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자 3

 

삼손의 여자들 Samson's women

 

성경에는 비유가 많다. 비유는 두 가지 기능을 하는데, 하나는 진리를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진리를 숨기기 위한 목적이다.

There are lots of parables in Bible. Parables have two functions. One teaches truths, the other veils truths.

 

성경의 비유는 학식과 지능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깨달음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한 번 깨닫게 되면 그 진리가 삶에 나타나도록 인도까지 하신다.

We can't understand the parables by knowledge and intellect. It is able to understand by the grace of God. Once we got it, God leads us until the truths come out through our lives.

 

잠언(מָשָׁל mashal), 전도서와 같은 지혜서에 비유(מְלִיצָה melitsah)가 가장 많이 등장하며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비유(παραϐολή parabole)가 많이 나타난다. 비유는 수수께끼. ‘오묘한 말이다. 잠언(Proverbs) 자체가 수수께끼라는 말과 같다.

The parables(מְלִיצָה) mainly appear in the wisdom literature like Proverbs(מָשָׁל mashal) and Ecclesiastics, and also in the words of Jesus as παραϐολή. Parables are riddles and dark sayings. Proverbs themselves are equal to the word riddles.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1:6)

To understand a proverb, and the interpretation(מְלִיצָה melitsah, mocking song, enigma); the words of the wise, and their dark sayings(חִידָה chidah, riddle, puzzle, enigmatic saying). (Prov. 1:6)

 

오묘한 말’(חִידָה chidah)wall door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중동의 유목민들의 집은 짐승의 가죽이나 두꺼운 천으로 만든 천막이다. 천막의 문은 문 역할을 하는 천이 막대기에 달려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려진 모양 혹은 천막의 기둥 옆으로 천막의 한 쪽이 젖혀지는 형태이다. 사람이 그 문을 지나갈 때는 한 쪽 옆을 젖히고 들어가게 된다. 히브리 철자 ד (daleth)는 그런 문의 형태에서 따온 그림문자이다. 영어 door의 첫 스펠링 D도 여기에서 나왔을 것이다.

The dark sayings(חִידָה chidah) have the origin from the word 'wall door'. The houses of the ancient Middle Eastern nomads are tents made with animal skins or felt. The image of tent doors is hung and straighten with a rod, or opened side by the tent poles. When someone gets into the tent, he rolls up the door to the other side. The Hebrew alphabet ד (daleth) is a hieroglyph comes from the image of the doors. The English D of 'door' might come from the same origin.

 

문은 사람이 집 안에 들어가고 나가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침입자를 막는 역할도 한다. 이런 문처럼 성경의 잠언과 수수께끼는 진리를 알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진리를 가리는 일도 한다.

The door is not only the entrance to come and out, but also keep the house from the intruders. The parables and riddles in Bible like the doors are the gates opening and veiling truths.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3:13)

Therefore speak I to them in parables: because they seeing see not; and hearing they hear not, neither do they understand. (Mat. 13:13)

 

수수께끼가 처음 사용된 곳은 민수기 14:8이고, 그 다음에 사사기 14장에서 삼손의 이방여인(a strange woman)과의 혼인잔치 수수께끼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14:12,13,14,15,16,17,18,19).

This word riddle is used in Numbers 14:8 at first, and mostly showed in the Samson's riddle(Judges 14:12,13,14,15,16,17,18,19) at his wedding with a strange woman.

 

삼손의 이야기에서 문과 관련된 단어가 나오는데 삼손이 가사의 기생(an harlot = an adulterous woman)을 만나러 간 16:3의 성 문짝(דֶּ֫לֶת deleth, doors)이 그것이다. 역시 같은 어원이 사용되었다.

We can find a word related with doors(דֶּ֫לֶת deleth, doors) when Samson went into a strange woman in 16:3. The same origin word is used.

