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장에서 몇몇 사람들과 토론식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성경본문을 읽어나가면서 각자 의문을 느끼는 점이나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해보게 한다.

독서와 사고의 훈련이 된 사람은 그나마 자신의 생각을 깊이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남의 생각, 혹은 지금까지 들은 목사의 설교나 이론을 말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왜 성경을 읽고 무언가를 느껴야 하는지 모르는 한심한 사람도 같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교회 안의 소규모 그룹의 구역이나 속회에서조차 그 모임들의 형태가 성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설교가 들어가는 예배였고, 때로 담임목사의 설교문이 적힌 공과를 읽고 구성원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지난 80년대 부터 한국 교회에 성경공부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시스템과 방법들이 유행했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수준 높은 기독교 도서들과 발간물들이 쏟아졌던가! 그런데 수십년 교회를 다닌 사람들이 성경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나가는데 깜깜하다니! 

원인이 무었일까?
외적인 원인과 내적인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외적 원인은, 한국 교회의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지독하게도 담임목사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목사가 개척하고 전도하고 교회를 세웠다. 그래서 목사가 교회의 주인이고 왕이다. 세상에서는 교회 목사를 기업체의 대표(사장, 회장)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 조직이건 이만한 독재적인 단체가 없다. 그런 교회에서 성경공부라는 것도 목사 위주의 시스템에 안착시키기 위한 주입식 사상훈련과 같다. 한국 교회에서 성경은 목사의 절대권을 뒷받침하는 율법이 되고 말았다.

내적인 원인은, 성경은 성경을 알기를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자에게가 아니면 비밀이 닫혀진 책이기 때문이다. 신학자에게도, 목사들에게도 성경이 닫혀져 있을 수 있다. 그 성경으로 수십년을 설교를 했어도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성경은 중독되게 하는 책이다. 환상을 보고 기이한 영적 체험을 해서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세계에 사람들을 이끌고 간다. 성경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그런 사람들은 마하나임과 브니엘(창 32장)의 지경을 지나며 아둘람굴(삼상 22장)에 유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히브리서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성경은 구하는 자가 구하는 만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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