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ormed Preachers Society

 

06. Decrease preaching

 

설교자들이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

How much time do preachers spend preparing a sermon? (http://thomrainer.com/2013/06/22/how-much-time-do-pastors-spend-preparing-a-sermon/)

1~3 시간: 1%, 4~6 시간: 9%, 7~9 시간: 15%, 10~12 시간: 22%, 13~15 시간: 24%, 16~18 시간: 23%, 19~21 시간: 2%, 22~24 시간: 0%, 25~27 시간: 1%, 28~30 시간: 2%, 31~33 시간: 1%.

 

미국의 목사들이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3시간이라는 비공식적인 통계(트위터 투표)가 있다. 물론 미국의 교회들은 한국에서처럼 새벽기도회가 없다. 서구의 개혁교회들은 보통 주일에 1~2회의 예배와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주중 예배가 있다. 그러니 설교 횟수가 많아야 주 3회 이다.

 

그런데 한국의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설교하는 횟수는 10회 이상이 40.2%, 그리고 평균 설교 횟수는 7.5(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159)라고 한다.

 

10회를 만약 13시간씩 준비한다면 130시간(5.4)이 걸린다.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잠도 안자고, 먹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설교 준비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 한국의 목사들은 사실 제대로 된 설교 준비할 시간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1. ()을 푼다.

Just talk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2. 다른 설교를 인용하거나 아예 통째로 베낀다.

요즘 표절 문제가 많이 거론 된다. 설교 표절로 목사를 비난하는 진정한 이유는 설교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실은 교인들에게는 권위적이고 세상 영광만을 좋아하는 그 목사의 인격과 행동이 싫은 것이다. 감정적이고 내적인 부분을 공론화하기는 어려우니, 논문 표절이 범죄로 취급되는 사실에 근거하여 내가 비난하기 원하는 목사의 설교를 거론하는 것이다.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42.195km를 자신의 다리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차를 타고 달린다면 사기다. 먼저 앞서 간 선수의 뒤를 갈지라도 노력과 고통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달려야 자신의 기록이 된다.

 

설교자가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과정이 없이 설교를 한다면 엄격한 의미에서 그것은 설교가 아니다.”(고신대 김대진 교수, 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159)

 

설교에 있어서 인용과 짜깁기의 범주를 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비록 설교자가 다른 사람의 설교를 거의 그대로 사용했더라도 성령의 감동하심과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녹이는 과정을 거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설교의 탄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스펄전, 윗필드, 피니, 무디 같은 설교자들의 설교를 인용해서 재탄생 시키는 것은 오히려 설교자들이 거쳐야 할 수업 과정이다

 

3. 설교를 줄인다.

담임 목사의 설교 횟수를 줄이고 다른 보조 목회자들이 설교하도록 해야 한다. 목사들이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교인들이 담임 목사의 설교만을 듣기 원하는지 솔직한 답을 물어본 적은 있는지? 그리고 새벽기도회를 예배가 아닌 설교 없는 기도회로 해야 한다. 담임 목사의 설교 횟수만 줄여도 한국교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설교 표절 문제는 많이 사라질 것이다


설교자가 위의 셋 중 어느 방법을 사용하는지는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은 표절도 어느 정도 가능하고 횟수를 줄일 수도 있지만 제발 첫 번째인 'blah-blah-blah'는 하지 말기를!

"A bishop keeps on saying at the age of eighty what he was told to say when he was a boy of eighteen, and as a natural consequence he always looks absolutely delightful." (Oscar Wilde, The Picture of Dorian Gray)



'Heav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t Your Ability  (0) 2015.03.22
쇼생크 구원  (0) 2015.03.21
Cast Away Preachers (Reformed Preachers Society 05)  (0) 2015.03.10
A Betrayed Preacher (Reformed Preachers Society 04)  (0) 2015.03.07
Be Anointed (Reformed Preachers Society 03)  (0) 2015.03.06

Fletcher: You're here for a reason. You believe that, right?

Andrew: Yes.