 

16:4에서는 들릴라(דְּלִילָה Delilah)라는 삼손의 운명을 바꾸는 이방여인(a strange woman)의 이름이 등장한다. 들릴라의 어원도 문과 같은 단어에서 나왔다. 들릴라가 이방여인인지 이스라엘 여인인지 정확하게 소개되지 않고 있으나 통상 이방여인(블레셋)으로 알려져 있다.

And we see another strange woman called Delilah(דְּלִילָה) changing Samson's destiny in 16:4. Her name also comes from the same word. It is not sure if she is an Israelite or a gentile, she is usually known as a gentile, Philistine.

 

들릴라의 이름의 뜻을 연약한(she who weakened)’라고도 하는데 이는 천막의 문인 천이 약하기 때문에, 혹은 ד (daleth)라는 알파벳의 기원이 고개를 숙인 약한 사람의 형태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름의 가장 가까운 의미는 ’(דָּלָה dalah: n. feminine)에서 나왔다. 그것은 들릴라가 소개되기 이전 16:1-3에서 삼손이 가사 성문을 메고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한 사건에서 암시되고 있다.

It is also known for her name to mean 'weak'(she who weakened) because the tent door's cloth is weak or the alphabet ד (daleth) shows a picture of a weak man bowing his head. But the closest meaning is come from דָּלָה (door, dalah: n. feminine). It suggests itself to us at the happening of Samson's miracle power carrying the doors in 16:1-3 before Delilah comes out.

 

16장의 두 여인들과의 만남은 14장의 혼인잔치에서 이어지고 있다. 14장의 삼손의 첫 번째 여인과의 사건에서 등장한 수수께끼가 나머지 두 이방여인들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수수께끼는 어떤 진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문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문이라는 말 그대로 그 진리는 사람들(성경을 읽는 신자들)에게 보이기도 하고 가려지기도 한다.

His two women comes along after his wedding in chapter 14. So the riddle with his first woman shows the relationship with the other two women. The riddle means a door showing a certain truth. The door shows and veils truth to the believers.

 

삼손의 초능력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지만 삼손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도구로만 그 능력을 사용했다. 삼손의 이방여인들은 그런 삼손의 교만과 오만의 가장 큰 목표가 되었다.

Samson's miracle power was the God's gift to save the Israelites but he used his power only for his selfish purposes. His strange women were the objects of his proud and haughty.

 

악의 뿌리는 악한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자신의 욕심 그리고 교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핑계로 만들어내는 인간 내면에 있다. 성경에서 악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이방여인들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과 삼손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The root of evil is not based on the evil situation but in the human inside showing to satisfy desire and proud of himself. The strange women showing evil images in Bible are symbolic beings who represent the Israelites and Samson apart from God.

 

삼손이 죽인 사자와 그것에서 얻은 꿀은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이고 가장 달콤한 것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의 진정한 정답이 아니다. 그것은 삼손을 파멸시킨 가장 강하고 가장 달콤한 유혹인 이방여인들이며 동시에 인간의 교만과 초능력의 유혹에 빠진 삼손 자신을 말하고 있다.

The lion and honey which Samson killed and got from are not the real answers of the riddle asking what are strong and sweet. The answers are the strange women who are the most strong and sweet temptations destroyed Samson, and Samson himself who fell into his proud and the temptation of the power.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하지 못하여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언 5:1-6)

My son, attend unto my wisdom, and bow thine ear to my understanding: / That thou mayest regard discretion, and that thy lips may keep knowledge. / For the lips of a strange woman drop as an honeycomb, and her mouth is smoother than oil: / But her end is bitter as wormwood, sharp as a two-edged sword. / Her feet go down to death; her steps take hold on hell. / Lest thou shouldest ponder the path of life, her ways are moveable, that thou canst not know them. (Proverbs 5:1-6)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 /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 (잠언 5:20-23)

And why wilt thou, my son, be ravished with a strange woman, and embrace the bosom of a stranger? / For the ways of man are before the eyes of the LORD, and he pondereth all his goings. / His own iniquities shall take the wicked himself, and he shall be holden with the cords of his sins. / He shall die without instruction; and in the greatness of his folly he shall go astray. (Proverbs 5:20-23)

 

성공하고 평안하고 인기와 명예를 얻을수록 인간은 최악의 위험에 빠지기 쉽다. 자기 자신을 높이게 되고 교만해진다. 큰 문과 넓은 길로만 갔기에 좁은 문으로 들어간 적도 없어서 실패하는 약자와 고난당하는 소자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7:13-27; 25:31-46). 마침내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심판 받을 큰 음녀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17:1-18:24).

