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26. 배에 계신 그대로
마가복음 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마가복음의 ‘네 가지 비유’ 이후 ‘네 가지 이적’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1. 바다를 잠잠하게 하십니다. 4:35~41
자연을 다스리심을 보여 주십니다. 어떤 어부, 선원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 거라사의 무덤에서 군대귀신 들린 자를 고치십니다. 5:1~20
귀신의 세력을 굴복케 하십니다. 어떤 정치인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3. 혈루병 걸린 여인을 고치십니다. 5:26~34
인간의 불치병을 고치십니다. 어떤 의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4.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십니다. 5:35~43
죽음도 이기십니다. 어떤 부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들은 인간들의 극한 상황에서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의 네 가지 비유를 전하신 후 제자들과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십니다. 말씀을 가르치시다가 그 배를 그대로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건너가자”고 하십니다.
바다란 짠 물이어야 하나 당시의 갈릴리는 짠맛이 약하거나 거의 민물에 가까운 물이지만 바다라 불렸습니다. 갈릴리바다는 해수면이 낮으면서 주변의 산이 높은 특이한 지형을 갖고 있는 바다입니다. 그래서 종종 이상기후로 거센 바람이 불기도 하는 곳입니다.
갑작스럽게 바람이 잘 변하는 바다이지만, 어부로서 경험 많은 제자들이 보기에는 그때 바다를 배를 타고 건너도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건넙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몇 명이 다른 배를 타고 같이 바다를 건넜습니다. 예수님은 그날 하루 종일 있었던 육체의 피로로 인해 배 안에서 잠드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달라지고 파도가 일었습니다. 경험 많은 노련한 뱃사람들인 제자들도 배 안에 물이 들어오고 뒤집혀질 것 같아서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고 소리 질렀습니다. 다음 상황은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고 예수님은 바다를 잠잠케 하십니다.
이 배는 제자들에게 단지 들려지는 비유가 아니라 체험하는 다섯 번째 비유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험한 파도의 비유를 체험하는 시험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오늘도 이런 파도를 경험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마가복음의 최초 독자들은 로마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이 장면을 읽었을 때 아마 자신들의 입장을 비교해 보았을 것입니다. 아마 믿음에 대한 회의가 일어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네로황제의 핍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에도 처해졌습니다. 마치 자신들을 구할 분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바로 그들이 모든 자연과 귀신과 질병과 죽음도 이기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고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에게는 다섯 번째 비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 안에 계신 예수님이 어떠하셨습니까?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유일한 구원자가 마치 잠자는 것 같습니다. 아니 진짜 잠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구약에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경험했던 일입니다.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습니다.
시 31: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장밋빛 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믿음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요즘은 교회에 나간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나를 정말 돌보고 있습니까?
시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배 안의 제자들은 믿음의 학교를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하교를 다닙니다. 세상의 학교에도 시험이 있듯이 믿음의 학교에도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종이로 보는 시험이 아니라 삶으로 보는 시험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갈릴리바다라는 시험장에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잠잠하다”라는 뜻의 두 단어:
1. 침묵하다 siope - 스스로 조용하게 됨
2. 재갈을 먹이다 phimo - 강제적으로 조용하게 됨
마가복음 1: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φιμώθητι)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마가복음 3: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ἐσιώπων)
마가복음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πεφίμωσο)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마가복음 9:34,
저희가 잠잠하니(ἐσιώπων)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마가복음 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σιωπήῃ)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마가복음 14:61,
잠잠하고(ἑσιὠπα)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그러므로 4:39의 바다를 ‘잠잠케’ 하신 단어는 ‘재갈을 먹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바다를 잠잠케 하실 수 있습니다.
시 89:9,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
예수님은 이 일로 제자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저가 뉘기에?”
예수님의 목표는 이 파도 속에서 여러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알게 되는 체험을 하게 하십니다. 나는 어떤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때로는 그 파도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죽을 뻔한 기록이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27:18~25,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제자들은 아마 주무시는 예수님을 보고 ‘우리가 지켜드려야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무시고 있었을지라도 세상의 어떤 것도 예수님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통해 그 분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표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주님과 같은 배에 올라타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인생의 배에 주님이 있음을 알고 있나요? 여러분은 처음 구원받은 그대로 주님과 함께 출발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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