Fletcher: So say it.

Andrew: I'm here for a reason.

 

마지막 장면 The final scene of Whiplash


I'll cue you (in)! 내가 큐를 줄게! 내 신호를 기다려!

 

Whiplash(Damien Chazelle 감독. 위플래쉬는 영화 내용 중에 등장하는 재즈곡 이름이며 채찍끈, 자극, 편달이라는 뜻)는 액션장르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의 드럼비트 하나하나에 바싹바싹 속을 타게 하다가 꽝하고 터져 나가게 하는 보기 드문 명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 영화의 키포인트는 Andrew Neiman(Miles Teller의 역)Terence Fletcher(J. K. Simmons의 역)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분노와 복수의 갈등을 넘어서 마침내는 자신들이 원했던 음악의 완성을 이루어낸다는 점이다.

 

테렌스 플레처는 뉴욕 쉐퍼음악학교에서 학생들을 비인격적으로 가혹하게 대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선생으로 재즈악단의 지휘자이고, 앤드류 네이먼은 어려서부터 드럼을 좋아하는 열아홉 살의 학생이다. 플레처는 앤드류가 혼자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재즈밴드에 보조 드러머로 가입시킨다.

 

그러나 앤드류는 계속되는 적자생존 경쟁식의 잔인한 방법과 모독, 손찌검까지 가하는 플레처에게서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인정받지 못하자 분노에 차서 발표회 도중 플레처를 쓰러뜨린다. 앤드류는 이 사건으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다른 피해 학생들과 한 졸업생이 자살한 사건까지 나타나자 플레처도 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 후 앤드류는 몇 달이 지나서 바에서 피아노연주를 하는 플레처를 만난다. 플레처는 자신이 훌륭한 연주자를 키우려고 했다고 앤드류에게 말하면서 자신의 페스티발 공연에 앤드류를 드러머로 초대한다.

 

그러나 플레처는 공연의 첫 곡을 앤드류에게 미리 알려준 곡과 전혀 다른 곡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플레처가 자신이 학교를 나가게 된 원인이 앤드류의 증언 때문인 줄 알고 계획한 복수일 뿐 아니라 앤드류에 가하는 또 하나의 잔혹한 테스트이기도 하였다.

 

앤드류는 첫 곡을 엉망으로 마친 후 배반감과 절망감을 갖고 무대를 빠져 나온다. 그가 음악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포기하고 돌아갈 듯하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서 무대로 돌아온다. 그리고 비웃는 플레처가 다른 곡의 큐를 악단에 주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연주를 리드하기 시작한다. 앤드류는 뭐하고 있냐고 묻는 플레처에게 “I'll cue you.”(내가 큐 사인을 주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전 연주와는 전혀 다른 전율스러울 정도의 연주와 압도적인 앤드류의 리드에 다른 연주자들도 자신들의 연주로 호응한다. 플레처마저 앤드류의 연주에 빠져들어 지휘를 하게 되고, 두 사람은 음악을 통해 감정적으로 점점 일치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절정에 도달한 그들의 감정이 관객에까지 전달될 정도로 질주하면서 그들이 갈망했던 최고의 연주를 만들어 낸다.

 

