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06. 사역의 시작
마가복음 1: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NIV
[14] After John was put in prison, Jesus went into Galilee,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God. [15] "The time has come," he said. "The kingdom of God is near. Repent and believe the good news!"
KJV
[14] Now after that John was put in prison, Jesus came into Galilee,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15] And saying, "The time is fulfilled, and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repent ye, and believe the gospel."
예수님이 광야 시험 후, 세례 요한의 체포 소식을 듣고 곧 바로 갈릴리로 오신 것은 아닙니다. 그 이전에 거의 일 년 가까이 유대지역에서 사역을 하시다가(요 1~3장) 갈릴리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수개월간의 유대 지방의 사역을 생략하고 곧바로 갈릴리 지방에서의 사역을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마가는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을 세례 요한의 체포 사건과 곧바로 연결시키기 위해 유대 지방의 사역은 생략하고 갈릴리 지방의 사역으로 직진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신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나라는 셋으로 분할되었고 세 명의 총독이 다스렸습니다. 그 가운데서 갈릴리 지방과 베레아 지방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의 유대왕이었던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디바스(Herod Antipas)가 다스렸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로 갈릴리 지방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에게 회개를 촉구했으며,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기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았으며,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나타나서 군대를 모으고, 로마제국을 쳐부수며, 모든 나라를 그 발아래 굴복시킬 것이라고 구약을 해석했고 그렇게 믿으면서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즉, 작은 나라 이스라엘이 로마제국 같이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메시야에 대한 이러한 기대는 정치적으로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던 유대 땅 어느 곳에서나 폭동을 유발할 수 있는 대단히 위험스러운 사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 안디바스는 유대인에게 메시야 비전을 심어주는 세례 요한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를 붙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의 원성이 두려워 요한을 옥에 가두고 있다가, 자기와 결혼한 헤로디아의 딸(살로메, 헤롯 빌립과 헤로디아의 딸, 헤롯 빌립은 헤롯 대왕과 클레오파트라와의 아들, 헤롯 안디바스는 죽은 동생 빌립의 아내와 결혼함, 막 6:17~18)이 춤을 춘 일에 대한 상으로 할 수 없이 요한을 죽이게 됩니다. 이 일이 마가복음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는 세례 요한의 전기를 쓰는데 목적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요한이 무슨 이유로 어디에서 어떻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한의 순교에 관해서 마가는 6장(14~29절, 요한의 죽음에 대한 과거사 기록)에 이르러 비로소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제 요한의 시대가 지나가고, 예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데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붙잡힌 시기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것도 요한이 체포된 갈릴리 지역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시게 됩니다. 요한이 체포되어 역사의 뒤로 사라져 가고, 광야에서 돌아온 예수님이 갈릴리에 나타나시는 이 역사적 교차점에는 한 가지 공통된 단어가 운명처럼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paradidomi”입니다. 마가는 요한이 잡혔다(arrested)고 묘사할 때 헬라어 동사 파라디도미(paradidomi)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의 배반으로 유대인의 관원들에게 넘겨졌다(handed over)고 할 때도(막 9:31; 10:33; 14:21,41) 똑같은 헬라어 동사 파라디도미(paradidomi)를 사용합니다. 즉, 이 헬라어 동사는 요한이 붙잡혀 처형당했듯이 예수님도 결국 붙잡혀 처형당할 운명임을 암시해 줍니다.
파라디도미(paradidomi, 넘겨주다)는 본래 헬레니즘 세계에서 범죄자들에게 사용되는 법률용어인데,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의 기록들은 이 어휘를 주로 예수의 고난과 재판을 나타내는 전문용어로 사용하였습니다.
paradidomi는 또한 우리 말 “넘기운다”는 단어로 예수님이 잡혀 죽게 되는 장면에도 사용됩니다.
