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실이냐? (Acts 7:1) 4

 

4. 교회의 문제점들

 

현재의 한국 교회의 모습은 이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 말은 물론 모든 교회들에 대한 말이 아니다. 겉보기에는 문제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다들 비슷하기에 비교가 불가능하다. 교회법적으로 교리적으로 따지면 문제가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흐름’(풍조)이라는 것이 있다. 부흥, 전도, 선교, 제자훈련, 성경공부, 교회 건축 등 각종 좋은 말로 포장할 수 있는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주도하는 목사들과 지도자들과 교회들은 소수다. 그렇지만 많은 교회들이 그 흐름에 동조하고 그 흐름을 자신의 교회에 복사한다. ? 그들이 힘이 있고 멋있으니까.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하면 잘되니까.

 

그 흐름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 흐름이나 운동, 이벤트가 도무 다 잘못된 목적을 갖고 있다는 말도 아니다. 그 속에 반드시 숨어있는 인간의 야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단의 태동처럼 처음에는 모른다. 그러나 가라지와 그물의 비유’(13)처럼,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면 알게 된다. 그것 자체가 인간의 죄악과 옛사람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실제는 대부분 목사들이 교회 문제의 원인이다. 목사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 교회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교회의 부흥을 위해 목사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독재적인 경영방법이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교회 개척을 목사 개인이 스스로 해야 하는 태생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상황에서는 목회자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이 교회의 빠른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폐해는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남고 있다. 목회자는 교회 조직을 위해 성경적인 용어로 포장되고 신학으로 무장된 수직적이고 교회계급적인 시스템을 세운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에 임명되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신앙이 아니라 재력이 따라야 한다. 담임 목사는 당회장 목사님이 된다. 온갖 교회 절기가 집회 횟수 증가와 헌금 증가에 맞춰 있다. 교회의 새해 목표는 언제나 부흥과 전도, 교회 건축이 빠지지 않는다.

 

다시 언급하건대 부흥과 전도, 선교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그 속에 있는 문제성이 있는 성공주의 교회관이 있고 그것을 조장하는 교권주의자들이 문제라는 말이다. 70년대 성령운동 이후 한국 교회는 마치 자본주의 원리가 교회에 그대로 적용된 모습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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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이냐? (Acts 7:1) 3

 

3. 교회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과 열 두 사도들로 시작한 초대 교회도 기존 구약의 종교 제도권에서 보면 이단이었다. 그러나 초대 신약 교회가 이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증거는 성경에 있다.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 말씀으로 볼 때 하나님이 처음부터 의도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하나님나라의 회복이었다.

 

그러므로 여전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 또한 마귀에 유혹에 빠져있는 잘못된 가르침인 것이다. 성경이 성경 자체에 의해 제대로 해석되고 증거될 때에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간다.

 

초대 교회의 스데반 집사는 이것이 사실이냐?”고 종교재판 심문을 하는 제사장의 질문에 성경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다. 그러므로 현재 잘못된 한국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의 올바른 해석과 선포가 필요하다.

 

이 말은 마치 지금까지의 이단들의 주장과도 비슷하기에 이 말을 표현하기에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영감된 말씀이기에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성령의 감동하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은사주의 같은 성령운동의 왜곡된 폐해들이 워낙 많았던 한국 교회이기에 단순히 성령에 입각한 해석만을 교회 회복 운동의 앞에 세울 수가 없다. 성령의 감동하심은 성경해석의 기본적 전제 사항이고, 일차적인 주요 방법은 말씀의 올바른 해석과 선포 혹은 전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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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이냐? (Acts 7:1) 2

 

2. 이단의 원인

 

이단 창시자들 가운데 처음부터 기존 교회들을 파멸시키는 종파를 시작하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이단도 자신이 마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처음에는 신앙에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인간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또한 기존 교회의 교권주의자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하여 의분 같은 감정을 느꼈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나 같아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존 종교 제도에서 나와 동조자들과 함께 새로운 종교 제도를 시작한 것이다. 이때까지는 적어도 겉보기에 그들을 이단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 특징들이 안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마귀는 인간의 약한 부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이며 인간 스스로 자신의 발로 찾아오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단의 창시자들은 대부분 뛰어난 언변과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체계적으로 경영학을 배우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태생적으로 비즈니스적인 경영 마인드를 바탕에 깔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처음의 개척 의도는 깨끗하고 올바른 교회를 시작하겠다는 순수함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차 불어나는 명예와 인기에 술 취하게 되었다. 그들 자신 속에 숨어있던 교권(종교제도 안에서의 권세)과 부에 대한 야망의 틈을 타고 침입한 마귀의 유혹에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이단에 떨어진 원인은 마귀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 속에 숨어있었다.