음악에 미친 두 사람을 현실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앤드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질 각오까지 하며 연습에 빠져 들어가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플레처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한다. 플레처는 자신의 성격파탄적인 완벽주의와 그것을 위한 가혹한 지도방법을 자기방어하기 위해 자살한 학생이 자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입에서조차 꺼내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문제들이 그들의 열정적인 연주에 의해 당위성을 갖는다. 아마 천재들의 해결방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나 대립적인 갈등보다 더 진보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합의점을 자신들의 음악의 완성에서 찾았다는 것에서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대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간접 경험은 무엇에 비추어질까? 영화에서는 플레처라는 악마 같은 음악선생에 의해 그의 악단의 연주는 발전할 수 있었겠지만 몇몇 학생들은 극도의 절망과 모욕감으로 음악을 접거나 성공한 어떤 졸업생조차 과거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의해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 이 영화는 감독 자신의 고등학교 때의 경험에 기초해서 대본을 만들고 감독한 작품이라고 한다. 감독은 아마 영화 내용과 비슷한 사건을 보았거나 직접 경험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와 비슷한 상황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다.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 인질이 아니더라도 일부 매 맞는 아내, 학대받는 아이들도 이와 비슷한 심리 상태를 나타낸다고 한다)도 그와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악마 같은 지휘자와 학대 받는 연주자간의 그럴 법한 심리현상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만약 앤드류가 플레처의 복수 겸 시험에 굴복해서 무대를 완전히 떠났다면, 그는 영원히 자신의 희망을 접어야 했을 뿐 아니라 평생 패배감과 굴욕감에 빠져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신 그는 자신의 인생이 악마에 의해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그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을 끌고 나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선언이 “I'll cue you (in)”이다. (대사에서는 회화체로 in이 빠져있다. 한 번 더 "I'll cue the band." 라고 말한다.)

 

“I WILL CUE YOU.”

 

그렇다면 단지 그런 결심과 행동정도가 악마와 그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을 리드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악마의 카리스마를 압도해야 한다. 그 악마가 인정할 정도로 실력이 있어야 한다. 바에서 플레처가 앤드류에게 말해주었던, 조 존스가 던진 심벌즈에 목이 잘릴 뻔했던 찰리 파커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연주자는 자신의 한계(a limit)를 시험하는 모욕감을 이기고 피 흘리는 고통 가운데 연습, 연습, 또 연습을 한다. 그 결과 악마조차 리드해 내는 것이다. Those who try to make their goals come true practice, practice, and practice felt insulted and bled in pain testing a limiting line. As a result, they become so far as to lead the evil tester.

 

 

바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사가 가슴에 와 닿는가?

 

Terence Fletcher: I was there to push people beyond what's expected of them. I believe that's an absolute necessity.

 

Terence Fletcher: I don't think people understood what it was I was doing at Shaffer. I wasn't there to conduct. Any fucking moron can wave his arms and keep people in tempo. I was there to push people beyond what's expected of them. I believe that is... an absolute necessity. Otherwise, we're depriving the world of the next Louis Armstrong. The next Charlie Parker. I told you about how Charlie Parker became Charlie Parker, right?

 

Andrew: Jo Jones threw a cymbal at his head.

 

Terence Fletcher: Exactly. Parker's a young kid, pretty good on the sax. Gets up to play at a cutting session, and he fucks it up. And Jones nearly decapitates him for it. And he's laughed off-stage. Cries himself to sleep that night, but the next morning, what does he do? He practices. And he practices and he practices with one goal in mind, never to be laughed at again. And a year later, he goes back to the Reno and he steps up on that stage, and plays the best motherfucking solo the world has ever heard. So imagine if Jones had just said: "Well, that's okay, Charlie. That was all right. Good job. "And then Charlie thinks to himself, "Well, shit, I did do a pretty good job." End of story. No Bird. That, to me, is an absolute tragedy. But that's just what the world wants now. People wonder why jazz is dying.

 

Terence Fletcher: 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Andrew: But is there a line? You know, maybe you go too far, and you discourage the next Charlie Parker from ever becoming Charlie Parker?

 

Terence Fletcher: No, man, no. Because the next Charlie Parker would never be discouraged.


번역(자막파일 참조):

Terence Fletcher: 사실은 말이야, 사람들이 내가 쉐퍼(영화에서 플레처가 실력은 있으나 악명 높은 지휘자로 있었고 앤드류가 학생이었던 음악학교. 이 장면에서는 플레처는 앤드류를 가혹하게 대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고, 앤드류는 그 전에 플레처에 대항한 후 학교를 그만 둔 상태)에서 뭘 했는지 이해 못하는 것 같더군. 난 거기 지휘하러 간 게 아냐. 그 어떤 멍청이도 팔을 흔들고 사람들을 박자에 맞추게 할 수 있지. 난 사람들에게 그들의 기대 너머에 있는 무언가로 밀어 붙인 거라고. 그리고 난 그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우린 다음 루이 암스트롱이나 다음 찰리 파커(유명한 재즈 색소폰 연주자)를 세상으로부터 빼앗고 있었을 거라고. 내가 찰리 파커가 찰리 파커가 된 얘기를 했던가?