마가복음 9: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마가복음 10: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또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다”는 단어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복음 3: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바울의 편지들에서도 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버리다”라는 뜻으로 나타납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에베소서 5:2,25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내어주다”라는 뜻으로도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그러므로 마가는 세례 요한의 체포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앞으로 예수님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예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가의 관점은 요한의 체포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최종 목표인 십자가에 일치한다는 것이었고 그 사실을 증언하는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닥쳐올지 아셨습니다. 요한처럼 붙잡혀 처형당할 것을 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붙잡혀 처형을 눈앞에 둔 갈릴리 지방에서 그의 첫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시작부터 죽음을 예약해 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길은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성공입니까? 십자가입니까? 그것으로 제자냐 아니냐가 구분이 됩니다.
이제 예수님이 첫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전하신 복음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적용해보겠습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복음전파는 어떤 내용을 갖고 있었을까요?
1. 복음적입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기쁜 소식은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고 그리고 부활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목사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종으로 살기를 원하는 모든 믿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사도행전의 성도들도 자신들의 신앙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복음전파는 성도들 모두의 몫입니다.
사도행전 11:19~20,
[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복음이란 사람을 위한 구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 중심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 중심’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 중심주의(神本主義)입니다. 복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입니다.
3. 성경적입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구약의 모든 말씀입니다. 구약은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예언했고 그것을 이루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전한 복음은 그러므로 성경적입니다. 거꾸로 성경적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입니다.
4. “때가 찼고”
구약에 예언된 구원의 때를 시작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 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여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권세가 적용되고 말씀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이 지상에서 보이는 세상 권세가 아닌 영적인 삶입니다.
궁극적으로 종말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지상에서 이루어 질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온전한 그 나라의 성취를 기다리는 중간 단계의 시기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던 때에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는 ‘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으라. 그리고 죄에서 돌이켜라. 너희를 구원하는 복된 소식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죄에서 돌이켜서 그리스도께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교회에 나오고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만약 다른 목적이 있어서 교회에 온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진리는 아주 심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기 있는 설교자들은 기독교 신앙이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설교합니다. 그리스도인 자신이나 그 자녀의 출세와 성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설교합니다.
좀 더 세련된 설교가들은 기독교 신앙이 생존의 투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얻게 해 줄 것으로 설교합니다. 그래서 신앙을 적극적인 혹은 긍정적인 사고방식(positive thinking)으로 규정하고, 기독교 신앙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업 정신을 낳게 한다고 설교합니다. 이 모든 설교들은 듣는 이들이 화려한 삶을 예약해 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최근에는 영국에서 ‘Gospel Illusion, 혹은 Magic’이라는 마술쇼로 설교하는 목사도 있습니다. 인터넷(유투브) 검색하면 동영상도 나옵니다. 주일 강단에서 마술을 하며 사람들의 집중과 흥미를 끌어당깁니다. 그런 이벤트를 하는 설교자들은 교인들이 졸면서 예배드리는 일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도용이어야 합니다. 그런 이벤트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좋은 방법은 될 수 있지만 이미 믿고 있는 신자들을 위해 교회 안에서 쇼를 하듯 하는 것은 설교가 제 자리를 잃어버린 모양을 보여줍니다.
이런 것들은 복음에서 크게 벗어난 설교들입니다. 복음에 입각한 설교는 화려한 삶을 예약하는 설교가 아니라 죽음을 예약하는 설교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성령이 역사해야지 왜 이벤트와 재미가 역사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고난의 길을 가셨고, 그 사역을 고난을 암시하는 세례 요한의 죽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역과 우리가 믿는 복음은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내용도 아니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용도 아닙니다.
무엇이 복음입니까? 우리는 또한 그 복음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마가는 이렇게 간절한 심정으로 당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행적을 들려주면서 그들의 현실과 복음의 삶을 연결시키려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가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신다면 고난을 당신의 목표로 시작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그 길을 걸어간 것처럼 고난을 능히 받되 또한 이겨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디모데후서 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2: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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