The more success, peace and honor they have, the worse dangerous they may have. They make higher themselves and bear themselves haughtily. Because they have just gone in the wide door and the open way, so they have never gone in the narrow and straight door and they don't understand the weak failing and the little ones afflicted(Matt. 7:13-27; 25:31-46). At last, They will be drunken with the wine of fornication and be on the seat of the great whore(Rev. 17:1-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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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자 2

 

 

Virtuous woman vs. Strange woman

 

They are two persons but the other personality of wisdom is the strange woman.

 

If I overcome the strange woman, I would be the virtuous woman.

 

The weapon of the strange woman is "strong drink and wine" which make a wisdom seeker "proud and haughty".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중에서...

 

Whoever fights monsters should see to it that in the process he does not become a monster. And if you gaze long enough into an abyss, the abyss will gaze back into you.

Friedrich Nietzsche, Beyond Good and Evil, Aphorism 146

 

어떤 이는 이단과 싸우다가 도리어 과격파나 이단으로 몰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세계적인 부흥을 일으키다가 결국에는 세계적인 치욕을 당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매력적이고 능력 있는 설교가로 이름을 날리다가도 나중에는 비정상적인 해악을 교회에 끌어들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왜 일까? 그들이 처음부터 이기적이거나 악한 의도로 시작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들은 한 때 정의로웠고 뜨거웠으며 겸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적으로 향했던 불의, , 비복음적인 거짓 진리들과 싸워 이길수록 얻어지는 성공, 인기, 높아지는 명예 그리고 경제적인 풍요에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교만과 오만이 몰래 들어온 것이다.

 

성경, 특히 지혜서들에는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대비시킨 표현들이 많다. 율법서들은 거룩과 죄를 대비시키고, 역사서들은 순종과 불순종을 대비시킨다. 대비된 두 가지들은 극과 극으로 생각되어져 왔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렇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인간 자신에게는 선이 없는데 스스로 선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높아진 것이 은혜이고 선물인데 스스로의 능력으로 이루어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다고 절대 표현하지도 않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다.

 

The problem of an adulterous woman is that she doesn't know she is wicked.

Most liars think they don't tell 100% lie.

 

Such is the way of an adulterous woman; she eateth, and wipeth her mouth, and saith, I have done no wickedness. (Prob. 30:20)

 

한 번 맛 본 치명적인 포도주와 독주의 잔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된다. 음녀와 이방 여인의 유혹에 홀리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결국 그 자신이 사탄의 권좌에 앉게 되고,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음녀가 되고, 바벨론이 되고, 베헤못과 리워야단 같은 괴물 짐승으로 변신해 있게 된다.

 

삼손의 수수께끼(14)의 진정한 정답은 꿀과 사자가 아니라 초인적인 능력과 음녀에 빠져 괴물로 변한 삼손 자신이었다. 욥이 본 짐승 베헤못과 공룡 리워야단은 다른 객체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었다(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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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고통 1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18)



잠언은 지혜에 대한 중요성과 찬양을 위주로 하여 독자로 하여금 지혜를 구하도록(잠 1:6; 4:5)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전도서는 지혜자(의인)와 악인이 차이가 없다(전 2:14)고 하면서 지혜를 구한 자신의 인생이 헛되다(전 1:14; 2:15)고 까지 말한다. 


