청중의 영혼을 감동시켜 본 사람만이 그 느낌을 안다. 그때 느낀 그 전율스러운 파동은 자신을 영원히 설교자로 낙인찍게 한다.

 

용기를 내어 제 삼의 청자를 찾으라. 그리고 변화되어라. Be refor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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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ormed Preachers Society 01

 

The Third Listener

 

윗필드나 스펄전 같은 천부적인 천재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어떻게 자신의 설교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학생들의 설교는 그래도 약간의 교정의 기회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직 목사, 설교자는 어떻게 할까? 신학교의 방학학기를 이용한 특강이나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미나, 그리고 독서 등을 통한 자기 계발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통해서 확실히 변한 설교자가 있던가? 많이 다니고 많이 읽기는 했는데 변한 것은 거의 없다. 신학생의 설교 능력은 그가 은퇴할 때까지 동일하다.

 

문제는 어떤 설교자도 자신의 설교가 남에 의해 평가받기를 원치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청중들도 자기 목사의 설교를 평하는 것을 무슨 신성모독으로까지 생각하는 것 같다. 목사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동일시하는 것 같다. 물론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은 깊은 관계가 있다. 교회 역사와 전통을 볼 때, 설교라는 제도는 교회의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이 공급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허용하셨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설교를 통해 신자는 많은 도움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는 구분이 되어야 한다.

 

목사도 인간인 이상 인격뿐만 아니라 설교에서도 인간적인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설교를 당신의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 그러하기에 목사들은 자신의 설교에 더욱 겸손하고 자신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되도록 설교를 위한 자신의 인성과 영성의 발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아야 발전한다.

페이스북 같은 곳에 게시글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좋아요클릭과 칭찬하는 댓글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고 나아가 찬양해주는 팬들을 끌고 다니고 싶기 때문이다. 불행이지만, 설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설교에 팬이 있기만을 바라지 평하는 사람은 용납하지 않는다.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들은 주인으로부터 언제나 사랑만을 받기 바란다. 그 존재의 이유가 주인의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장난감이라는 표현은, 애완동물을 자식 같이 키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하는 말이다. 설교자가 애완동물처럼 칭찬만을 듣고 사랑만을 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은 절대 발전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서서히 나태해져 가는 자신을 영원히 발견하지 못한다.

 

악의적이고 저급한 수준의 댓글이 아니라 비록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도 그 평가가 제대로 자신의 약점을 말하고 발전 방향을 가르쳐 준다면, 설교자는 그 평가를 겸손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수준의 설교자를 찾아볼 수 있을까? 자신이 한 나라에서 설교의 황제로 불리고 수 천 명의 교인들이 매일 은혜 받았습니다하고 자신을 왕처럼 떠받드는데 그런 비평을 받아들일만한 목사가 있을까? 그런 비평을 받아본 적도 없을 것이다.

 

목사들은 자신의 설교를 들어주고 평가해 줄 수 있는 세 명의 사람들이 필요하다.

 

첫째는 한 사람의 청중이다. 이 청중은 너무 찬양일색이어도 너무 반골일색이어도 곤란하다. 청중 중에서 자신의 설교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을 고르라. 그리고 말로 하지 말고 문자나 메일로 평을 해달라고 부탁하라. 대면해서 직접적으로 평을 할 수 있는 신자는 없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사람들이 많다면 그 한 사람의 청중을 정기적으로 바꿔가며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도 좋다.

 

둘째는 목사의 부인이다. 보통 목사의 부인들은 보수적이어서 목사 남편 찬양일색이다. 남들에게 자신의 남편을 비평할 수 없다. 그러나 속까지 과연 그럴까? 목사 부인은 자신의 남편의 설교준비 상황과 인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에 그런 면에서 설교의 분위기 변화나 장단점을 가장 예민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청중이나 목사 부인으로부터의 설교 평이 사실 제대로 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들이 처음에는 한두 번 평할 수는 있지만 계속적일 때는 아무래도 인간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능하면 그들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제대로 완벽한 객관적인 평을 받을 수는 없기에 가장 좋은 설교 평가자는 그 셋째로서, ‘제 삼의 듣는 자’(the third listener)이다.

 

제 삼의 듣는 자는 설교자의 교회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되 설교를 평해줄 수 있는 신학과 신앙의 안목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사람은 비디오나 오디오 자료를 통해 정기적으로 설교자의 설교를 듣고 평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정밀하게 들어줄 정말 좋은 청자를 가져야 한다. 어떤 설교자가 그런 용기가 있을까?

 

유명한 교회의 설교자들이 가끔 자신의 설교평을 듣는 때가 있다. 출판기념회나 회갑잔치 같은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평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찬양이지 비평이 아니다.

 

설교의 목적이 비평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의 설교가 제대로 된 비평을 받아 본 적이 없기에 당신의 교회가 속으로 썩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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