 

Andrew: 조 존스(전설적인 재즈 드러머)가 심벌즈를 머리에 던졌다고요.

 

Terence Fletcher: 정확해. 파커는 어린 꼬마였고 색소폰도 제법 잘 했지. 커팅세션에서 연주하게 됐고. 그리고 그걸 망쳐버렸지. 그리고 존스는 그것 때문에 거의 그의 머리를 잘라버릴 뻔했지. 그리곤 무대에서 비웃음 당했지. 그날 밤새도록 질질 짰어.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가 뭘 했게? 연습했어.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 한 가지 목표를 위해서. 다시는 비웃음 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1년 후 그는 레노(네바다주의 제2 도시)에 돌아왔어.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서 전 세계가 들어본 적도 없는 시발 존나 훌륭한 솔로 연주를 했지. 그러니까 상상해봐 조 존스가 "잘했어, 찰리," "바로 그거야, 참 잘했어"라고 말했다고. 그럼 찰리는 스스로 생각하겠지. "그래, 시발, 나 제법 잘했어." 이야기 끝이지. 위대한 찰리파커는 없는 거라고. 그건 나한텐 정말 끔찍한 비극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지금 세상이 원하는 거야. 사람들은 왜 재즈가 죽어 가는지 궁금해 하지. 내가 말해주지. 모든 스타벅스 재즈 앨범(영혼 없는 음악을 말함)들이 내 말을 증명해준다고, 정말로. 영어로 두 단어로 된 말 중에 이 말보다 더 해로운 말은 없어. "Good job. 참 잘했어요."

 

Andrew: 하지만 한계가 있지 않나요? 당신도 알잖아요. 만약에 너무 심해서, 당신이 다음 찰리 파커를 찰리 파커가 되지 못하도록 꺾어버린 다면요?

 

Terence Fletcher: 아니, 아냐. 왜냐면 다음 찰리 파커는 절대로 꺾이지 않기 때문이지.

 

 

'Under Your Fee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아 네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하지 않았다  (0) 2015.04.04
The Picture of Dorian Gray Quotes  (0) 2015.03.23
your hope today  (0) 2015.02.22
쉽게 씨워진 詩  (0) 2015.02.19
That's your moment.  (0) 2015.02.12


 

05. Cast Away Preachers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가 있다. 비행기 사고로 인한 4년간의 무인도 생활과 무인도 탈출 후 사회에 돌아왔을 때 주인공이 겪는 고독함을 그렸다. 너무 충격적이고 몰입이 대단한 영화였다. 주인공은 항공 배달물인 윌슨 배구공에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마치 친구처럼 혼자 대화한다. 그런데 뗏목으로 탈출하던 중 폭풍에 배구공이 날아가 버리고 주인공은 처절히 “I'm sorry, Wilson"을 외친다. 그리고 겨우 고향에 돌아왔지만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후에 아이까지 낳았다. 자신은 이미 죽은 것으로 장례까지 끝났다. 주인공은 자신의 무인도 생존에 도움이 된 배달물을 보냈던 사람의 집을 찾아서 빈 집에 쪽지를 남기고 돌아가는 길에 황량한 벌판의 사거리에 홀로 서있게 되면서 엔딩한다. 이 영화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데 결국 인생은 혼자만 남더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설교자가 고독하다고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그 설교자가 만일 찬양받는 인기 설교자라면 틀린 말이다.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성공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절대 고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십자가를 전하고 그 자신이 십자가의 삶을 사는 설교자라면 그는 고독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듣기를 원치 않고 따르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예수 믿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고, 양심의 고통에서 해방이 되고, 부모형제간 화평하게 되고...” 이런 말들을 꺼내는 것이 부끄러워야 한다. 그런 사람이 고독을 느낀 사람이다.