왜 잠언과 전도서는 같은 성경이고 또 지혜에 대해 말하는 '지혜서'이면서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표현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이렇게 잠언과 전도서뿐만 아니라 성경의 다른 무수한 어려운 내용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의문을 갖는 것과 의심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보통 한국 교회의 신자들은 의문을 갖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성경에 대해 공개적인 의문을 표현하면 자신의 부족이나 불신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성경 지식은 '당회장' 목사님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그에 대한 의문은 자신의 신앙이 잘못된 것이거나,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보통 한국의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성경 말씀을 읽고 공부하라고 하면서 정작 누군가 성경에 대해 의문을 표현하면 어떤 반응일까? 큰 교회라면 이런 답을 듣는다. "목사님께 물어보세요."(보수적이고 수직적인 교회일수록 그런 분위기다. 부교역자들은 성경 해석권이 없다.) 담임목사(당회장)를 만날 기회가 쉽겠는가? 만난 현장이라도 입이나 떨어질 분위기인가? 중소 규모의 교회라면 책이나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신학지식 정도로도 답이 가능한 뻔한 상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다. 현장 목회자 자신들이 성경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중요하게 요구하는 것은 출석율, 부흥(성장), 헌금이다. 과정과 목적이 뒤집어져 있다. 교회 새해 목표가 교회 성장에 맞추어져 있지 않은 교회가 거의 없다. "영혼 구원"이라는 목표조차 전도와 성장에 있지 기존 신자들이나 전도된 새신자들이 어떻게 신앙으로 살아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교회에 잘 나와서 헌금 잘하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 표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모든 신학 지식과 교리가 동원이 되어 영혼 구원이 필요하다고 포장한다. 하지만 실제 내용물은 교회 성장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속으로 당황하고 있으며 갈등을 겪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사람들도 소속감이나 친분 때문에, 그리고 허영심(큰 교회에 다닐 수록 더하다) 때문에 수 십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마침내는 다른 고민 없는 보통 신자들처럼 되어 자신의 영적인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찾는다는 열심에 그만 교만하게 되어 이단에 빠지거나 교회 부정주의가 되기도 한다.


이런 무서운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잘못된 한국 교회의 흐름에 있고, 그 흐름을 끌고 나가는 목회자, 목사들에게 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잠언과 전도서의 문제로 돌아가자. 잠언은 지혜를 구하라고 하는데 반해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 잠언과 전도서 둘 다 대부분의 내용이 같은 저자인 솔로몬에 의해 쓰여졌다. 물론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잠언과 전도서에 영감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요 진실한 저자도 하나님이다. 그렇기에 더 의문이 들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특히 전도서의 7장 부분은 우리를 더욱 당황하게 한다. 


전도서 7:15-18, 

[15]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니라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의인(지혜를 구하면서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자)과 악인(지혜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권자로 인정하지 않는 자)의 인생의 차이가 없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한다(15절). 아예 지혜도 적당히 구하라고 충고한다(16,17절). 


잠언과 전도서의 차이의 키포인트는 이것이다. 잠언이 지혜 자체와 그 용도를 말한다면,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의 입장과 그 한계에 대해 더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차이를 정확히 알고 두 책을 본다면 그때 시각이 변한다. 잠언이 지혜에 대한 초심자를 위한 말씀이라면,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가 현실의 "고통"을 여러 번 경험했을 때 나오는 최종 결과물과 같다. 성경의 다른 내용들도 그렇지만, 전도서는 특히 자신이 경험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책이다.


전도서 7:19-22

[19] 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21]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


19절은 그 구절 자체만으로는 지혜의 귀중함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20절 이하와 연계해서 보면 지혜자는 단지 지혜만 갖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다. 지혜자일지라도 온전한 사람은 없으며 악인과 같은 마음도 가졌고 행동도 했다고 한다(20-22절). 


전도서는 지혜를 구하는 것에는 끝이 없고(전 12:12) 온전한 의가 없기에 헛되다(전 11:8)고 한다. 이 점이 지혜를 구하는 자의 영원한 고통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자가 악인과 다른 점이다(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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