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씨워진

(1942.6.4. 일본 유학 중)

윤동주(1917~1945)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암울한 시대에 남의 나라에서 공부하며 현실의 안주를 버리고 고통스러운 꿈을 선택하는 스물다섯 파아란 눈을 가진 천재 윤동주의 고뇌를 보여주는 작품. 몇 년 후, 일본의 생체실험으로 그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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