 

기존 교회의 권위적인 교회 지도자들이 기존 종교 제도를 등에 업고 누릴 것 다 누리고 마귀의 속임에 빠져들어 갔다면, 이단은 대놓고 새로 종파를 시작한 차이일 뿐이다. 기존 교회나 이단 교회 혹은 종파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똑같다. 단지 이단은 기존 교회들의 신자들을 빼내가서 기존 교회들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고, 많은 기존 교회들은 기존의 제도와 교리 안에서 교회의 속을 병들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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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이냐? (Acts 7:1) 1

 

1. 한국 교회내 이단의 특징과 원인

 

한국의 교회에서 나타나는 이단들의 핵심적인 특징은 다음 네 가지이다.

 

1. 종말론으로 시대적인 위기감을 조성하여 신도들이 자신들에만 집중하게 한다.

이것은 예배 등의 집회와 헌금 조성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2. 기존 교회들에서 신도들을 끌어오기 위해 자신들이 가장 올바른 교회라고 말하며 기존 교회들의 비도덕적인 면들과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드러낸다.

 

3. 교주와 같은 창시자들을 신성시한다.

권위적인 기존 교회들에 식상해서 이단을 선택한 신자들이 이단의 창시자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 ‘통일교의 문선명과 그 일가, ‘JMS’의 정명석, ‘신천지의 이만희, ‘하나님의 교회의 안상홍과 장길자 등.

신자들이 기존 교회를 떠난 이유는 근본적으로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회의 목사나 다른 교인들로부터 인격적인 상처를 받은 데에 대한 심리적인 대응이었다. 이단 교회에 흡수된 사람들은 새로운 종교 그룹 안에서 위로와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새로운 종교 그룹을 선택했다고 믿기에 교주에 대한 믿음과 충성으로 자신들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4. 특정 성경구절들을 종말론을 비롯한 자신들의 교리와 주장에 맞게 왜곡하여 가르치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성경공부를 빙자한 집중적인 교리 학습을 세뇌하다시피 강조한다.

내 뒤에서 (Behind Me)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와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0)

 

때에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 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 도다 하니” (3:12)

 

 

내가 먼저 보지 않고는 전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먼저 듣지 않고는 전할 것이 들리지 않는다.

내가 먼저 체득하지 않고는 남들에게 전할 것을 알 수 없다.

내가 먼저 경험하지 않고 남들에게 전하는 것은 가짜다.

 

무엇인가가 내 뒤에 있다는 것은 내가 그것이 있는 지점을 지나왔다는 말이다. 성경의 예언은 앞일을 미리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듣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전하는 자에게는 이미 예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전할 전달자에게 예언(말씀)의 내용을 반드시 미리 학습시키신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학습하게 될 성경의 사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것이 바로 그걸 말한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지나봐야 성경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것을 유추할 수 있는 정황은 성경 곳곳에 널려있고, ‘지혜를 구하는 자들즉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말씀을 깊이 깨닫기를 원하는 선택받은 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 경주를 이미 시작하고 있다(12:1).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엉망으로 되었는지 도저히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벧전 4:12) 그 사람은 십자가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요나 같은 강제적 사건이나(요나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 같은 행운(그의 십자가 형벌이 동시에 주의 십자가가 되었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헌신과 사모함, 혹은 열정을 가지고 그 십자가의 세계에 첫 발을 들인다.

 

성경에서 그 흐름을 발견하는 것은 마치 수수께끼 풀이(14; 28:20-21) 혹은 감추어진 보물찾기(13:44)와 같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자들은 잘 모른다. 아니, 그들은 십자가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어도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기에 십자가를 깨닫지 못한다.

 

이런 말이 때로 어떤 이들에게는 우습게 보일 것이다. ‘고난이라니! 예수 믿는 자에게 심판이라니! 세상의 영광과 능력의 맛에 취한 자들은 알 수가 없다(4:1-10). 예수 믿으면 복 받고 건강하고 잘 되어야 한다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속고 있는 사람들도 십자가를 알 수 없다(7:15; 24:11,24). 또 롯의 아내(19:26)처럼 십자가와 상관없는 문제들에 정신 팔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다.

 

[물론 세월호 사건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안됐고, 작금의 여러 문제들에 잘 대응 못하는 정치, 행정권 인사들은 비난 받을 만하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누구여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위해 걱정하고 생각할 문제이다. 그러나 내가 그런 문제들에 얽매여 눈에 불을 킬 정도라면 내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에 한 번 당하면 내가 죽을 것 같은 위기를 절감한다. 외부의 문제들은 중요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지금 물에 빠져 죽고 있는데 서울시청광장에 나갈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내가 얻을 면류관보다 더 중요할까? 다른 일들이 중요하게 보이고 그것들에 집중할 정도면 십자가는 나와 관계없다는 증거다.]

 

지성소에 발을 들여 놓으라. 그러면 내 뒤에 있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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