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Global Sharenfull Education Fund for Children (쉐어앤풀 해외 교육 지원)

히브리서 11,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세상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고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저개발국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복음과 함께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날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의 뜻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간에 힘을 모읍시다, 무엇을 합시다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 이렇게 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분은 이와 비슷한 일을 하시고 있는 분들도 있고, 적어도 이 사역을 위해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거나 훈련을 받은 분들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사역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 각 개인의 인생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소명이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일은 굳이 기독교 신앙, 믿음이 없이도 가능한 일입니다. 신앙을 갖지 않아도 숭고한 사랑과 희생의 모습을 얼마든지 보여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졌다면, 여러분은 이 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 신자는 전도와 선교, 구제와 긍휼을 베푸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하지만, 선교라는 대의명분이,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여러분의 소명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여러분의 소명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소명은 여러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당시 문명의 중심에서 혜택을 받으며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거의 몰랐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또 그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는 통로가 되도록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자의 소명 혹은 부르심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아브라함을 떠올리곤 합니다. 구약 창세기뿐만 아니라 오늘의 본문인 신약 히브리서를 보면 그의 부르심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단지 몇 마디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 완전 정복이 되고 믿음의 정석이 된 것이 아닙니다.

1. “갈 바를 알지 못하고갈지라도

히브리서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그가 약속받은 땅은 정확한 위치와 면적이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여기 머물렀으면 내일 어디로 가야할지 모릅니다. 그의 인생의 대부분을 그는 방랑자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나를 믿는 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까? 내가 목회를 하고 있다면, 선교사 활동을 하고 있다면, 혹은 어떤 확실히 표가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다면 그런 불확실성이 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이, 직업이 여러분의 진정한 소명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소명은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때로 살아가면서 나그네처럼 이 일, 저 일 손대보면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와 소명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현실은 들판에서 목축업을 하는 일입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갈 바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부르심이 이 땅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우리가 현실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선교나 교육사업 같은 활동으로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진정한 부르심은 천국이며 하나님 자신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시험을 받을 때에구별하십시오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17절을 보면, “시험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시험하셨다는 사건 자체가 두려운 일입니다.

그는 자신의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해한 하나님의 명령은 아들 이삭을 죽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신자인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브라함 자신의 결론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식과 의도를 터득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을 차지한 하나님에 대한 구조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계획과 선한 의지까지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일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식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그 결과가 이삭을 실제로 죽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큰 결단을 요구하거나 견디기 힘든 시련이 있을 때에 자신의 생각과 의지까지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주장과 고집을 꺾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수준을 넘어서 더 큰 영광된 부르심과 계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시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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