 

지혜란 남들이 절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진리이다. 그리스도가 ’(지혜를 구하는 모든 자)만을 다루시고 경험하게 하는 절대 고독이다. (Cf. Prov. 9:13-16; Lk. 4:24)

 

설교자들의 가장 큰 고통은 투옥이나 죽음이 아니다. It is to be betrayed and cast away. 그들은 자신들이 버림받은 고통을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2Ti 1:15; 4:10,15,16; 3Jn 9,10). They are those who see their bodies lied in the street. (Rev 11:8)




 

04. A Betrayed Preacher

 

If you are betrayed by your close one, it is a very natural happening.

 

And ye shall be betrayed both by parents, and brethren, and kinsfolks, and friends; and some of you shall they cause to be put to death. (Lk. 21:16)

 

Who killed Abel? Who persecuted Isaac? Who sold Joseph into slavery? They were their own brothers.

 

Who sent John the last apostle of Jesus into Patmos? It wasn't Romans or Jews. Perhaps it was his own spiritual brothers as Jesus was sold by His disciple.

 

I John, who also am your brother, and companion in tribulation, and in the kingdom and patience of Jesus Christ, was in the isle that is called Patmos, for the word of God, and for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Rev. 1:9)

 

And who killed Jesus? It wasn't Jews or Romans. It was you and me, His own brothers!

 

If you are betrayed by your close and loved one, it shows you are His disciple and you are a companion, and in the kingdom and patience of Jesus Christ for the word of God as a preacher.


03. Be Anointed

 

좋은 설교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좋은 설교는 노력의 결과인가?

 

운동선수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 그리고 승리를 위해 하루에도 수많은 시간을 연습과 훈련에 투자한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하루에 7~8 시간을 연습한다. 그만큼 연습해도 최고가 되지 못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설교자는?

 

기도와 성경 읽는 시간이 그들의 설교 연습에 해당이 될까? 약간은 그렇다. 좋은 설교를 하기 위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경이나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조건이 되어서 좋은 설교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들은 단지 필요하지만 때로는 전혀 소용이 없기도 한다.

 

아니면 운빨(fluke)인가?

 

설교자가 설교를 위한 특별한 준비나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설교의 현장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설교자는 자신이 졸면서(사역에 너무 힘들어서) 설교했는데도 설교를 마친 후 회심의 시간에 진지하게 앞으로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설교의 성패는 사람에게 달려있지 않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노력에 비해 잘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노력하면 더 잘되는 경우도 있고 노력하지 않으면 또 그만큼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가장 근사치에 가까운 답이라면, 설교자의 간절함영적 민감성에 설교의 성패가 아주 약간 비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좋은 설교를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제로 대단하다는 설교자라도 열에 한 번 홈런 치기가 쉽지 않다. 일류의 야구 타자의 안타 타율이 3할만 넘어도 대단한데 청중이 설교자에게 매번 안타를 요구하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다. 설교의 홈런과 삼진 아웃을 어떻게 아냐고? 설교자는 그냥 안다.

 

설교자의 간절함영적 민감성이란 설교자의 입장에서 표현할 수 있는, 그 자신이 갖게 된 태도일 뿐이다. 그것들을 설교자가 얻도록 한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고 감동케 하시는 성령이시다. 설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름부음(anointed)이다. 성령의 감동하심이다.

 

세상에 눈이 가고 자신의 현재에 배부른 설교자들은 마음이 간절하고 영적으로 민감한 태도를 결코 가질 수 없다. 그가 과거에 어떤 성령의 은사를 맛보고 영적인 체험을 했었을 지라도 아니 지금도 신령한 이적을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일 수도 있다.

 

설교자가 겉으로 성공적인 설교를 하고 어떤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7:23).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전달한 사람의 뼈에 불이 붙게 하신다(20:9). 화염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십자가의 전달자들이다(6:6,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