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고통 1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18)



잠언은 지혜에 대한 중요성과 찬양을 위주로 하여 독자로 하여금 지혜를 구하도록(잠 1:6; 4:5)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전도서는 지혜자(의인)와 악인이 차이가 없다(전 2:14)고 하면서 지혜를 구한 자신의 인생이 헛되다(전 1:14; 2:15)고 까지 말한다. 


왜 잠언과 전도서는 같은 성경이고 또 지혜에 대해 말하는 '지혜서'이면서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표현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이렇게 잠언과 전도서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무수한 어려운 내용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의문을 갖는 것과 의심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보통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의문을 갖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성경에 대해 공개적인 의문을 표현하면 자신의 부족이나 불신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성경 지식은 '당회장' 목사님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그에 대한 의문은 자신의 신앙이 잘못된 것이거나,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보통 한국의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성경 말씀을 읽고 공부하라고 하면서 정작 누군가 성경에 대해 의문을 표현하면 어떤 반응일까? 큰 교회라면 이런 답을 듣는다. "목사님께 물어보세요."(보수적이고 수직적인 교회일수록 그런 분위기다. 부교역자들은 성경 해석권이 없다.) 담임목사(당회장)를 만날 기회가 쉽겠는가? 만난 현장이라도 입이나 떨어질 분위기인가? 중소 규모의 교회라면 책이나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신학지식 정도로도 답이 가능한 뻔한 상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 현장 목회자 자신들이 성경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출석율, 부흥(성장), 헌금이다. 과정과 목적이 뒤집어져 있다. 교회 새해 목표가 교회 성장에 맞추어져 있지 않은 교회가 거의 없다. "영혼 구원"이라는 목표조차 전도와 성장에 있지 기존 신자들이나 전도된 새신자들이 어떻게 신앙으로 살아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교회에 잘 나와서 헌금 잘하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신학 지식과 교리가 동원이 되어 영혼 구원이 필요하다고 포장한다. 하지만 실제 내용물은 교회 성장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속으로 당황하고 있으며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사람들도 소속감이나 친분 때문에, 그리고 허영심(큰 교회에 다닐 수록 더하다) 때문에 수 십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마침내는 다른 고민 없는 보통 신자들처럼 되어 자신의 영적인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찾는다는 열심에 그만 교만하게 되어 이단에 빠지거나 교회 부정주의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무서운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잘못된 한국 교회의 흐름에 있고, 그 흐름을 끌고 나가는 목회자, 목사들에게 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잠언과 전도서의 문제로 돌아가자. 잠언은 지혜를 구하라고 하는데 반해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 잠언과 전도서 둘 다 대부분의 내용이 같은 저자인 솔로몬에 의해 쓰여졌다. 물론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잠언과 전도서에 영감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요 진실한 저자도 하나님이다. 그렇기에 더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특히 전도서의 7장 부분은 우리를 더욱 당황하게 한다. 


전도서 7:15-18, 

[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니라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의인(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자)과 악인(지혜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의 인생의 차이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한다(15절). 아예 지혜도 적당히 구하라고 충고한다(16,17절). 


잠언과 전도서의 차이의 키포인트는 이것이다. 잠언이 지혜 자체와 그 용도를 말한다면,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의 입장과 그 한계에 대해 더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차이를 정확히 알고 두 책을 본다면 그때 시각이 변한다. 잠언이 지혜에 대한 초심자를 위한 말씀이라면,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가 현실의 "고통"을 여러 번 경험했을 때 나오는 최종 결과물과 같다. 성경의 다른 내용들도 그렇지만, 전도서는 특히 자신이 경험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책이다.


전도서 7:19-22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19절은 그 구절 자체만으로는 지혜의 귀중함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20절 이하와 연계해서 보면 지혜자는 단지 지혜만 갖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지혜자일지라도 온전한 사람은 없으며 악인과 같은 마음도 가졌고 행동도 했다고 한다(20-22절).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것에는 끝이 없고(전 12:12) 온전한 의가 없기에 헛되다(전 11:8)고 한다. 이 점이 지혜를 구하는 자의 영원한 고통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자가 악인과 다른 점이다(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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