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이른 아침,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았더니 동네 이씨 아저씨(70대)가 나와보라는 겁니다. 저희 밭 옆의 농수로 주변에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우리 개가 아니냐고 합니다. 얼른 옷을 추려입고 나가보니 작은 하얀색 강아지가 죽을 듯이 낑낑거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태어난지 한 달도 안되어 보였습니다. 주변의 다른 동네분에게 물어봐도 자기네 강아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들고 집으로 들어와서 자고있는 마누라에게 "여보, 다섯째 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네째는 콩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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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불빛에 잘 닿도록 박스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많이 안좋아 보였습니다. 화장실에서 몸에 붙은 도꼬마리 씨앗들을 30개 정도 떼어냈습니다. 배안쪽과 엉덩이, 다리에 집중적으로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길을 잃어 물가를 헤매다가 도꼬마리의 희생양아닌 강아지가 된 것 같았습니다. 병이 있는지 이상해보였습니다. 갑자기 거품을 품어내고 똥을 찌익 싸고, 뒷다리가 풀려서 잘 걷지도 못했습니다. 몸을 떠는 경련과 발작을 했습니다. 집사람은 강아지의 증상을 축산조합에 전화하고, 유기견 신고를 해야하는지 고민도 했습니다. 강아지의 얼굴을 보니 우리집에 종종 찾아오는 어떤 암컷개와 비슷했습니다. 그 개의 새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엄마개가 새끼를 버렸나? 혼자 집을 나오다 길을 잃어버렸나? 누가 병든 개를 버렸나?
 
증상을 찾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의외로 비슷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광견병일수도 있지만 개홍역이라는 폐사율 50%의 병일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백신 외에 치료약도 없답니다. 그래서 난로 옆에 뉘어두고 수건으로 덮어주었습니다. 낮이 되어 따뜻한 하우스창고 안에 박스로 집을 만들어주고 옆에 물(동치미 국물+설탕, 링겔수액 대신)과 사료를 놔주었습니다.
 
이틀이 지난 오늘 완전히 자연치료가 되었는지 잘 돌아다닙니다. 먹이도 잘먹습니다. 그리고 콩이 집에 까지 들어가 누워있을 정도로 뻔뻔합니다. 헤더가 아침에 스쿨버스 타러 달려가는데 그 짧은 다리로 쫓아가기도 했습니다. 콩이에게 먹이를 주려고 나갔더니 제 발 아래 착 달라붙습니다. 얘가 뭔가 착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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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 된 콩이와 한 달도 안되 보이는 강아지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돌아다니던 하얀 암컷개가 이 녀석(수컷)을 찾아왔습니다. 꼬리까지 흔드는 것을 보아서 분명 그 개의 새끼임이 분명합니다. 아마도 새끼가 잘 돌아다니는 에미를 따라가다가 물가에 떨어지고 충격, 고통과 영양부족 상태에서 발작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에미가 그 강아지를 데리고 가려고 시도하는데도 강아지는 깨갱거리며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에미개가 왔다갔다 하다가 멀리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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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끼가 있는 에미개가 모성애는 있는지 콩이 집까지 새끼를 찾아왔습니다.

저도 강아지를 두 마리까지 키우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방치하다시피하지만 누군가 동네에 주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강아지를 들고 콩이랑 에미를 찾아 다녔습니다. 논밭을 헤매다가 집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마을 사당 주변에 에미가 어슬렁거리고 있기에 에미 주변에 내려주고 콩이와 함께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도 안 된 작은 강아지조차 자기를 구해주었다는 사실에 에미를 따라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강아지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방치하고 나돌아다니는 에미보다는 식주 해결에 도움이 되는 자신의 생명을 위한 본능일 수도 있습니다. 시이튼의 동물기에 나오는 빙고라는 개가 생각납니다. 어렸을 때 잠시 키워준 주인을 평생 잊지 못하는 개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동물들의 이런 행동을 보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해 새삼 놀라움을 느낍니다.
 
아직까지는 그 강아지가 우리 집으로 따라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제가 그 강아지가 오기를 기다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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