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5. 말세의 때와 징조

 

마가복음 13:1~37,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7]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의 파괴를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답한 말씀의 내용이 바로 마태복음 24, 마가복음 13, 누가복음 21장에 공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운 현재만 볼 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제자들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의 미래와 세상 모든 것의 종말을 내다 보셨습니다.

 

예루살렘은 AD 70년에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있던 시기와의 간격은 약 40년 정도입니다. 40년은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긴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예수님께는 한 순간입니다. 여러분도 만약 과거의 40년 전을 생각하거나, 40년 후 미래에서 현재를 바라본다면 비슷한 느낌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파괴를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세상의 종말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종말이란 말은 반드시 세상 끝나는 마지막 시기의 짧은 시간을 말하지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넓은 개념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관점, 영원의 시점에서는 예수님의 때와 마지막 시기의 때를 동시에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간대를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즉 종말이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전체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초림 이후의 모든 시간이 말세입니다.

 

예수님이 마가복음 13장에서 그렇게 세상을 보시면서 말씀하셨고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훗날 자신도 그 입장에서 계시록을 영감 받아 기록한 사도 요한도 그렇게 세상의 시간을 보았습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을 할 때도 세상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사건이 나오기 직전에 이 종말론이 등장하느냐 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마가복음은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본받는 제자도를 말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박해와 고난 중에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 기록된 책이 마가복음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절정의 사건이 등장하는 바로 직전에 예수님이 종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그 이유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십자가에 익숙해져서, 십자가를 구원의 상징으로만 보기 쉽습니다. 물론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본래 십자가는 로마의 사형도구였습니다. 형벌의 도구요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십자가에는 구원과 심판의 양면이 있습니다. 가장 큰 예로, 바로 유대민족 이스라엘이 그 본보기로 사용되어졌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부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했고 그들의 모든 것이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구원의 핵심인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값을 자신과 자신들의 후손이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그들은 그 죄값을 받고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지구상에서 이스라엘 국가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중 살아남은 자들은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 후 1948년 독립해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나라를 세울 때까지 거의 2천년을 박해받고 유리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말씀하실 때 이 모든 상황과 앞으로의 세계 종말에 대해서도 동시에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그들의 죄를 거꾸로 드러내게 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2천년을 방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예수님을 거부하는 세상 세력에 대하여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때마다 사실 심판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미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원죄로 심판을 당하게끔 되어있습니다. “예수 믿으라고 할 때 그들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냐 심판이냐!

 

대개 구원 받으라는 복음을 듣고 사람들은 냉랭합니다. 자꾸 들으면 열 받습니다. 그리고 반감을 갖습니다. ‘너희들만 구원이 있냐? 착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면 되지 왜 굳이 믿어야 하느냐? 그러는 너희들은 잘났느냐? 오히려 못하지 않느냐?’

 

자신들은 모르고 하는 말들이지만 그런 말과 태도는 피값과 심판을 받겠다는 유대인의 선언과 똑같습니다. 그들도 그런 말을 한지 한 세대, 40년도 안되어 예루살렘이 멸망할 줄 몰랐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종말론자는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짐승들을 본 환상을 통해,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 직후의 전세계의 종말과 심판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자, , 표범, 열 뿔 달린 짐승을 보았습니다. 그것들이 구약에서 처음 인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그리스도가 그 짐승으로 대변되는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의 세계열강들이 서로 잡아먹게 하다가 최후로 그들을 심판합니다.

 

다니엘 7:1~14,

[1]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2]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9]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11]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12]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았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갖고 있는 분들은 열 뿔 달린 짐승을 현대의 세계열강이나 EU 연합 등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이 세력을 잡고 전 세계인을 다스리면서 그리스도인을 박해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즉 열 뿔 짐승이 적그리스도라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적그리스도가 최종 종말에 등장할 어떤 인격체나 세력집단 만은 아닙니다. 다니엘서의 열 뿔 달린 짐승만이 적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적그리스도란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그를 죽이려 한 헤롯왕부터 지금까지 앞으로 계속 기독교 신앙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신자들을 위협하는 모든 세력과 인격체들이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세력들을 파괴하고 심판하시는 분이 그리스도 인자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권세를 주신 것을 모르고 자기의 욕망에 취한 세상 권세들을 최종 징벌하십니다. 그 일들은 이 땅에 인간들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따른 제자도를 행한 일에 대하여 보응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제자들 가운데 인자가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27~28,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 있던 12제자들 모두 다 순교하거나 늙어 죽었습니다. 아직까지 살아있는 제자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아 거짓 증인들을 시켜서 예수님의 죄를 찾아내려고 했을 때,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

