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8. 종이 원하시는 종들
마가복음 3:7~19,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으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13절).
제자들을 부르신 세 가지 목적:
1. 14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2. 14절, “보내사 전도도 하며”
3. 15절,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마가복음에 의해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이 이제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실 때에 이스라엘 동서남북에서 이스라엘민족과 이방인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들의 증거를 받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증거를 받기 원하셨고 제자들이 그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높이 여김을 받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 노력합니다. 자신이 제대로 인정받으면 적은 보수나 고된 업무까지 가볍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믿는 자들의 인정과 믿음을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곧 12 제자를 세우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15절에 그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세’(權勢)를 주셨다고 합니다. 헬라어의 권세(exousia)는 원래 ‘힘 혹은 능력’이라는 뜻이고 본문에서는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권세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전하여야 할 복음의 사명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12란 숫자는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새예루살렘성에 12개의 진주문이 있습니다. 12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숫자입니다.
12 제자 선택에 대한 기록이 있는 다른 복음서를 비교해 봅시다. 마가복음을 포함한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12 제자들의 명단을 보면 몇 개의 특징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명단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0:1~4,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마가복음 3:16~19,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누가복음 6:14~16,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4]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15]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
사도행전 1:13,26,
[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1. 약간의 순서가 차이는 있지만 언제나 베드로의 이름이 처음에 있고, 가룟 유다가 마지막에 있습니다.
이들은 4명씩 3그룹으로 묶여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복음서에 순서가 다름)
두 번째 그룹: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세 번째 그룹: 야고보, 다대오, 젤롯(열심당) 유다, 가룟 유다
2. 마태복음은 2명씩 짝을 이루어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도 둘씩 짝지어 전도 보낸 기록이 있습니다(막 6:7).
마태복음 10:2~4,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①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②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③ [3] 빌립과 바돌로매,
④ 도마와 세리 마태,
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 다대오 - Lebbaeus, whose surname was Thaddaeus, KJV. 다대오(마 10:3, 막 3:18)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눅 6:16, 행 1:13)로서 동명이인입니다.
⑥ [4]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3. 청년들을 부르셨습니다.
청년들은 아무래도 사역의 기회가 많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 또래 혹은 그 나이 아래로 젊었을 것입니다. 물론 나이 들어도 제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사도로서 훈련을 받는 것은 평생을 쓰임 받는 일입니다. 젊었을 때, 어렸을 때 주님께 부름 받는 일은 더 영광된 일입니다.
4. 평범한 사람들, 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고린도후서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제자들은 부요하지도, 능력이 있는 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예수님은 제자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들에게는 별명이 있습니다. 시몬은 베드로(바위), 야고보와 요한은 우레의 아들들(보아너게)입니다.그것으로 보아 그들이 원래 갖고 있는 인성과 자질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래서 그런 제자들을 ‘질그릇 제자도’라고 합니다.
5. 다양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인생경험이 다양합니다. 다양한 영적 경험이 있습니다. 요한과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요한의 설교로 변화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와 나다나엘은 빌립에 의해 도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빌립과 마태는 예수님께 직접적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여러 다른 인생의 배경이 있고 신앙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다른 과정이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야고보 같은 이는 가장 일찍 순교를 했고, 요한은 가장 오래 산 제자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인도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인도했습니다. 나다나엘은 완벽주의자입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았고, 마태는 민족의 배반자입니다. 열심당 시몬은 민족주의자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아무 특징이 없습니다. 다대오는 순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고 또 도적이라 했습니다.
제자들의 사명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11~13,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러분은 각자 교회와 세상에서 하는 일이 다르지만 모두 한 가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서로 돕고 섬기는 일을 하는 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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