 

마태복음 26:63~64,

[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그때 하신 예수님의 대답이, ‘대제사장, 너는 내가 심판하러 오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대제사장이 아직 살아있습니까? 그는 아마도 나이가 많아서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도 보지 못하고 늙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과 세력들이 적그리스도이고 그들을 심판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세상 최후의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계시록의 최후의 백보좌 심판이 분명히 역사적으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세상 역사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개인 일생에서 주님의 심판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찾아오실 때 어떤 이들에게는 구원과 소망의 때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절망과 심판의 때입니다.

 

요한일서 4:1~6,

[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말세의 때와 징조는 막연히 어떤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세상 최후의 때에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세는 현재, 현실에도 있습니다. 처처에 나타나는 지진, 기근, 전쟁, 불행, 그리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와 고난은 언제나 있어 왔습니다.

 

오늘을 그 때로 알고 주님 오실 징조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물론 진정한 그 마지막 때는 마치 여름에 실과가 맺어 그 시기를 가늠하게 하듯이 분명히 경고성을 갖고 찾아 올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베드로처럼 천국 열쇠를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을 주님께 드리고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하는 제자로서의 매일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이 심판의 때입니다. 종말의 때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교훈으로 남기시고자 주님이 십자가 사건 직전에 예루살렘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을 심판과 종말로 살지 못하면 최후의 날에도 신자라할지라도 그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한 달란트 숨겨둔 방탕하고 게으른 종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내일부터 다이어트하겠다, 금연하겠다는 사람은 영원히 하지 못합니다. 오늘 다이어트하겠다고 시작하는 사람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주님 오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화려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보시면서 그 파괴와 멸망을 보신 것처럼,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참고 견디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가가 쓴 복음서를 읽었던 로마교회의 성도 여러분입니다. 그때 그들은 상대적으로 우리 21세기 한국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신앙의 환경 속에서 믿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기본 신앙의 정신, 세상의 심판과 종말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은 똑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신앙의 이 싸움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신앙에 마음이 없는 사람들과 세력들은 이 거룩한 싸움에 나서지도 못합니다. 이 싸움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오늘 싸우지 않으면 내일의 종말을 승리로 맞을 수 없습니다.

 

타이거 우즈 보고 골프 잘한다고 말하면 욕이랍니다. 그는 세계 최고 프로 골프 선수입니다. 대신 야구 잘한다고 해야 칭찬이 됩니다. 야구는 타이거 우즈가 골프 다음으로 좋아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대학생 때는 야구장학생이었다가 도중에 골프로 바꿨다고 합니다.

 

중고등 학생들이 시험 끝나면 꼭 이런 일이 보입니다. 이번에 시험 잘 봤다고 나대는 학생은 공부에 진정한 관심이 없는 학생입니다. 지금까지 잘 못했다가 어쩌다 시험을 잘 본 겁니다. 그러나 시험 못 봤다고 시무룩한 사람은 평소에 잘했거나 적어도 잘하려고 애쓰고 기대했던 학생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지키고 싸워야 하는 본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했다고 칭찬받을 가치가 없을 정도로 당연히 잘해야 하는 일입니다. 조금 못한 것으로 마음 아파하고 신경 써야하는 우리의 영토인 것입니다.

 

왜 여러분이 전도하는 회수와 기도 시간, 읽은 성경의 장수로, 헌금의 액수로 판정이 되어야 합니까? 만일 어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성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 자녀는 얼마나 불행합니까? 남자가 여자를 미모로만 평가하면 정상적인 가정이 되겠습니까?

 

더 높은 신앙으로 자라야 할 여러분들이, 남들이 하는 무슨 프로그램을 해야 하고 또 거기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고 그 행사의 결과로 교회와 신자의 수준을 가늠하려 하는 일은 신앙의 본질과 거리가 먼 일들을 혼동하는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의 권고의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을 종말처럼 살아가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의 군사로서 여러분이 가야할 신앙의 목표를 끝까지 견고하게 잡는 수준으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3:12~14,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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